엄마, 오늘은 저녁 안 해도 돼 !
금요일이라 나는 듯 퇴근해서 집에 들어섰는데 아들이 위풍당당 말하네요.
순간 무슨 상황인지 몰라 갸우뚱했더니 부리나케 뛰어가 식탁에 올려둔 양푼을 가져옵니다.
오늘 학교에서 비빔밥 만들기를 했는데 남은 것을 싸 온 모양입니다.
오늘 활동을 위해 앞서 월요일에 모둠별로 각자 가져올 음식과 조리도구를 나눠왔더라고요.
아들이 맡은 건 참기름과 스팸 구이, 그리고 큰 그릇(양푼)이었습니다.
(계란 프라이는 각자 한 개씩 가져오기로 했는데 본인은 특별히 2개 구워달다고 했고요 ❛ڡ❛ )
엄마~ 난 참기름이랑 스팸 구워가기로 했어. 잘했지? 이 정도면 엄마도 준비하기 힘들지 않지?
엄마가 준비하기 힘들까 봐 쉬운 거 골라온 거야?
응 ^^ (으쓱)
아무 생각 없는 천둥벌거숭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일하는 엄마가 준비하기 힘들까바 편해 보이는 걸로 골라왔다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기특함과 고마움을 생각만하고 말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엄마 깨끗해. 각자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었어
선 듯 먹자는 말을 안 하고 머뭇거리다 아들에게 제 속마음을 틀켜버렸네요.
아이의 성의를 무시했나 싶어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아들에게 있다는 사실이 놀랐습니다.
평소 눈치코치없이 행동해서 자주 핀잔을 주곤 했거든요.
그때서야 다시 양푼이 보였습니다.
찬찬히 보니 비닐로 뚜껑을 만들어 테이프를 꼼꼼하게 붙였더라고요.
비닐은 어디서 났냐, 어떻게 포장했냐 물었더니 본인 작품이래요.
아침에 급하게 일회용 비닐에 숟가락을 챙겨 보냈더니 센스있게 그걸 이용해서 덮고 테이프로 붙였답니다.
그리고는 학교에서 집까지 아이 걸음으로 20분 거리를 쏟아지지 않게 조심조심 들고 왔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이가 하굣길에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굣길에는 꼭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아이입니다.
일하다 받지 못하는 날도 왕왕 있지만 통화가 되면 학교에서 집까지, 또는 태권도 도장에서 집까지 오는 동안 통화를 합니다.
아이는 주로 통화 중 눈앞에 보이는 모든 걸 생중계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쉬지 않고 종알거립니다.
일하는 엄마라 집에서 따듯하게 맞이해주지 못하니 제게도 이 시간 통화가 소중합니다.
오늘 춥지는 않았는지, 급식은 잘 먹었는지, 학교는 재미있었는지 아이 안부도 이때 묻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하굣길 전화가 없었고 저도 바삐 일하다가 무심히 넘겼습니다.
그런데 비빔밥이 쏟아질까 봐 신경 쓰느라 전화를 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처음 모둠에서 재료를 나눌 때에도, 먹고 남은 음식을 챙겨오는 중에도 엄마를 생각해준 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몽글몽글했습니다.
곱게(?) 남겨온 비빔밥과 직접 기른 무순
오늘 저녁은 아들이 가져온 비빔밥에 야채 조금, 어제 먹다 남은 떡볶이, 밀키트 불고기를 더해 차렸습니다.
푸짐하지 않지만 아들의 사랑을 든든하게 먹은 식사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놓치지 않고 고마움과 사랑을 듬뿍 표현했습니다.
고마워 아들아
오늘 아들 덕분에 정말 엄마가 편하다.
그리고 엄마 생각해서 무거운데 챙겨와 준 것도 정말 고마워.
아들의 사랑이 담긴 비빔밥 자알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