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위에는 제왕절개 후 자궁 수축을 돕는 모래주머니가 짓누르고 있었고 손에는 아플 때 누르라고 마약성 진통제 버튼이 쥐어져 있었다.
임신성 고혈압으로 인한 뇌간질성 발작으로 정신을 잃었고 그대로 긴급 수술로 아이를 꺼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6시간쯤 지나서야 의식을 회복했다.
그러나 마취가 덜 풀린 탓인지, 진통제 때문인지 이후에도 정신은 흐리멍덩했다.
밤 9시가 되었을 무렵 담당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아이 데려다 드릴까요?"
아, 아이가 태어났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여적 아이를 찾지 않았다.
오전 11시 33분에 태어난 아들은 9시간 넘게 애미 애비 얼굴 한 번을 못 보고 혼자 신생아실에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모성애 팡팡 터지는 아이와의 첫 만남을 기대했는데 갑작스러운 수술을 받고 아이를 찾지 않은 모성애리스 애미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들은 신생아실에서 왕자 대접을 받고 있었다. 당시 우리가 있던 신내동 서울의료원은 개원 6개월 정도 됐을 무렵이다. 출산은 임신 초기부터 진료받던 병원에서 하는 것이 보통이라 당시 이 병원 산부인과에는 출산 산모가 없었다. 신생아실을 독방으로 혼자 차지하고 항시 대기 간호사 선생님 3분의 밀착 케어를 받으며 호강하고 계셨다. 덕분에 미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그때 난 고위험산모집중치료실에 있었다.
(모성애에 크게 문제가 있기보다, 그 정도로 안 좋다는 걸 강조하는 바이다)
엄마와 분리된 지 9시간이 지나서야 엄마 품에 안긴 아이.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위해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 머리를 내 왼쪽 어깨에 올려주셨고 내 팔로 아이를 감싸 안게 해 주셨다.
한 팔로도 감싸지는 아이가 참 신기했고, 작았다.
처음 본 아기 얼굴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안녕 라하야. 엄마야'
아이를 얼굴로 낳았니? 아님 남편아 나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거니? 내 얼굴 좀 곱게 찍어줄 수는 없었던 거니?
이날부터였다.
내 왼쪽 어깨 수난.
아들의 머리를 왼쪽 팔로만 10년 동안 받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들은 유난히 팔베개를 해야만 잠이 들었다.
그것도 왼쪽 팔만 고집했다.
나 또한 내 팔을 베고 품 안으로 파고드는 아이를 폭 안고 자는 일체감이 좋았다.
그렇게 어린 아기 때부터 쭉 아이를 꼬옥 품에 안고 잠이 들었다.
다만, 그 자세가 10년이 갈 줄을 몰랐다.( •︠ˍ•︡ )
정확히 말하면 둘째가 태어나면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양팔베개를 해야 했으니깐.
아들은 낮동안 동생에게 엄마를 뺏긴 설움을 보상받기 위해서인지 밤에는 꼭 붙어있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며 팔베개를 고수했다.
왼쪽 팔에 아들 팔베개를 하고 갓난쟁이 딸은 오른쪽 팔과 몸통 사이에 끼워 재우다가 점차 오른쪽 팔베개를 하고 잠들기 시작했다.
양팔을 아이들 베개로 내어주었다.
물론 아이들이 깊게 잠들면 슬그머니 팔을 뺄 수 있지만 꼬맹이들 육아에 지쳐 아이들보다 먼저 잠드는 날이 많았다.
그럼 벌 받는 자세로 잠든다.
다음날 아침에 굳어진 팔과 어깨 통증은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큰 아이는 머리 둘레가 상위 5%를 찍는 대두다. (두뇌 말고 둘레)
아기들이 쓰는 이쁜 모자들을 아들에게 씌우면 골무처럼 되기 일쑤였다.
영유아 검진에서 아이의 머리 둘레를 확인한 의사 선생님은 껄껄 웃으시며 '머리 크면 용량 커서 똘똘하고 좋지 뭐'라며 위로하셨다. (위로였을 것이다. 설마 놀리신 건 아닐 거다 • ̯•。̀)
그러니 이 녀석이 눌러대는 머리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큰 아이 3살 무렵부터 팔베개를 한 왼쪽 팔의 통증이 낮시간 일상생활에서도 느껴졌다.
그러나 둘째가 태어난 이후에는 남매 육아 + 출근 + 살림 3단 콤보로 병원 가는 일은 차일피일 미뤘졌다.
사실 육아하면서 팔만 아프겠는가.
머리에 이어 몸무게도 상위 10%를 찍던 아들을 아기띠로 안고 다녀서 허리도 나갔고, 손목도 너덜너덜했다.
원래 육아란 이런 것이려니 하고 참았다.
미련하게 통증을 참고 아이를 품고 있는 것이 엄마라고 생각했다.
양팔베개하는 아이들을 끼고 잠들면 모성애 가득한 엄마인 것 같아 뿌듯했다.
"악, 파스냄새!!"
평소에도 자주 파스를 붙이고 잤었는데 유독 그날 파스는 향이 심했던 모양이다.
아들은 그제사 '엄마 어디 아파?' 하고 물어왔다.
"엄마 팔 아프다고 했잖아. 팔베개해서"
(시무룩) "그럼 나 때문이야?"
"아니야, 엄마도 아들 꼭 안고 자서 행복해. 근데 팔이 아프네. 이젠 팔베개를 안 하면 좋겠어."
그동안 여러 차례 다양한 방법으로 잠자리 독립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는데 강력한 파스 냄새 한방으로 해결했다.
그날로 왼쪽 팔은 베개 역할에서 해방되었다.
그럼에도 한 번 망가진 팔을 쉽게 제 기능을 회복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오히려 통증이 심해져 잠을 설치는 일이 반복됐다.
그렇게 꼬박 10년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이 굳어지고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주사 바늘을 통증 부위에 넣은 상태에서 주사약을 넣으며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악소리가 절로 났다.
"이렇게 아픈데 왜 미련하게 참았어요. 다 큰 애를 팔베개는 해주지 말았어야지. "
그러게요. 그런데 그러고 싶었어요. 아이의 온기가 좋았고, 아이가 엄마를 안아주는 것이 좋았어요.
그리고 아파도 참는 게 엄마라고 생각했어요.
통증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생각했다.
잠자리 독립 시기를 놓치고 아이를 품고 있어서 왼쪽 팔이 망가졌구나. 아파도 참는 것이 엄마라도 잘못 생각하고 왼쪽 팔을 혹사시켰구나. 엄마 욕심에 아이를 품에 있다가 아이의 잠자리 독립 시기를 놓치고 있었구나.
혹시 다른 부분에서 또 아이를 품 안에 가두고 그르치고 있는 일이 있을까 한참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