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몸치+박치도 엄청난 연습량을 거치게 되면 음악에 맞춰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지경에 이른답니다.
때는 참으로 싱싱했던 27 꽃띠 때였습니다.
저는 교직을 원주에서 시작했어요.
그곳에 발령받은 지 3년 차 되던 해에 생각지 못한 지령을 받았습니다.
돌아오는 학교 축제에 여교사 댄스팀에 합류하라는 것이었어요.
당시 근무하던 학교에 유일한 20대였던 저는 나이역순 1등으로 팀에 캐스팅(?)되었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고 인기 그룹 원드걸스의 Tell Me에 맞춰 혹독한 한달 간의 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연습에 앞서 서로 역할을 나눠야 했어요.
각각 유빈, 선예, 선미, 소희, 예은이 되는 겁니다.
누가 돼도 참 영광스러운 역할이었지만 유일한 20대라는 이유로 전 당당히(?) 소희가 되었답니다.
Tell Me의 킬링포인트 '어머~!'가 바로 제 파트가 된 거예요.
문제는 '세상 깜찍하게'라는 임무와 함께였습니다.
끔찍 아니고 깜찍입니다.
OSEN 2007.11.22 기사 캡처
나서는 거 싫어하고 주목받은 걸 부담스러워합니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
연습 기간 내내 이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입이 댓발 나온 상태로 임했답니다.
게다가 제대로 입력을 했는데 몸치+박치인 저를 통과하면 출력 오류가 되는 걸 보면서 가르쳐주는 학생 선생님이 답답해하니 참 면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되더라고요.
한 달을 꼬박 연습하니 몸치+박치도 조금씩 정박에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타고난 춤꾼의 선은 아니더라도 TellMe 정도의 가벼운 율동은 점차 몸에 익숙해지고 있었습니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음악에 자동반사로 몸이 움직이면서 동작이 완성되어 갔답니다.
그리고 무대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곡이 완성되어 가자 연습 시간이 즐거워지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축제 당일날.
어찌나 긴장되던지요.
머릿속은 멍해지고 갑자기 율동이 기억이 안 나면 어쩌나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이미 강당은 앞선 무대로 인해 열기로 후끈후끈했습니다.
덕분에 축제용 외부 음향 장비를 설치했음에도 음악 소리가 함성에 묻히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교사팀이 소개되고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실수 없이 무대를 마쳤을까요?
걱정과 달리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덕분에 희미한 음악 소리에도 몸이 반응을 하더군요.
거기에 수백 명 학생들이 떼창을 해준 덕에 타이밍 맞춰 첫 번째 '어머~!'를 시전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 깜찍하게! ✦‿✦
이후부터는 긴장이 좀 풀리면서 무대를 살짝 즐길 수 있었습니다.
축제 당일 양갈래 머리를 한 27살의 여교사는 처음으로 무대에서 환호를 받아보고서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중반 이후 제법 즐기면서 무대를 마치고 내려왔어요.
제 인생의 얇은 알껍질을 하나 벗겨내는 경험이었습니다.
요즘도 종종 TellMe가 들려오면 어깨가 8자를 그리며 움직입니다.
그리고 '어머~'할 때 세상 깜찍한 표정과 함께 손이 입으로 올라갑니다.
자동반사예요.
그리고 최근 제게 새로운 자동반사 습관이 생겼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조각들을 놓치지 않고 글로 옮기고자 하는 글쓰기 습관입니다.
운전할 때는 기억이 날아갈까 봐 어시스턴트를 이용해 음성 녹음을 합니다.
노트북 주변에는 겨우 붙잡아 놓은 생각들을 포스트잇에 옮겨 덕지덕지 붙여놓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이 시간이 되면 (현재 시간 오후 11:49) 생각 파편을 모와 글로 옮깁니다.
낮에는 수많은 조각조각의 생각들을 모으고, 밤에는 앉아서 글로 만들어봅니다.
미완성이라 저장만 하기도 하고, 맘에 안들어서 미뤄놓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행동은 매일 진행중입니다.
한달 간 훈련으로 음악에 맞춰 자동 반응하는 몸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제는 생각을 글로 옮기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출력오류 없이 생각을 글로 옮겨내는 진짜 작가가 될 때까지 이어질 훈련입니다.
타탁타탁 키보드 두들기는 훈련이 저를 어떤 새로운 경험으로 이끌어 줄지 기대가 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