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소녀 네티
비밀임무
by
Jun 21. 2023
오늘 밤엔 무슨 일을 할까
누구에게 기쁨을 줄까
나쁜 마음 끝이 없는 욕심 멀리멀리 사라지면
훨씬 아름다운 세상 될 거야
포동포동 고슴도치 귀여운 루비
아빠 엄마께서 비밀을 아실까
긴 머리 높이 묶고 요술봉 휘두르며 빨주노초파남보 동그라미 풍선
행복 나눠주는 천사소녀 네티
(원래 후렴구는 두번이 국률)
긴 머리 높이 묶고 요술봉 휘두르며 빨주노초파남보 동그라미 풍선
행복 나눠주는 천사소녀 네티
천사 소녀(소년) 네티에게 임무가 전달되었습니다.
작전명 '1일 1마디 건네기'
근우(가명)는 우리 반에 단짝 친구가 없습니다.
관계지향적인 근우는 종일 친구들 곁을 맴돌아보지만 선뜻 말을 건네지 못합니다.
몇 번 용기 내어 다가갔지만 돌아오는 뾰족한 말에 상처를 입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근우는 친구 사귀는 것에 서툰 아이입니다.
예를 들어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여자 친구 옆에 인기척 없이 너무 가깝게 가 서있습니다.
기척을 못 느끼고 무심코 고개를 돌리면 얼굴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말입니다.
이런 행동으로 학기 초 몇 번 여자 아이들이 놀래서 소리를 질렀고 근우는 그때마다 당황해했습니다.
알려줬습니다.
그 친구가 소리를 지른 건 너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사람은 타인과 편안하게 느끼는 거리가 있는데 넌 그보다 너무 가깝게 다가갔다.
그러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네가 곁에 있음을 인사말 등으로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
또 한 번은 친해지고 싶은 여자 친구에게 초콜릿과 음료를 사다 준 적이 있습니다.
말을 나눠본 적이 없는 사이인데 대뜸 먹을 것을(그것도 초콜릿) 주니 상대방 아이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초콜릿을 거절했고 근우는 또 마상을 입었습니다.
역시 설명해 줬습니다.
인트로 없이 본론이 나오니 놀랄 수도 있다. 몇 마디 나눠보고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더 친해지고 싶어서 건네는 거라는 느낌이 있었다면 거부하지는 않았을 거다. 초콜릿이 부담된다는 거지 근우 너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말자.
하지만 그 뒤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 들은 3월이 지나면 새롭게 친구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쉽지 않습니다.
4월부터 각종 수행평가가 시작되고 4월 말에 치러질 중간고사 준비로 다들 분주해집니다.
서로를 탐색하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 노력하던 학기 초 에너지는 사그라듭니다.
본격적으로 학업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3월의 최적 타이밍을 놓친 근우는 이후 친구 관계를 넓히지 못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자주 교무실에 와서 시간을 보내다가 갔고 점심시간에는 혼자 밥을 먹는 날이 많았습니다.
아이는 외로웠을 겁니다.
이때 담임교사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다 큰 고등학생들에게 '누구누구랑도 친하게 지내자'라고 권하는 건 '그 누구누구가 친구 없이 외톨이란다' 광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이럴 때 천사소녀네티를 소환합니다.
매 학기 초반에 행복 나눠주는 천사소녀네티를 선정해 둡니다.
마음씀이 곱고 배려심이 깊은 아이, 입이 무거워서 비밀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아이를 2-3명 고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하나씩 불러 우리 반의 천사소녀네티가 되어줄 수 있는지 제안합니다.
물론 남자아이들에게는 천사소년을 제안하고요
네가 우리 반 네티가 되어줄 수 있을까?
어려운 건 아니야. 한 달 동안 ★★이를 지켜보니 행복을 나눠주는 네티가 되어줄 수 있을 거 같아서 제안하는 거야. 친구 문제로 힘들어하는 친구가 생기면 부탁을 할 거야. 어렵지는 않아.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하루에 한 번만 말을 걸어주는 게 네티의 임무야. 간단히 '다음시간 정보니깐 정보실 가자.', '급식 먹었어? 오늘 매웠지?', '혹시 과학 시험범위 알아?' 정도면 돼. 대화를 길게 하지 않아도 돼. 그저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우리 교실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구나 안도하고 교실에 정 붙일 수 있었으면 해. 부담스러우면 편히 거절해도 돼 '◡'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꼭 비밀을 지켜줘야 해.
고맙게도 아직까지 네티 역할을 거절한 친구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네티로 지목받은 아이들은 또 다른 네티가 있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그렇게 학기 초에 네티를 선정해 두었는데 올해도 네티에게 임무를 줘야 하는 상황이 생겼네요.
지난주부터 세 명의 네티들이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근우에게 하루에 한번 한마디 건네기가 네티의 비밀임우입니다.
네티들은 서로의 존재여부를 모른 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각자, 또 어느 순간에는 같이 활동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미소 띤 근우의 얼굴도 보입니다.
네티들의 활약으로 근우가 웃을 수 있어야 다행입니다.
근우가 좀 더 행복해지길 바라봅니다.
천사소녀네티 오프닝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