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건넬 수 없는 슬픔이 있다.
얄팍한 내 상상력으로는 그 상실감과 헛헛함이 감히 짐작되지 않았다.
아이는 17살 나이에 엄마를 잃었다.
더 이상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받아들인 그날, 엄마는 아이를 조퇴시켰다.
코 앞까지 다가온 엄마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제 곧 엄마의 자리가 비게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있고, 언제나 당연했던 엄마의 부재를 아이는 실감할 수 있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엄마는 예상보다 빨리 고인이 되셨다.
여느 때처럼 출근하던 차 안에서 아이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그녀의 사망은 내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으나 유난히 말이 없는 아이가 이제 엄마 없이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엄마 없이 자라기에는 아직 어리다.
고작 17살인데.
가족장을 치르고자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말씀에 그저 아이가 엄마를 보내드리고 돌아오기만을 하릴없이 기다렸다.
일주일 후.
조회 시간에 교실에 가니 그간 비어있던 아이의 자리가 채워져 있었다.
난 어떤 위로도 건네지 않았다.
주제넘게 그 아픔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었으므로.
어떤 표정도 담지 않은 묵묵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이의 속마음을 나는 헤아릴 수 없었다.
차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참고 있을 아이를 건들면 안 되는 거였다.
애써 마음의 감정들을 누르고 있을 터였다.
먹물이 화선지에 닿으면 순식간에 번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아이는 감정이 새어나가면 화선지의 먹물처럼 걷잡을 수 없음에 알기에 안간힘을 쓰며 움켜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괜히 내 마음 편하고자 위로를 건넬 수 없었다.
내 역할을 한답시고 아이의 감정을 번지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저 무심한 듯 아이 주변을 맴돌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옷이 얇으니 겉옷을 더 입으라는 하찮은 잔소리를 건넸다.
그리고는 며칠을 분주히 교실을 오갔다.
밥은 먹었는지, 혼자 울고 있는 건 아닌지 매 순간이 아이 걱정이 되었다.
지켜보기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움직인 것이다.
그런데 며칠을 지켜보다가 이제는 안심이 되는 중이다.
며칠 전, 아이가 돌아오기 하루 전의 일이다.
아이와도 친하고 우리 반에서 가장 총명한 정아(가명)를 조용히 불렀다.
부탁을 하려던 참이었다.
'내일 민우(가명)가 올 거야. 사실 민우가 좀 힘들 일을 겪었어. 사정을 다 말해주기는 힘들고... '
까지 말했을 때 정아가 말했다.
'알아요. 그 일'
일부러 출석부에도 상고결이 아닌 인정결이라고만 적어두었다.
학급 구성원들이 아이의 부재 이유를 물으면 체험학습이라고 둘러댈 참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 간, 왜 아이가 학교를 오지 않느냐고 묻어오는 녀석들이 없어 괘씸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정아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원체 말수가 적고 속 마음을 쉽게 말하는 아이가 아니라서 친한 친구라 해서 스스로 말했을 리 없었다.
알고 보니 아이의 부재가 궁금했던 한 친구가 부담임이면서 우리 반 수학을 담당하는 선생님께 아이의 결석 사유를 물었고, 그때 그 선생님의 부주의로 아이 엄마의 사망 소식을 반 전체가 알게 됐다는 것이다.
순간 당황했다.
아이가 개인적인 일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을 텐데 큰일이다 싶었다.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정아가 말했다.
'선생님, 저 왜 부르셨는지 알 것 같아요. 제가 알아서 민우 옆에서 찝쩍댈게요. '
평소 하던 대로 가볍게 장난치며 아이 곁을 지켜주겠다는 센스 있는 정아 덕분에 걱정을 조금 덜 수 있었다.
그렇게 정아를 믿고 불안한 아이를 지켜보고자 교실에 들락거렸던 것이다.
그런데 교실은 걱정과 달랐다.
정아뿐만 아니라 우리 반 모두가 아이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알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아이의 짝꿍 도환이는 평소 절대 쉬는 시간에 교실에 있지 않는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공을 들고나가 농구장으로 향하는 아이다.
그런 녀석이 요 며칠은 아이의 옆에 앉아 있었다.
별다른 말은 하지는 않았다.
그냥 곁에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에 가보니 이번엔 한 무리의 녀석들이 아이 주변을 감싸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미리 말을 맞춘 것도 아닐 텐데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아이를 이끌어 급식실로 향했다.
특별히 아이를 배려하거나 특별대우를 하지는 않는다.
여느 때처럼 자기들 끼리 장난치고 말수 없는 아이는 함께 걸어갈 뿐이다.
그저 함께 있어 주려는 마음일 거다.
종례 시간에 교내 지질 탐사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신청하라고 하자 정아가 아이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다.
아이가 뜨뜻미지근하게 '글쎄'라고 말하자 정아는 스마트폰을 빼앗아서 직접 QR코드로 신청서를 작성했다.
입으로는 '같이 가자, 너 없음 나 친구 없단 말이야. 바람 쐬고 오자.' 하며 연신 아이를 부추겼다.
아이는 마지못해 허락의 고갯짓을 주억거렸다.
며칠은 나는 어쭙잖은 위로를 어떻게 그럴듯하게 건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슬픔을 삼키는 아이를 들쑤실 수 없어서 값싼 위로조차 건네지 못해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아이 곁에 맴돌 뿐이었다.
그런데 17살 우리 반 녀석들은 어떻게 위로할까 고민하지 않았다.
묵묵히 함께 있어주고 있었다.
도리 없는 위로보다 훨씬 의미 있었다.
아이 혼자 올곧이 이겨내야 하는 슬픔일 것이다.
차라리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표현하면 내 마음은 편하겠지만 타고난 성품이 감정을 자기 속에 품는 아이였으니 드러내는 것이 더 불편할 터였다.
그러니 그저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 옳았다.
바래본다.
곁에 있는 친구들의 온기가 아이가 품고 있는 고통을 조금씩 녹여줬으면.
재잘거리는 친구들의 소리가 아이의 마음에 시끄러운 상념들을 몰아내주었으면.
그렇게 적어도 학교에 있는 동안은 여느 17살처럼 편안했으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감히 부탁드리고 싶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건강히 졸업하도록 잘 지킬 테니 편히 눈감으시라고.
그리고 아이 곁에 친구들이 있으니 걱정되시는 그 마음 조금 편해지시라고.
앞으로도 섣부른 위로는 건네지 않으련다.
그저 곁에 머물며 함께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