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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는 못되도 MZ어는 하고싶어

교사의 말 배우기

by 행복해지리



촌스럽게 열공을 붙인 나란 인간



돔황챠 ??


반톡(학급 전체 단체 채팅톡방)에 시험 시간표를 공지했더니 한 아이가 돔황챠 라고 적었습니다.

먹는걸까요?

차 종류인가 싶었거든요.

아이들 말을 못알아 들어 소통이 안될 때 필요한 건 스피드죠.

빨리 검색창을 열어서 '돔황챠 뜻'을 검색합니다.

아하, '도망쳐'를 귀엽게 표현한 거였군요.

주식과 코인에서 하락장일 때도 이런 표현을 쓴다고 합니다.


전 고등학교 교사랍니다.

친구가 옆에 앉아 있는데도 인스타 DM으로 대화하는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소통하려면 신조어를 부지런히 익혀야 합니다.



'졌잘싸'를 아시나요?

체육대회가 끝나고 종례를 할 때였습니다.

모든 경기에서 선전했으나 1등으로 달리던 계주는 마지막에 넘어지고, 큰공 굴리기도 선두였는데 마지막에 공을 놓치고, 응원도 열심히 했는데 응원상 마저 놓쳐서 무관으로 끝난 아쉬움 가득한 체육대회였어요.

불평을 늘어놓을 만도 한데 끝까지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며 뒷마무리까지 잘해준 아이들을 크게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반장 아이가 '졌잘싸' 라고 외치는 겁니다.

처음에는 욕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대화의 흐름상 그건 아닌 거 같았고, 다른 아이들도 '그래그래 졌잘싸'라고 하는 거 보니 분위기 상 나쁜 말은 아닌가 보다 할 뿐이었죠.

사실 당시에는 받아쓰기도 안 될 만큼 단어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답니다.

그래도 촌스러운 담임은 되기 싫어서 원래 알고 있다는 듯 (사실 아이들은 제가 알아듣는지 마는지도 전혀 관심없지만) '맞아 맞아' 라고 얼버무리며 마무리했습니다.

아이들을 보내놓고 잊어버릴까바 졌잘싸, 졌잘싸를 중얼중얼 거리면서 교무실까지 갔습니다.

옆에서 봤으면 욕하나 싶었을 거예요.

검색해보니'졌지만 잘 싸웠다'는 뜻이었군요.

맞아 얘들아, 졌지만 잘 싸웠어 !



롬곡이 납니다.


아이와 진로 상담 중이였습니다.

중학교 까지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아이라 공부 방법부터 하나하나 코칭하고 있었습니다.

격려 10%에 압박 90%를 버무려 협박에 가까운 잔소리를 하고 있었지요.

열심히 들으며 메모하던 아이가 끝내는 깊게 한숨을 쉬면서 하는 말이 '아구 선생님 룸곡이 납니다'라는 겁니다.

채팅 중에는 검색 찬스가 있고, 무리 속에서는 다른 아이들 반응을 보고 반응할 수 있지만 1:1에서는 신조어가 나왔을 때 무방비 상태입니다.

당황하는 사이 대꾸할 타이밍은 놓쳤고 적당히 앞서 하던 이야기를 이어 붙어 상담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검색해 봤습니다.

눈물을 뒤짚어 놓은 말이더군요.

배워도 배워도 끝없는 신조어 세계입니다.






저는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교사의 생명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느낌이 좋아서 교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어요.

더 열심히 아이들 말을 배워야죠.


중꺽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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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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