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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 데이의 쓸모

by 행복해지리


누군가는 이슬만 먹고 산다고 했던가

는 보람을 먹고 삽니다.

교사거든요.


쉽지 않은 직업입니다.

어느 직종이든 쉬운 건 없겠지만 요즘 대한민국 교사하는 참 시시한 대접을 받습니다.

시시한 그들에게 세상은 책임은 크게 지게합니다. 권한은 주지 않으면서요.

까딱하면 아동 인권 무시하는 교사가 됩니다.

곧 가다오는 수능 시험장에서는 감독관이라 부르기만 하고 숨도 편히 쉬지 못하고 수험생 눈치만 뵈야 요.

많이 움직여도, 가만히 서있어도 민원이 되거든요.

에휴.

그럼에는 저는 교사라서 좋습니다.

정년까지 해 먹을 거예요.

학교에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아이들과의 시간이 좋아요.


쌤이 내년 한국지리 수업하면 안돼요?
내년에는 2학년 담임하세요. 우리 반 담임하게.
쌤, 내년에 세지(세계지리) 할 거죠? 쌤 믿고 선택한 건데.



학기말이 되어가니 내년에도 함께하자는 아이들의 러브콜이 받습니다.

훗, 내 매력에 빠진 건가.

츠근덕 대며 매달리는 아이들이 싫을 리가 없습니다.

교사는 아이들과 교감하는 것이 낙인 삶이니깐요.

허나 학교 업무분장이라는 것이 제가 고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업무분장희망원이라는 것을 제출하긴 하지만 말 그대로 '희망원'일뿐 윗분들이 서류를 참고만해서 필요한 곳에 배치되면 받아들이고 일하고, 또 수업을 합니다.

몸이 3개쯤 되면 통합사회, 한국지리, 세계지리, 여행지리, 지역이해까지 나랑 같이 공부했던 아이들이 나 때문에 선택했다는 모든 시간에 함께하고 싶지만 몸뚱이 하나.

아이들의 기분 좋은 매달림에 괜스레 분신술을 고민해 보는 요즘입니다.




○○○ 데이에 둔감한 40대 아줌마 교사는 오늘도 별생각 없이 교실에 조회를 하러 갔습니다.

루틴대로 지각생을 체크하고 중요한 전달 사항에 잔소리를 곁들어 쏟아냈습니다.

블라블라블라

굳이 교실을 몇 바퀴씩 돌며 1교시 수업 준비까지 다 챙기고 돌아서려고 하니 몇몇이 달려오네요.

자기가 만든 빼빼로라며 수줍게 내미는 아이들.

손끝도 야무지지 어쩜 이리 잘 만들었을까요.

친구들에게 주려고 만들면서 담임도 챙겨주니 세상 기분이가 좋습니다.

발걸음도 가볍게 교무실에 들어오니 이번엔 빼빼로 상자가 몇 개 올려져 있습니다.

수줍은 쪽지와 함께.

그동안 수업시간에 잘 가르쳐줘서 고맙다는 아이들.

아침부터 코끝이 찡합니다.

1교시 수업에 가는 동안 복도에서 슬쩍 눈물을 찍었네요.

그래 이 맛이야.


교사는 이 맛에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힘든 일도 많아요.

하지만 한 번씩 툭! 전해오는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에 에너지를 얻습니다.


사실 요즘 힘들었어요.

학기말이 될수록 일은 많아지고 컨디션도 안 좋거든요.

특히 목감기에 걸려서 침 삼킬 때마다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희안하게 수업하는 동안에는 참을만해요.

요즘 고등학교 1학년 수업에서는 '세계화와 평화'에 대해 수업하고 있습니다.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국제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전에없이 집중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 사례와 그 포화속에서 힘없이 사그라드는 어린 생명들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어찌 잔잔하게 수업을 하겠어요.

목청 높여 지구상에 평화가 자리할 수 있도록 세계 시민의 역할을 해내자고 이 연사 외칩니다...켁켁.

그리고 종 치면 바로 후회합니다.

살살할 걸.

( •́ ̯•。̀ )


그렇게 오늘 10반 수업을 끝나고 나오려던 참이었어요.

한 아이가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구호 활동이나 분쟁 지역을 돕는 정보를 얻을 수 있나요?
저도 실천하고 싶어요.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 눈을 봅니다.

그리고 제가 인스타그램으로 팔로우하며 정보를 받는 몇몇 행동하는 작가님, NGO 단체 등을 알려주었습니다.

재빠르게 받아적는 아이는 분명 행동하는 세계 시민으로 자랄겁니다.

목소리를 잃었으나 잃을만한 가치가 있는 수업이 되었네요.

교무실로 돌아와 빼빼로를 먹었어요.

아이들의 마음과 사랑을 충전합니다.

아자작.

아자작.

빼빼로를 부서먹고 2교시를 갑니다.

다시 즐거운 수업이 시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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