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아침부터 교실이 분주하다.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모여서 뭐하는거지
작당모의를 하나.
염탐을 위해 재빨리 한 팀에 끼어들었다.
'뭐야, 뭐야'
'나 진짜 귀엽지? ' 하며 사진을 내민다.
사진을 받아 든 사람이 담임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챈 아이들, 일동당황.
˘◡˘
사진은 자기들의 귀염뽀짝 시절 모습이었다.
오늘 기술가정 수행평가로 자신의 영유아기 시절 사진을 갖고 미래 육아 일기를 쓰기로 했단다.
사진 속 아이들은 모두 말간 웃음을 지녔다.
수염이 시커멓게 난 녀석이 어린 시절은 이랬구나.
아가씨 같은 아이들이 아가 때는 그저 순둥순둥 했구나.
애초 본 것이 17살, 다 큰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어른인가 싶었는데 아가 때 사진을 옆에 두고 비교하니 지금 얼굴 속에도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오른다.
매직 아이처럼 지금 얼굴에서 아가 때 모습이 두둥 떠오르는 것.
그 과정이 재밌어서 교실을 한 바퀴 순회하며 모두의 사진을 하나씩 살펴봤다.
누구 하나 빼는 아이가 없이 자기 사진을 봐달라며 내민다.
사랑스러운 모습에 하나하나 감탄사를 뿜어내다 보니 순식간에 조회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교실 끝 비어있는 책상에 시선이 닿았다.
그제사 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
빈 책상의 주인은 은수(가명).
어젯밤 늦게 아이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지난여름, 암을 발견하고 병환 중이셨다.
발견 당시 이미 전이가 된 상태로 급하게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병행했지만 몹쓸 암덩어리를 이겨내지 못하셨다.
내내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시다가 지난주 급격히 상황이 나빠지셔서 가족들이 모두 곁을 지키고 있던 중 세상을 떠나셨단다.
소식을 듣고 퇴근길에 곧바로 조문을 가기 위해 검은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한 상태였다.
운전하는 동안 푹 가라앉는 감정 때문에 힘들었다.
난 타인의 슬픔에 쉽게 물든다.
눈물도 많아서 15초짜리 광고만 봐도 눈물을 뚝뚝 흘려댄다.
남편은 연애 초에는 이런 내 감정 변화에 놀라기도 하고 안쓰러워했었다.
그러다 이제는 무덤덤해져서 놀려댄다.
연기 대상감이라며.
또는 공감 능력이 짱이라나.
하지만 내가 흘리는 눈물은 공감보다는 이기적인 감정에 가깝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얼마나 슬플까 대입해 슬퍼지는 것이다.
지극히 나를 걱정하는 감정이다.
아침에 아이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내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클까 걱정하며 한없이 기분이 내려앉아 출근한 상태였다.
그러던 것이 교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이들과 웃고 떠들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한없이 가볍고 부질없는 공감.
공감이 아니라 알뜰히 나를 위한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조회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정신을 차려본다.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깃털같이 가벼운 감정 변화를 들킨 것 같아 무안했다.
학교 안에서는 시곗바늘이 더 빨리 돌아간다.
이곳의 시간은 50분의 수업 시간, 10분의 쉬는 시간으로 분절되어 있다.
점심시간 한 번과 7번의 반복된 패턴으로 움직이다 보면 퇴근이 가까워지는 것.
그렇게 분주히 하루를 바삐 보내면 또 은수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머릿속에 아이가 아닌, 내 걱정 하나가 자라기 시작했다.
아이와 어머님을 뵈면 무어라 위로를 건네야 할까.
겪어보지 않은 슬픔이다.
남편과 부모를 잃은 슬픔의 감정이 마음속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 건지 헤아려지지 않는다.
얄팍한 상상으로는 슬프겠다는 느낌이 전부다.
참 저렴한 한 겹의 공감.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슬픔을 위로한다고 해서 그것이 유용하긴 한 것인가.
조문을 가는 와중에도 적당한 멘트를 고르지 못했다.
그리고는 내가 짊어진 위로의 무게가 버거워 발걸음이 무거웠다.
조문을 다녀왔다.
막상 조문 가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학교에서 은수를 잘 챙기겠다며 어머님 손을 잡아드리는 게 전부였다.
슬픔이 마른 것인지, 오랫동안 고통스러웠던 남편이 이제는 편안해져서 한편은 다행이라 여기시는 건지 은수 어머님은 옅은 미소를 띤 채 오히려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연신 인사를 건네셨다.
힘들게 미소를 보여주는 분 앞에서 위로의 무게를 운운하던 내가 부끄러워 한없이 작아졌다.
슬픔을 다독여 얻는 게 무얼까.
어쩌면 슬픔을 다독인다며 건네는 위로는 내 마음이 편하고자 하는 면피적 행동일 것이다.
그러니 섣부르게 슬픔을 다독이지 말자 다짐해 본다.
조문을 간 것은 그저 그곳에 머물며 슬픔을 잠시 느끼고 오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함께 했던 순간만큼, 내가 슬픔을 느끼는 시간만큼 그들의 마음의 고통이 덜어졌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