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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by 행복해지리

'이것 좀 읽어봐'


옆자리 선생님이 우리반 아이가 쓴 에세이를 건넨다.

유난히 말이 없는 아이, 민우(가명)의 글.


'읽다 울지 말고...'

뭔데 이리 겁을 주는 걸까.

글을 읽기 전 오늘자 민우를 떠올려본다.

여느 때처럼 살짝 고개를 숙이고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피해 교실에 들어왔다.

말 없이 조용한 아이는 얼마 전 엄마의 여였다.


나는 위로에 서툴러서 무엇도 쉽게 말하지 못했다.

다만 틈나는대로 아이 주변을 맴돌며 시선으로 쫓는다.

살피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러다 뜬금없이 잔소리 같은 안부를 날린다.

날이 추운데 얇은 옷을 왔다며 내일은 단디 입고 오라는 식의 말들이다.

아이는 희미한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어떤 대화에도 그저 주억거릴 뿐, 도통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아이.

사람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늘 저 아래 바닥을 응시하는 아이.

아이의 마음 속 이야기에 늘 목마르던 나에게 그의 에세이가 들어온거다.



1,000자 원고지에 써내려간 글을 본다.

글을 써 놓은 모양이 아이 성품 만큼이나 단정하다.

이야기는 초등학교 3학년에서 시작된다.

그 무렵 태어나 자란 마을에서 지금의 동네로 전학을 오게 되었단다.

새로운 학교, 낯선 이들 사이에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겁이 났다고 아이는 덤덤히 말했다.

3월 2일은 누구에게나 생경하다.

학년만 바뀐 학생들 마저도 낯선 교실, 서먹한 친구들, 어색한 선생님 앞에서 모든 것이 긴장되는 날이 그날이다.

3월 2일이 되면 전국의 모든 교실이 잔잔한 긴장감이 흐른다.

1년을 함께할 친구를 찾아 분주히 움직이는 시선이 존재한다.

다행히 아이가 마주한 교실 풍경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아이의 걱정과는 달리 먼저 가서 말을 걸어본 친구와 쉽게 사귀게 되었고 그 아이가 인싸였던 탓에 많은 무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단다.

그렇게 안정적이고 즐거운 학교 생활을 이어갔다고 아이는 회고했다.

노파심으로 걱정부터 앞세웠는데 즐거웠다는 기억을 보고서야 안심하며 한숨을 뱉었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문제는 2년 후에 발생했다.

5학년 때의 일이다.

아이는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힘조절을 잘못한 탓인지 한 친구를 밀쳐 넘어트렸단다.

즉각 그 친구에게 사과하며 일으켜주었지만 상대가 받아주지 않았고, 하교 후에도 전화와 톡으로 마음을 전했지만 싸늘한 반응이었단다.

그 후부터 끔찍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고 적고 있었다.

항상 함께 다니던 친구 무리는 그날 이후 민우를 괴롭히는 가해자가 되었고 나머지 반 아이들은 방관으로 동조했단다.

그 무렵이다.

민우 어머님께서 유방암 판정을 받고 투병을 시작하신 것이.

그러니 아이는 집에도 말하지 못했을거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그 생지옥을 겪어냈단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단다.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


하릴없는 눈물이 원고지에 떨어진다.

아이가 겪어온 절망을 이제야 알았다는 부질없는 미안함이 종이에 스며들어 자취를 감춘다.

어른이란 것이 부끄러워 아이의 글 아래 납작 숨어버리는 거다.


보잘것없는 이유에서 시작된 괴롭힘은 그 후 중학교 2학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나쁜 놈들.

다행히 아이의 글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지들도 지쳤는지 중학교 3학년이 되니 괴롭힘도 시들해졌다. 그 무렵 친구가 생겼다. 나는 조금씩 말을 했다. 그리고 올해는 더 친구들이 많아졌다. 마음 편하게 함께 있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 나는 안다. 지금처럼 마음을 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직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가 사람으로 치유된다는 것이 놀랍다. 아직도 치유 중이지만.






종례시간.

이번주 교실 청소 당번 중에 민우가 있다.

민우는 교실 쓸기 친구들이 한번 지나간 곳을 다시 정전기포로 먼지를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는 여전히 말이 없다.

절대 먼저 와서 말을 거는 법이 없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내가 먼저 가서 주책스럽게 수다를 늘어놓는 수 밖에.

그래도 최근 분명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나를 향해 한 번씩 씩 웃어주는 것.

그리고 본인 청소가 끝나고도 괜히 내 주변을 맴돌다가 내가 잔소리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요즘 기말고사 공부는 잘 하고 있는지, 저녁을 혼자 챙겨먹지 말고 외할머니 댁에 가서 먹으라는 둥 매일 반복되는 뻔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면 민우는 알겠다는 말대신 긍정의 고갯짓을 남기고 사라진다.

으그, 한번 알겠다고 말로 하면 해주면 을마나 좋을까.

엄청 비싸게구네

ㅋㅋㅋ



치유중이라고 했다.

아직은 마음을 완전히 펼쳐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별 수 없다.

그 문을 열어줄 때까지 노크하고 또 노크하는 수밖에.


'같이 눈사람 만들래? 아니면 자전거 탈래? ' ♪

라고 노래하던 안나는 어느 순간 지쳐서 벽에 대고 말하고 놀곤 했지만 나는 감히 약속한다.

민우가 내게 쪼르르 달려와 속마음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하릴없는 잔소리를 하며 끝없이 노크를 하겠다고. 지금 학년은 끝나가지만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내내 아이를 쫓아다니며 푼수짓을 하겠다고.

그렇게 아직 응어리진 마음의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곁에 있어주겠다고.

오늘 아이의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이 휘발되지 않도록 글을 쓴다.


아이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때까지 노크를 하겠노라고 평범한 교사의 비장한 다짐을 여기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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