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별인사, 한번씩 안아보자

by 행복해지리



담임 시간에 뭐할꺼예요?

어색한 이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요즘은 대부분의 학교가 1월 초에 학년을 마무리한다.

8월의 어느날 시작한 2학기를 끝내면서 학년도 끝내는 일정이다.

그렇게 마무리한 후 겨울 방학을 길게 보내고 3월의 첫 평일에 새로운 학년을 시작하는게 보통이다.

지금의 학교는 중요하고 중요한 생활기록부 점검을 이유로 2월에 3일 간 등교를 한다.

그랬다가 다시 봄방학을 하는 학사일정이다.

덕분에 1월의 마지막 등교는 미지근하게 마무리된다.

긴 시간 이어온 한 학기가 끝나는 날이라 왠지 그간의 수고를 격려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곧 헤어질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움의 인사도 오간다.

하지만 2월에 다시 만나야 하니 코안에 답답하게 들어찬 콧물을 풀지 못한 것처럼 애매한 상태로 인사를 킵해놓고 마무리를 했었더랬다.


시간이 흘러 진짜 헤어짐의 시간이 왔다.

오늘이었다.

학급 담임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마지막으로 만나는 시간, 종업식.

촌스럽게 강당에 모여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따위 듣는 행사는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학급 담임이 아이들과 교실에서 50분 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보내야 한다.

아쉬움과 머쓱함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20년을 교사로 살아왔으나, 여즉 완성형은 아니다.

가르치기 보다는 물들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며, 잔소리보다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데 늘 말이 앞선다.

헤어짐의 순간, 멋있는 말로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멋있게 마무리하고 싶으나 현실은 늘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어색하기만 하다.

50분이라는 시간을 이별로 가득 채우기에는 부담스러운 시간이기도 하다.

끝내 비겁하게 시간을 축냈다.

방학 내내 쓰고, 쓰고, 쓰던 생활기록부 마지막 점검으로 바쁘기도 했고, 온전히 50분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기에 반장에게 마지막 미션을 건넸다.

간단한 교실 정리를 하고 있으면 바쁜 일만 마무리하고 20분 후에 가겠다고.

그렇게 시간을 벌어 뻘쭘한 시간을 30분으로 줄였다.

실제로 눈 앞에 산적한 몇가지 일을 해치우고 나서 마지막으로 교실로 향했다.


헤어짐의 시간.

교탁에 서서 서른명의 아이들 하나씩에게 눈길을 보내본다.

몇몇은 눈을 마주치며 아쉬움을 표현하고, 몇몇은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 시선을 뺏겨 보지 못한다.


10분만, 마지막으로 10분만 인사 아닌 잔소리하고 우리 이제 헤어지자.


첫사랑을 만나 결혼해서 지금까지 사는 사람으로서 이별 멘트를 신전해볼 일이 없었는데, 기회가 있었다면 이런 식이였을까, 어색함 때문인지 생각이 샛길로 접어든다.

다시 돌아와 아이들을 본다.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가 느끼는 먹먹함과 아이들이 느끼는 이별의 감정은 어느 정도의 교집합이 있을지 궁금해하며 준비하지 않았지만 내내 고민했던 마지막 잔소리를 내려놓았다.


고등학교 2학년은 외로워.
이동수업이 많아서 몸도 피곤하고 신경쓸 것도 더 많을 거야.
책이랑 필통, 기타 등등을 넣어다닐 패브릭 가방 하나 챙겨다니면 좋아.
같은 반이지만 함께 듣는 수업이 1/3 밖에 안되니 우리반인데 우리반 같지 않은 느낌이 들 수도 있어.
1학년 때같은 끈끈함이 없겠지.
과목의 수는 늘어나는데, 수강학생 수는 줄어서 내신 따기는 더 어려울거야.
그래도 늘 똑같애.
시험은 수업하는 교사가 내는 것, 그러니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공부하는 행동 말고 설명이 가능할 정도로 정확하게 공부해야해.
1년 동안 내 잔소리 듣느라 고생했어, 우리반.
매번 듣기 힘들었을텐데 잔소리 마저도 귀 기울여 듣고, 고개 끄덕이며 듣고, 바뀌려고 노력해줘서 고마워. 나도 8반 담임이라 행복했어.
심심해도 놀러오고, 답답해도 놀러오고, 지나가다가도 놀러오고, 간식이 필요해도 놀러와.
우리 마지막으로 한번씩 안아보자.


한명 한명 자리에 가서 힘껏 안아봤다.

자그마한 교사를 아이들이 안아준다.

한명 한명에게 속삭이며 인사를 건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조금씩 눈물을 차올리던 수연은,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모아온 눈물을 주르륵 쏟았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저는... 선생님의 따듯한 잔소리 좋았어요.
선생님이라 좋았어요.


나도.

나도 우리 반이라 좋았어.

수연이를 만나 고맙고 행복했어.


잘가 우리반






photo by ⓒpixaba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