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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Feb 17. 2024

내가 면접관이 될 상인가



학교는 2월이 되면 새로운 학년도 준비에 분주하다.

중요도를 따지 어렵지만 게 중 난도가 높은 일이 있으니, 인사다.  

구성원이 바뀌기 때문에 그에 맞춰 새로운 업무, 학년, 보직 등이 결정된다.

또한 다양한 이유로 생긴 빈자리에 기간제 선생님을 모시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기간제 선생님과 함께하는 기간은 자리에 따라 1년 또는 한 학기, 더 짧게는 한두 달 정도다.

기간이 짧을수록 지원자가 없고, 과목에 따라 인력풀 마저 적어서 이래저래 자리를 모두 채우는 일이 쉽지 않다.

전에는 이런 학교 사정에 관심이 없었고, 여할 위치도 아니었다만 요즘 상황이 바뀌었다.

면접위원이라는 자격을 할당받아 평가하는 업을 부여받는다.

존재만 해도 쌓이는 경력이 제법 차올랐기 때문일 거다.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없다.

몇 달 전에는 초빙교사 면접이더니, 이번에는 1년을 함께할 같은 과목 기간제 선생님 면접에 참석했다.  


먼저는 서면 만남이다.

면접위원의 권한으로 한 장 종이에 담긴 그와 그녀의 학력, 경력을 훔쳐볼 수 있었다.

한줄한줄 읽어 내려갔다.


나보다 더 좋은 대학 나오셨구나.

고3 담임을 이렇게 많이 해보셨으니 배테랑이겠다, 난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남들이 꺼려하는 업무를 오래 하셨네, 대단하시다. 나는   시키면 '싫어요' 했을 업무인데.


이쯤 되니 질문이 생긴다.  

나는 이들을 평가할 자질이 있을까.

있다면 그게 무얼까.

내가 이력서를 적어야 한다면 무엇으로 빈칸을 채울까.

경력이 적당히 쌓인 정규직 교사라는 것 빼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겸연쩍어 헛웃음이 나왔다.


OOO 선생님, 시간 됐습니다.
회의실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맞춤 맞은 부름 덕분에 부끄러운 공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후다닥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문제는 머릿속에 든 생각이 무엇이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으나 자질에 대해 고민하던 찰나였기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주어진 시간 동안 앞에 앉은 그와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애꿎은 그들의 이력서만 노려봤다.

다행히 면접은 인사권을 갖고 있는 교감 선생님이 미리 준비한 질문으로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고개는 들지 못하지만 주어진 역할에는 충실해야하니 물음에 답하는 그와 그녀의 대답에 귀 기울인다.

허나 평가는 어려웠다.

대답은 한결같이 옳았다.

교육학 교재에 적혀있을 만한 틀에 박힌 대답이었으므로.

게다가 임용을 위해 필연적으로 무장된 사명감이 뭐든 열심히 하겠다는 대답으로 이어졌으니 누가 낫고 덜하다는 결론을 내기가 힘들었다.

고작 5분 정도 짧은 시간 마주하고 점수를 매겨 차등의 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여적 내가 미생이거늘 누구의 가치와 수준을 판단할 있을까, 다시 자격을 따지니 괴롭다.

괴로우나 자리에 앉아있었으니 나름의 기준을 세워 차등의 숫자를 적어야 하니 피로하다.

꾹 참고 소심하게 차등 점수를 부여했다.

 

다행인 것은 면접관으로써의 내 영향력은 미미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지난번 초빙교사 면접에서 고심고심해서 차등을 둔 점수를 부여했었는데 반대 결과가 나왔었다.

답정너다.

어차피 학교 인사권은 교감선생님의 것.

난 구색을 맞추기 위한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번에도 그분은 마음에 내정을 해놓고 계셨다.

안도한다.

내 선택이 누군가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선택받은 그녀와 1년을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이젠 면접위원과 면접자가 아닌 동료교사가 되어 새학년도를 함께한다.

그런데 이번엔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면접위원이라는 자리에 앉아있던 당신, 그 자리에 앉을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쫄린다.

잘하자.

새삼 긴장하며 새 학기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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