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급식에 랍스터가? 오늘은 '랍스터데이'

by 행복해지리



어, 오늘 못 온다고 했잖아?


조회시간.

교실에는 결석하겠다던 아이가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아픈데 어찌 왔느냐, 병원은 가봤느냐는 질문에 아이는 그저 빙긋 웃었다.

왜 이래 ㅋ

말없이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3교시가 끝나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교무실에 찾아왔다.

우리 학교는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 아침 조회시간에 스마트폰을 모두 제출고 종례시간에 나눠준다.

필요한 일이 있을 때 개인적으로 찾아와 폰을 사용하는데 오늘은 무리 지어 온 것.

점심시간에 사진을 찍어야 해서 핸드폰 꼭 필요하단다.

아이들은 또 씽긋 웃는다.


기대돼요.


아파서 학교오기 싫었던 아이를 등교시키고, 핸드폰을 챙겨 설레게 기다리는 건 그것.

바로 랍스터다.

오늘은 1년에 한 번 급식에 랍스터가 나오는 날이다.

랍스터데이.




4교시 수업 시간, 아이들에게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다국적 기업의 공간적 분업에 대해 말하지만 부질없다.

내 목소리를 아이들 귓등에서 튕겨져 나오는 듯하다.

이들의 오감은 온통 후각에만 집중되어 있다.

모든 에너지는 두 다리에 집결하고 있으리라.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100m 달리기 결승전처럼 아이들은 오직 수업 종료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띠리링 띠' (아직 벨소링 반에반에반도 안 끝났지만)

우사인 볼트가 이리 빠를까?

스프링처럼 튀어올라 교실문을 막차고 성난 소떼들처럼 급식실로 향하는 아이들.

나도 질 수 없으니 잰걸음으로 교무실로 향했다.

교과서를 던져두고 가장 먼저 눈 마주친 쌤과 급식실로 향했다.

품위 유지를 위해 뛰지는 못했으나 경보는 한 듯.

그리고 마주한 오늘의 히어로.

두둥.


KakaoTalk_20231101_163448252_01.jpg
KakaoTalk_20231101_163448252.jpg




잘 먹었습니다.

5교시 수업에 들어가니 우리 반 아이가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점심 잘 먹었냐는 내 물음에 아이는 또 빙긋 웃어 보인다.


쌤, 완전 행복해요.


전어를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했던가.

오죽하면 나갔을까 싶은 사연 있는 며느리도 맛난 밥상의 힘로 컴백한다니.

문득 반성이 올라온다.

의무감으로 구색만 맞춘 식사를 준비하는 나였다.

일하는 엄마라는 적절한 핑계 뒤에 숨어 밥상을 차리는 일은 늘 효율성과 속도전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이들이 급식 한 끼에 행복을 운운하니 내 밥상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준비한 밥상에는 영양은 있을지 모르지만 감동은 없다.


결심해본다.

이제 밥상에 감동을 담자.

사랑과 정성을 담아 밥상을 차려야겠다.

아이의 밥상이 매일이 랍스터데이가 되도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게 돈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