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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Jul 20. 2023

나만 느끼는 공포3대장



난 쫄보다. 

고소공포, 폐소공포, 물공포를 동시에 지녔다.  



고소공포와 폐소공포는 어려서부터였던 거 같다. 

어려서 낮은 저층에만 살다가 10층 아파트로 이사 갔을 때 베란다 근처도 가기 어려웠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갔던 포항제철 견학에서 바닥이 뻥 뚫린 철판으로 된 복도를 지나면서 울었던 나다. 대학 와서는 전국을 돌아다니는 답사를 해야 했는데 남한강 강가 절벽같은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차에서 창가 쪽에 앉아서는 불편함을 호소했다가 교수님께 혼이 났었다. '어디 저런 게 지리과에 들어왔어!' 

폐소공포증은 좁은 공간에서 느끼는 불편이다. 엘베베이터가 좁으면 난 계단으로 간다. 아이와 숨바꼭질을 할 때 절대로 옷장이나 이불속 같은 답답한 곳에는 숨지 못한다. 대신 식탁 밑이나 물건 뒤에 최대한 몸을 움츠려 숨지만 매양 들킨다. 그게 나의 최선이다. 

물공포는 많이 커서 생겨났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 때문이다. 이후 물이 가슴팍을 넘어서는 정도가 되면 물속에 잠길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몹시 힘들다. 얕은 물에서는 괜찮지만 깊은 물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튜브나 구명조끼 같은 도움은 있어봤자 소용이 없다. 발이 닿아야 안심이 된다. 



문제는 이 셋이 합쳐지는 극강의 공포 아이템이 있으니 워터파크 내 어트랙션이다. 

그까짓 거라는 말은 접어두시길. 내가 느끼는 공포를 인정해 달라는 건 아니니깐. 난 대부분의 놀이기구를 타면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당장 떨어질 것 같고, 숨 쉬기 불편하고, 내리 꽂히다 못해 날아갈 거 같고, 기계가 멈출까 봐 걱정되며, 심장은 타들어가는 것 같다. 

그래도 타봤으니 이런 공포도 아는 거 아니냐 생각할텐데, 딩동댕. 아이들이 어릴 때 놀이동산에서 유아용은 많이 타봤다. 어린이 대공원에 있는 회전그네를 탔다가 울었고, 바이킹을 탔다가 죽음의 공포를 맛봤다. 내 수준이 그 정도다.  



무서운 놀이기구는 아빠랑 타면 되고 대체로 짐이나 보면 되니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문제 상황에 봉착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워터파크에서. 




주로 남편과 아들이 짝이 되어 어트랙션 위주의 놀이를 즐기고, 난 딸과 짝이 되어 미끄럼틀을 타고 유수풀 정도에서 노는 게 패턴이었다. 그간 이렇게 노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워터파크 내 어트랙션은 키 제한이 130cm로 아직 딸아이는 이 기준에 미달된다. 탈 수 없으니 고민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 기준은 120cm이다. 딸아이 통과. 





키 제한을 넘어섰다는 말에 신이 나서는 딸아이도 호기롭게 놀이기구를 타겠다며 나섰다. 그런데 당연히 같이 탈거라 예상했던 엄마가 머뭇 거리며 아빠 등을 떠미는 것을 보고는 멈춰버렸다. 수년 전 아이들이 어릴 때 벌레에 대해 공포가 없던 큰아이가 엄마가 기겁을 하는 모습을 본 이후 갑자기 벌레를 무서워하기 시작했었다. 그 이후 남편은 내 공포를 학습한 거라며 남자애가 저렇게 크면 안 된다며 내게 공포를 숨기라 했었다. (주머니에 넣어두면 되는 거니? •̥̥̥ ᎔ •̥̥̥)  이번에도 엄마가 겁을 내니 아이도 덩달아해보지도 않고 겁을 낸다며 남편은 같이 탈 것을 강요했다. 덩달아 옆에 있던 아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내가 갖는 공포를 축소시켰고 딸아이는 엄마랑 같이 가면 탈 수 있겠다며 불필요한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이쯤 되었는데 안 타면 엄마 직무유기다. 





어느새 난 철제 계단을 올라 저 공포의 터널 앞에 와 있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저 좁은 통로로 들어가야 한다. 심장이 쫄깃하다 못해 쪼글아 들어버릴 것 같은 내리막의 공포를 맛봐야 하며 마지막에 물에 빠져 허우적댈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것도 편하지 않지만 죽지는 않을 거라며 나를 다독여 태웠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살살 밀어주세요 ㅠ 


안전요원이 참 착한 분이셨다. 비웃지 않고 정말 무섭지 않다며 용기를 주었고 힘을 빼고 튜브가 나아갈 정도로만 밀어주었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애초에 놀이기구 자체가 유아 수준이었는지 예측이 가능한 반복되는 패턴만 갖춘 놀이기구라 마지막에는 웃으며 내릴 수 있었다. 올레~ 살았다. 


 



워낙 사람이 없는 날이라서 이 어트랙션만 다섯번을 함께 탔고 이후 용기를 얻으신 따님은 오빠랑 짝이 되서 튜브 슬라이드도 타고 혼자 타는 바디슬라이드까지 도전했다. 어찌나 기특한지. 


그렇게 꼬박 8시간을 놀고 퇴장할 수 있었다. 

날씨 요정이 함께 했고, 불필요하게 공포를 오염시키지 않아 더없이 행복한 하루였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당부했다.  

앞으로는 놀이기구는 느그들끼리 타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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