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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손잡고 들꽃 산책

by 행복해지리



이른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휴가 마지막 날, 어제 하루 종일 워터파크에서 놀았음에도 새벽같이 일어난 아들과 아침 산책을 나섰습니다.






숲 속 산책길을 택해서 걷었습니다.

건물과 도로가 사라지고 호젓한 숲으로 들어서자 오직 둘 뿐입니다. 높다란 나무들에 가려져 햇볕이 도달하지 않는 숲길을 걷자니 쫄보기가 발동됩니다. '멧돼지를 만났을 때의 행동요령' 팻말을 보니 저도 모르게 아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헌데 그건 아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아이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지금껏 내가 이 아이 보호자라 생각하며 어른 노릇을 했는데 어느새 아이는 자랐고 제가 아이에게 기대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재사 엄마 키만큼 훌쩍 자란 아들을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든든해진 마음으로 산책을 이어갑니다.





숲길을 빠져나와 볕이 비치는 길로 들어서니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많습니다.

나이가 들었는지 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여다보고 어여쁘다 말해주며 관심을 쏟게 됩니다. 이름이 궁금해서 일일이 꽃이름 검색까지 해보며 질척거리는 엄마를 아이는 재촉하지 않습니다. 말없이 곁에서 기다려주는 아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큰까치수염, 작은 꽃망울이 터지면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일 것 같습니다.
톱풀, 꽃을 촬영하면 이름을 알려주는 앱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자주꼬리풀, 산지에 많이 자란다는 이 꽃은 색이 참 고와요.
붉은토끼풀, 역시나 색이 고와서 한참을 봤습니다. 주변에 네잎클로바는 없었어요.
동자꽃, 제주를 제외한 높은 산지에서 볼 수 있는 꽃이라 합니다. 산지에서.... 그래서 전 못 봤나 봅니다
벌개미취, 벌판에서 자라는 개미취라는 뜻으로 식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어린 시절에서도 지금처럼 두어 발자국을 걷기 어려웠어요. 호기심대장답게 돌멩이하나에도 질문을 만들어내던 아이였으니깐요. 그 곁에서 지루함을 참고 피곤함을 이겨내며 함께한 시간이 이제는 반대 상황이 되었네요.

웃음이 흘러나옵니다.

시간의 덧없음에 지금이 더 아쉬워집니다.

꽃 그만보고 다시 아이 손을 잡고 걸어봅니다.

이 아이는 언제까지 엄마 손을 잡고 산책도 해주고 다정히 이야기도 나눌까요?

사춘기가 오늘 시작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도 여적 엄마 곁에 있어주는 아이가 새삼 고맙습니다.

수많은 날들 중 알천 같은 오늘을 붙잡고 싶어서 아이 손을 잡고 느적느적 걸어보지만 제 맘을 알리 없는 아이는 지루한 산책을 끝내고자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잘 꾸며놓고 먹지는 말라던 샘터



아이의 시계와 부모의 시계는 서로 다른 속도로 째깍거립니다.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는 아이의 시계와 자꾸 과거와 현재에 매달려있고 싶은 부모의 시계는 엇나가기 마련인가 봅니다.

그러다 이렇게 마주치는 순간이 오면 그 시간을 꼭 붙잡고 또 아이와 나란히 걸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을 글로 기록합니다.

이렇게 순간을 붙잡아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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