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이름이 붙어 있는 생명이라 이들이 시들시들하거나 아프면 긴장도 되고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이 이름붙이고 함께 키우는 식남매는 총 3세대가 있습니다.
1세대 식남매 - 칼랑코에
남매가 다니는 학교는 대대로 입학하는 날 선물로 칼랑코에 화분을 줍니다.
그것을 한 달여쯤 교실에 두고 키우다가 집으로 가져오는데 그날부터 원치 않는 식집사 노릇이 시작됩니다.
아들은 그것에 자기 이름 앞글자는 붙여 시코에라 부르고, 이어서 딸은 여코에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간 제대로 못 보살펴서 죽일 고비를 수차례 넘겼고(그때마다 애미 심장도 덜렁덜렁했네요), 글로 배운 분갈이도 해주고, 나는 안 먹는 영양제를 맞춰가며 여적 키우고 있습니다.
5년 전 초등 입학식 하던 날, 처음 마주한 카랑코에
(좌) 자그마치 5년 되신 시코에 (우) 2년 차 여코에, 본인 이름 앞글자를 붙여 주는 게 규칙입니다.
분명 꽃이 예쁘게 피는 식물인데 우리집 와서는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아마도 환경이 맞으면 될텐데 그런 수고는 하고 싶지 않은 게으른 식집사 입니다.
2세대 식남매 - 도토리나무
이건 제가 자초한 일이라 입은 있으나 투정하기 어렵네요.
도토리를 심으면 정말 나무가 될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행동입니다.
작년에 서울환경연합에서 식물일 활동을 신청해서 도토리를 받게 되었고 지침을 잘 읽고 집 가장 커다란 화분에 심어주었습니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남매가 이번에 선택한 이름은 시토리, 여토리 입니다.
시토리와 여토리는 싹을 띄웠을까요?
한 달이 조금 지나서부터 싹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걸리면 100일 정도 걸리기도 한다고 하네요.
시토리와 여토리는 서로 다른 참나무였던 모양입니다.
저는 잎만 봐서는 구분하지 못하지만 참나무는 아주 다양한 나무들이 있습니다. 보통 도토리가 열리는 모든 나무들이 속하며 떡갈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등이 이에 속합니다. 시토리와 여토리는 각각 어떤 나무일까 매번 궁금하긴 하지만 찾아보는 수고는 하지 않습니다.
여토리
시토리
꼬꼬마 시토리와 여토리는 1년 차 시절에는 큰 성장이 없었습니다.
원래 처음 도토리를 받았을 적에는 봄에 심어서 가을에 이 녀석들을 숲에 옮겨 심기주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아파트 베란다에서 자라서 인지 작고 가냘린 녀석들을 야생에 나가면 살아남으려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역시나 아이들 이름을 붙여놔서 더 집밖에 내놓기 힘들었던 점도 있습니다.
그렇게 끼고 있은지 2년차 올해 봄부터 폭풍 성장을 거듭하더니 제법 나무 같은 줄기도 생겨났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방생을 해야 하나 걱정이 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아이들은 계속 크는 걸 지켜볼 수 있도록 우리 땅에 심어주자고 하는데, 우리 땅이 있어야 말이죠 ㅋㅋㅋ
2년 차 시토리와 여토리
3세대 식남매 - 개운죽
식남매 막내 라인은 바로 개운죽입니다.
개운죽은 둘 다 둘째 따님이 학교 활동 후 모셔온 아이들이라 본인 뜻대로 희망이와 소망이라 이름이 붙었습니다.
사실 따님은 모르는 비하인드가 있습니다. 이들 중 둘째 소망이를 제가 차에 일주일쯤 방치했었습니다. 5월이지만 이미 차 안은 엄청 뜨거웠을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두었더니 잎이 바짝 마르더라군요. 아차 싶어서 아이가 신경 쓰지 않는 틈에 제 사무실 창가에 두고 약 2주간 보살폈습니다. 잘 지내나 들여다보고 물도 보충해 주고 타버린 잎은 정리해 주고 기다렸더니 다시 기운을 차렸답니다. 줄기마자 일부 누렇던 녀석이 다시 생생해졌어요. 맞춤맞게 딸아이도 그제야 왜 소망이가 안 보이냐고 찾았고 당당히 집으로 모셔왔습니다.
식물도 생명이니 괜히 호기심에 들였다가 말라죽거나 또는 환경이 맞지 않아 죽는 모습을 보면 죄스럽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직접 기르는 일은 피하고 싶은데 뜻대로 사는 게 이리 힘이 듭니다.
오늘도 녀석들이 잘 자라고 있는가 들여다봅니다.
5년 전 처음 알게 된 카랑코에의 꽃말은 설렘이라고 합니다.
점차 나무가 되어가는 도토리들을 살펴보며 기특하고, 말라죽을 뻔한 위기를 이겨낸 개운죽의 생명력에서 희망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