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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또 이름값을 합니다

by 행복해지리



명성이란 게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

지금껏 한결같이 받아온 평판이라면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근거가 차고 넘칠 것이다.

오늘도 예외 없이 난 이름값을 해내고 만 것이다.


똥손 !

에라이



난 요리에 취미가 없으며 굳이 해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해봤자 안되니 정말이지 재미가 없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심보를 지닌 것은 아니고 한동안은 고집스럽게 덤비던 눈물겨운 때가 있었다.

신혼 때가 그랬고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어 줄 때까지는 노력했다. 하지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거늘 난 강아지 만도 못한 건인지 요리는 늘 높고 높아 넘지 못하는 허들이었다. 시험 공부하듯 인터넷 레시피를 읽고 정리해서 따라 했건만 늘 예상보다 2-3배씩 더 시간을 써야 했다. 제 때 밥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시간이 늘어지니 마음이 급해져서 허둥대다가 결국 요리는 망쪼가 든다. 어쩌다 시간이 맞으면 간이 맞지 않고 것도 아니면 모양이 이상하고 덜 익히는 일도 다반사였다.


난 요리 똥손이다.




문제는 메타인지에는 이상이 없어서 제 실력을 정확히 알고 있음에도 자꾸 요리에 도전한다는데 있다.

인스타를 보다가 꽃소떡 만들기 영상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이 정도는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바로 스마트폰 앱을 열어 새벽배송으로 소시지 + 가래떡 + 중형 산적꼬치를 주문했다.



인스타그램 dorosirak 님 게시물 캡처


dorosirak 님 인스타에 가시면 눈이 휙 뒤집어지는 창의적인 레시피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저 dorosirak 님 레시피를 보며 대리만족하는 팔로워 중 한 사람입니다.



다음날 자신 있게 가위를 꺼내 가래떡을 꼬집꼬집 꼬집어서 비틀비틀 비틀어 꽃모양을 만들었는데 마음과 달리 안된다 (역시나). 억지로 떡잎을 펼쳐서 소시지를 넣고 꼬치를 꽂는 것 조차 쉽지가 않다. 혈관을 못 찾아서 계속 바늘을 꽂아대는 신입 간호사 모냥 찌르고 또 찔러보지만 그럴수록 소시지는 부서지고 떡잎은 너덜너덜해질 뿐이다. 겨우 몇 개 만들어 구웠더니 타고, 굽다가 또 터지고, 모양이 뒤틀리는 대환장 파티가 이어졌다.



꽃소떡이 타서 내 속도 탔다.
떡하나 튀기면서 팬은 또 왜 저모냥이 된 건지
그중 가장 멀쩡한 단 하나의 꽃소떡, 소중해서 단독 사진
보는 이에게 미안하지만, 사실 난 이정도로 제법 만족하는 바이다.



정말 다행인 건 이런 애미 손에서 10여 년 자란 남매의 입맛과 보는 눈은 허들이 낮다는 것.

타거나 또는 터지거나 혹은 그을린 꽃소떡 일지라도 남매는 격하게 환호해 주었다.

그리고 애미의 노동의 수고를 헛되지 않도록 게눈 감추듯 흡입해 주었다.



그럼에도 완판 됐으니 기쁘지 안이한가



이러니 똥손임에도 다시 도전해 보고픈 욕구가 자꾸 샘솟는 것이 아닌가


다음은 토끼주먹밥을 시도해볼까 싶다.

귀가 되어줄 아몬드부터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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