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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새로운 스킬이 남편과 닮았다.

by 행복해지리



아들은 종종 제 노트북으로 공부를 합니다.

노트북에 저장된 음원으로 영어책 듣기도 하고 수업 강의를 들을 때 사용합니다.

오늘도 제 책상에서 자기 공부를 하던 아들이 공부가 무료했는지 노트북을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아들은 자기 이야기가 녹아있는 제 브런치 글을 찾아 읽는 것을 기꺼워합니다.

글로 표현된 자기 모습이 재미있고 에피소드를 제공해 준 것에 뿌듯해하는 모양입니다.

그런 맥락으로 새롭게 자기 이야기가 담긴 글이 있는지 찾아보려다가 바탕 화면에 있는 '브런치'라는 이름의 폴더를 발견하고는 이것저것 파일들을 열어보더군요.

그곳에서 글에 사용되는 사진들과 몇몇 습작들이 들어있습니다.

한편에서 빨래는 캐키면서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순간 창피스러웠어요.

완성된 것들도 아니거니와 부족한 면면을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엄마와 아들 사이라고는 하지만 굳이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서둘러 아이를 제지했습니다.


"아들, 엄마가 니 핸드폰 카톡 대화를 들여다보면 싫지? 지금 엄마가 그런 기분이야. 엄마 노트북을 뒤적이지는 말아 줄래?"


"어어. 알았어. 알았어. 그럼 안되지. 안 할게. . "


분명 민첩했으나 감정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진심보다는 학습된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방점은 '끝'에 있었어요.

그 끝은 자신의 행동을 그만두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잔소리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요것 봐라!

확인을 위해 한마디를 보태 물었지요.


"뭐가 끝이야? 엄마 잔소리 못하게 하려고 빨리 인정하고 두 번씩 말하는 거야? "


"엄마 눈치 빠르네. 봐~ 안 하잖아. 나 공부합니다. 조용히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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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어리숙하고 순진한 아들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한방 먹은 기분입니다.

한편 잔소리가 길어질까 봐 사회적 멘트를 날리고 위기를 모면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합니다.

공부한다고 하면 엄마가 더 말 붙이기 어려울 거라는 걸 알고 무기로 사용한다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고 이 상황이 낯설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아들의 스킬은 남편의 것과 퍽 닮아있습니다.

아빠가 아들을 앉혀놓고 전수했을 리 만무하고 우리 집 B형이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 닮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아들의 원대로 조용히 수건 개키기에 집중해 봅니다.





아이는 점차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제 품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12살이 되었으니 늦된 편입니다.

학교 끝나면 엄마에게 전화해서 수다를 늘어놓고 퇴근한 엄마를 향해 돌진하는 서비스도 꼭꼭해 주는 아들입니다.

잠들어 가기 전에는 엄마 침대에 나란히 누워 몇 분 간 팔베개 에너지를 채워야만 자기 방으로 향하는 아들이 이제는 어린 아이티를 벗어내려 합니다.

아쉽고 기특한 양가적 감정이 드는 걸 왜일까요?


엄마만큼 자라난 키, 엄마보다 더 커버린 발, 이제는 마음도 쑥쑥 자라고 있는 아들을 오늘도 사랑합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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