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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Oct 12. 2023

날 울린 캐릭터 도시락


안녕하세요 ^^ 똥손입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숨길 일도 아니네요.

똥손이여도 일상생활에서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손으로 만지작 거려서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일이 흔하지 않거든요.


아! 하나 있네요.  •́ ̯•。̀

매일 아침 딸아이 머리 묶어주는 일입니다.

천만다행인 건 딸아이가 저를 닮았는지 머리 만지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래서 머리를 묶되 간단히 양갈래 머리를 선호해요.

핀을 찌르는 것도, 땋는 것도 모두 거부하는 효녀입니다.

똥손 엄마에게 최적의 따님이죠.


그 와중에 가르마는 삐뚤빼뚤, 아무튼 등교 준비 끝






언제부터 인가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캐릭터 도시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어찌나 금손 엄마들이 많은지요.

곰과 토끼가 들어간 동물원도 보이고, 피카추와 마리오가 있는 캐릭터 천국도 보입니다.    

캐릭터 도시락 사진들을 보면서 저는 3단계 감정 변화를 겪었어요.

먼저 반짝이는 그들의 아이디어에 반하고, 이어 아이들을 위한 엄마들의 정성에 놀랍니다.

(가끔 아버님들도 계시더군요 )

마지막으로 '저걸 내가 만들어야 한다면'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공포가 되더군요.


다행인건 하늘은 제 편이었습니다.   

캐릭터 도시락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제게는 생기지 않았어요.

남매가 다닌 유치원은 모든 야외 활동을 오전 중에 해결하고 원으로 돌아와 점심 먹는 걸 원칙으로 했습니다. 초등학교도 마찬가지였어요.

항상 점심 식사가 제공되는 현장체험학습을 구성해 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과자와 과일 정도만 챙겨주면 되었습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ㅠ

을 다 쓴걸까요.


엄마 나 현장체험학습 갈 때 도시락 싸야해.
뭐 싸줄거야?


뭣이랏!

도시락!


원래는 2학기 현장체험학습도 점심 식사 제공 코스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있었던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 노랑버스 안전 문제 이슈로 인해 둘째 아이 체험학습 일정이 변경되어 버렸고 그 과정에서 도시락을 챙겨가야 하는 것으로 바뀐 겁니다.

노랑버스의 날갯짓은 제게 캐릭터 도시락을 안겨줬습니다.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에 기대감을 한껏 담아 엄마를 올려다봤습니다.

간절함에 부흥하는 답을 해줘야 할 텐데 차마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질문을 토스했습니다.


어떤 거 싸줄까?


나는 문어 소시지랑 토끼 주먹밥 정도
딱 그 정도면 돼


토끼주먹밥 정도면 된다니요, 그것 씩이나 인데



...그 정도면 돼!

언제부터 문어랑 토끼가 그 정도면 되는 표준이 되었습니까.

껏 잘 피해왔는데 이제는 정면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날부터 멀티미디어 학습에 돌입했습니다.

유튜브 선생님들은 어찌 그리 손이 빠르신지 툭툭 붙이면 눈이 되고 쓱쓱 썰면 수염이 되더군요.

순간 쉬워 보이더군요.

그들이 쉽게 하는 걸 나도 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됐고 끝내 연습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대로 따라하면 될거라고 철썩 같이 믿어버린거죠. (아니 믿고 싶었어요 ㅠ 요리 귀찮아요.)

그렇게 오늘 새벽에 무모하게도 곧바로 실전에 돌입했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어요 ㅠ


주먹밥 틀에 넣은 밥은 왜 다시 나오지 않을까요?

분명 토끼를 만들었는데 왜 쥐도 아닌 곰도 아닌 낯선 녀석이 나오는 걸까요?

귀여운 문어 소시지를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왜 무서워 보이는 건지요?


실패작이 나올 때마다 제 입으로 들어갑니다.

토끼 (생긴 건 토끼가 아니었지만) 몇 마리를 시작으로 코끼리와 문어까지 망치는 대로 잡아먹고 나서야 도시락 통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작은 통을 채우는데 2시간 30분이나 걸렸어요.

내내 노래를 부르면서 말이죠.  


♪ 왜 너는 나를 만나서 왜 나를 아프게만 해

♪ 내 모든 걸 다 주는데 왜 날 울리니

♪ 니가 나에 상처 준만큼 다시 돌려줄 거야

똥손여자라고 하지 마 용서 못해 (부글부글)

 

                                                                        

슈가맨 방송캡처 ♪왜 너는 나를 만나서 왜 나를 아프게만 해






무튼, 똥손도 캐릭터 도시락을 만들었습니다.


하얗게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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