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고 싶다.
앞서고 싶다.
따라잡고 싶은데 뜻대로 안되니 약이 오른다.
해내는 양보다 쌓이는 양이 많으니 늘 뒤쳐진다.
업무, 너란 녀석.
오늘도 산적한 일을 해치우듯 겨우 한개씩 미션을 지우고 있던 그때,
시설 점검으로 인해 2시부터 30분간 정전이 됩니다.
업무에 참고하세요.
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현재 시간 1시 50분.
전기가 꼭 필요한 PC를 이용한 카드리딩을 하던 중이었다.
중간에 전기가 나가면 데이터이를 잃어버릴 수 있으니 하는 수 없이 작업을 멈췄다.
그리고는 예정보다 5분 늦게 전기가 나갔다.
뭘하지...
일의 순서가 정해져 있어서 카드리딩을 마쳐야 다음 일들이 순서대로 가능하다.
강제 일시멈춤.
오늘 꼭 마쳐야 하는 일이다.
내가 카드리딩을 해야 다른 선생님들이 채점도 하고 차근차근 성적처리가 이뤄진다.
허나 멈췄으니 멈춰야지.
별 수 없다.
고맙게도 책상 위에 책이 있다.
잠시 잠깐이라도 틈이 생기면 읽겠다며 들고 다니지만 그뿐, 학교에서는 펼쳐볼 시간이 없다.
90년대 대학생처럼 가슴팍에 안고 다니는 악세사리같던 책.
지금이다.
악세사리가 제 역할을 할 시간.
속으로 아싸를 외치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책을 읽자니 좀 어둡다.
그러고 보니 전기가 나가면서 형광등 빛이 없으니 대낮인데 교무실에 어두웠다.
아,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구나.
드르륵드르륵 블라인드를 올렸더니 아늑하게 태양빛이 내려온다.
그동안 한낮에도 쨍한 형광등 불에 의존하며 지내는 탓에 태양빛을 느끼지 못했음을 뒤늦게 자각한다.
책읽기 딱 좋은 포근한 자연광에 의지해서 다시 책을 펼쳤다.
어쩐지 보너스 휴가를 받은 기분.
정전되는 동안 일을 못하니 결과적으로 할일을 더 쌓이겠는데 그럼에도 한낮에 망중한이 속도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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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 털컥. 뚜뚜. 띠로리. 뿌우우.
형광등이 일순간 켜지고, 각종 기기들이 전기가 들어왔다고 저마다의 신호음을 요란하게 내며 작동을 시작했다.
책을 덮을 시간.
잠시 얻은 휴식이 참 달콤했다.
꿈 같은 시간을 덮고 다시 일을 쫒아나선다.
언제쯤 일보다 앞설 수 있으려나 생각하며 망중한에서 빠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