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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Dec 26. 2022

궁상떨다 먹는 크림빵의 쓴맛

나에게 인색한 나에게






이것도 기념이라고 저녁 메뉴를 소고기로 정했다.

휴직의 끝자락이라 생활비가 부족했고,

20만 km를 넘긴 15년 된 노후차를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한도를 꽉 채운 마이너스 통장은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늘어서 이참에 집담보 대출로 갈아타야 했다.



신청했던 대출이 실행됐다.

와우 통장에 (은행) 돈 들어왔다.

갚을 걱정은 나중에 하고 우선 소고기를 사러 눈누난나 정육점에 갔다.

신나게 갈비살, 살치살, 꽃등심을 5팩이나 사서 충분하려니 생각했다.

혹여나 모자라면 내가 덜 먹으면 되지 싶었다. 그러지 말 것을.






열정을 다해 눈사람을 만들고 나니 아이들이 배가 고플 수 밖에




올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잦다.

12월에만 벌써 3번째 눈놀이다.

앞서 두 번은 눈이 적게 왔거나 뭉쳐지지 않는 싸라기눈이었는데 이번 눈은 눈사람 만들기 딱 좋은 눈질이었다. 남매는 각자 눈사람을 만들어 놀이터에 세워두고 집에 오자마자 배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굽기 무섭게 접시가 비워졌다.

잘 먹는 게 기특하고 맛있게 먹으니 기분이 좋아서 정신없이 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5번째 팩만 남았다.

소고기라 구워지길 기다리는 시간이 없다 보니 난 밥한술 뜨지 않았는데 마지막 고기라니.

살짝 정보를 흘렸다.


이게 마지막이다. 이렇게 잘 먹을지 몰랐네. 넉넉하게 살걸 미안해.


들었겠지?

혼잣말인양 옹알거렸으나 눈치채길 바랐는데 역시나 김 씨들은 내 말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게 마지막 한 점까지 싹 비우고 아이들이 자리를 떠나버렸다.

한숨을 삼키고 고기만 먹느라고 남긴 아들의 밥에 식어버린 된장찌개를 넣어 먹으려고 할 때 남편이 걱정을 하며 한마디를 건넸다.


먹을 게 없네. 짜파게티 끓여줄까?


그의 친절에 내가 내뱉은 대답은 "짜쯩나"였다.





내가 울컥한 포인트는 뭐였을까?


고기를 다 먹어서 먹을 게 없으니 짜파게티를 끓여주겠다는 남편의 선심이었을까?

실컷 놀고 와서 배가 고파 정신없이 고기를 흡입한 남매의 식성이었을까?

기왕 사는 거 넉넉하게 사지 않고 쫌스럽게 고기를 산 내 궁상이었을까?

것도 아니면 나도 좀 먹자 말하지 않고 알아서 챙겨주길 바라는 내 소심함이었을까?


식은 된장찌개에 찬밥을 먹다 말고 남편에게 소리 질러버렸다.

크림빵!!! 크림빵 사다 줘.


 




국민학교 3학년 때 그 아이 외치지 못했다. 옷을 바꿔달라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우리 집에는 없는 바비 인형이 여럿 있었다.

셋이서 원하는 인형을 하나씩 고르고 옷은 가위바위보 해서 순서대로 골라가서 놀기로 했다.

가장 먼저 인형 옷을 고를 수 있는 기회는 내게 왔다.

그런데 인형 주인 친구가 딱 봐도 내 인형과 크기가 맞지 않는 아주 작은, 그렇지만 아주 화려한 드레스를 골라 이건 어떠냐고 내밀었다. 눈대중으로 봐도 내 인형에게 맞을 리 없었는데 그거 말고 다른 게 맘에 든다고 말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동안 내 손에는 그 작은 인형옷이 쥐어졌고 다음 차례에 그 친구는 내가 눈으로 찜해둔 옷을 가져갔다. 내 손에는 파란색 화려하게 보석이 박힌, 내 인형에게 입힐 수 없는 작은 드레스가 들려 있었다.

 




그 아이는 커서도 속내를 말하는 걸 어려워한다. 말하지 않았음에도 남들이 알아서 배려해주는 마법을 기대하며 살아갔다. 그러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섭섭해한다. 주변인들은 맥락 없이 빡치는 나를 보고 황당했을 것이다.


먼저 원하는 걸 말하고 내 몫을 챙기는 일에 서툴다.

자리 잡힌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뒤틀린 속내를 집 밖에 나가서는 티 내지 못하면 매번 가족들에게만 표현하는 못난 나다.

 

  




남편이 부리나케 사다준 크림빵을 먹으며 다짐했다.


나를 아끼는 연습을 해야겠다.

누군가에게 바라지 말고 내가 나를 돌봐야겠다.

알아주길 바라지 말고 내 마음을 내가 읽어줘야겠다.

갑자기 써늘해진 집안 공기를 느끼고 긴장한 남매에게 미안해서라도 바뀌어야겠다.


크림빵 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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