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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Apr 30. 2023

남들은 빵 터질 때 나는 속이 터졌다.

현실초등아들의 공개수업 후기



3일 차이로 남매의 초등 공개수업날이 통보됐다.

아들은 수요일 2교시, 딸은 같은 주 금요일 3교시.

오가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적어도 2시간 이상의 외출을 해야 했다.

일이 바쁘고, 시간을 빼기 어려운 상황이라 초등 입학 후 처음 공개수업하는 딸만 가면 안되나 꾀가 났다.


(엄마) 아들, 공개수업에 엄마가 안되면 섭섭할까?
(아들) 응. (도리도리)


사춘기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 초등 5학년 아들이 참석을 원하는 도리도리를 시전하시니 고민을 접었다.  

어렵게 시간을 쥐어뜯어서 겨우 아들의 공개수업에 참석했다.






공개 수업 주제는 내 삶의 보석, 감정 낱말 찾기였다. 

다양한 감정 표현 낱말을 확인하고 배운 감정 낱말로 한 줄 글쓰기 발표가 이어졌다.

'나는 이래저래 해서 이른 느낌이 들었다. '는 포맷에 맞추는 방법이었다.


(선생님) 발표해 볼 사람?

선생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번쩍 들어 올린 건 내 아들이었다.

와우!

기특하여라. 

씩씩한 태도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모습에 으쓱했다.

아들의 발표를 듣기 전까지는 ....


(아들) 나는 어젯밤 몰래 유튜브를 보다 들켰는데 증거인멸을 안 한 게 후회된다.

선생님은 순간 아들의 발표 내용을 캐치하지 못하시고 머뭇거리셨고,

아이들과 참관한 학부모들은 단박에 이해하고 큰 웃음이 터졌다.

나는 속이 터졌다.

아구 두야 ( •︠ˍ•︡ )



그날 아침,

아들을 열심히 흔들어 깨우다가 이불 속에서 어젯밤 몰래 유튜브를 본 태블릿피씨를 찾아냈다.

아들의 이런 몰래 행각이 처음도 아니고, 등교할 아이를 아침부터 혼낼 수 없어서 처벌을 미루고 등교를 시킨 상태였다.

그런데 호되게 혼나지 않아서 인지, 개그 욕심이 앞서서 인지 신난다고 자기 잘못은 희화화 한 것이다.

  

사실 이때까지는 나도 웃었다.  

우리 아들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발표도 잘하고 위트도 있구나 싶어서 좋기도 했다.  



학부모 참관수업이라 수업은 40분 내내 아이들의 발표로 구성되어있었다.

선생님께서 두 번째 학습지를 작성하도록 하셨다.

교실은 집중한 아이들의 연필 소리만 따딱따딱 울려퍼지는데 혼자 낄낄대는 아이가 있었으니 (한숨 좀 쉬고) 내 아들이다.

녀석은 학습지를 채우는 동안에도 다음 개그를 발표할 생각에 신나게 고 있는 거였다.

등짝만 봐도 잔뜩 신났음이 느껴졌다.

웃느라 어깨를 들썩이며 학습지를 작성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 저렇게 계속 까불다가 선생님께 혼나는 건 아닐까 걱정도 올라왔다.

 

(선생님) 발표해 볼 사람?  

다시 발표 시간.

이번에도 주먹이 발사될 것처럼 번쩍 손을 든 아들.

다행히 발표 기회는 앞서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이 먼저 돌아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은 연신 손을 들어서 어필했다.

곧 선생님께서 팔을 휘져으며 발표하겠다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자 두 번째 작품(?)이 발표되었다.


(아들) 다음에는 철저히 은폐해서 들치지 않을 계획을 생각해 내서 뿌듯하다.

발표를 끝낸 후 아들은 고개를 돌려 흐뭇하게 뒤쪽에 서있는 엄마들을 한번 훑어봤다.

아마도 관중들의 반응을 살피는 듯했다.

그의 기대에 부흥하듯 참석한 학부모들과 아이들은 박수를 쳐가며 호응해줬다.

그때 내 왼쪽에 있는 엄마들이 혼잣말로 '쟤 누구야~ 정말 웃기다'라고 했고,

오른쪽에 있던 두 사람은 서로 쿡쿡 찌르며 '쟤 진짜 골 때린다. 엄마가 누구야~?'라며 두리번거렸다.

민망함은 내 몫이다.

쥐구멍 어딨니? (  ̯ • )






수업을 끝내고 선생님께서 '부모님하고 인사 나누세요' 하고 아이들을 보내셨다.

아들은 본인이 작성한 학습지 실물 자랑스럽게 디밀었다.


(아들) 엄마 나 오늘 잘했지?


증거인멸을 안 한 게 후회된다는 아들. 그 와중에 어려운 말 써서 반갑기도 한 철없는 애미



한없이 해맑은 아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삐져나왔다.


잘했어. 우리 아들. 발표도 잘하고 수업도 집중하네. (살짝 이를 물어주고) 근데 집에 가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자. 하하하






교실 뒷면에 아들의 미술 작품이 보였다.

화난 얼굴이 숨겨져 있길래 알아봤더니 아들이 아기처럼 좋아한다.

아들의 철없는 발표에 민망했던 마음이 스르륵 사그라들었다.


그러고 보니 5학년이 돼서도 엄마가 학교에 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주는 것이 새삼 고맙다.

덕분에 아들이 공부하는 교실에도 와보고 집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게 깨발랄한 모습을 봤다.

학기초 학부모 상담을 전화통화로 해서 못뵌 선생님 얼굴도 직접 뵐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잘못을 했을 지언정 혼날 생각에 종일 주눅 들어있지 않고 위트 있게 해석하는 까불거리를 아들이 마냥 귀여웠다.



교실 뒤에 붙어있던 아들의 미술작품



현실초등_아들은 종종 속 터지게 하지만 한편, 덕분에 웃는다.  

오늘은 생각했다.

울아들 영원히 사춘기 없이 이렇게 철없이 해맑으면 좋겠다고 ˘◡˘







* 아들 엄마의 고충 *  


제 블로그에 [아들 엄마의 고민] 카테고리에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놀러 오세요 '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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