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기적 우편함
먹구름 밑에서 우는 매미, 실외로 나왔을 때 저절로 한숨을 쉬게 되는 텁텁한 공기, 몇 걸음만 걸어도 등에서 흐르는 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더운 마음. 씻고 나와도 금방 축축해지는 목덜미, 여름이란 그런 것인데 어느 부분을 자꾸 미화하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여름을 좋아하는 나여도 35도를 훌쩍 넘는 더위 앞에선 눈앞이 새카매진다. 숨이 턱 막히는 공기 앞에선 입을 벌려도 도통 공기가 넘나드는 느낌은 없고 더운 숨만 얕게 드나들 뿐이다. 더워서 죽겠다는 무시무시한 저주를 얼마나 퍼부어야 온도가 하늘 높은 줄을 알까.
너는 어떻게 그렇게 여름을 사랑할 수가 있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늘 사랑하진 못했다는 말을 삼킨다.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기에...사실은 미워하고 있었다는 말도.
2019년 이후 내 여름은 무리하게 끊겨 있었다. 끊긴 여름의 조각은 유럽에서 시작한다. 생일을 다급하게 마무리하고 떠난 유럽은 아름답고 고요했다. 고요함이란 철저하게 이방인에게 불친절한 외국의 본분과도 연결된다. 여행 막바지에 40도가 넘는 더위를 못 이긴 동생이 쓰러졌고 나는 구급차 옆자리에 타서 파리하게 질린 동생의 얼굴을 보며 번역기로 소통을 해야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영어를 정말 못했다. 신호가 제대로 터지지 않는 병원 안과 밖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며 한국에 이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복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었다.
온갖 검사를 다 마치고 돌아온 동생의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내가 몇 번이나 신을 찾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평소엔 믿지도 않는데 찾아서 괘씸했나. 하루를 꼬박 날린 후에야 겨우 동생은 병원 안쪽에서 걸어나왔다. 걸어나와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가도 된대 언니야, 집에 가자.
이탈리아는 지긋지긋했다. 한국행 비행기는 태풍으로 결항됐다. 내 인생에 그렇게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떨던 때가 있었나 싶다. 형태와 방향을 알 수 없는 분노가 목구멍 깊은 곳에서 말이 되지 못한 채 새어 나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일, 사랑, 친구, 가족 등 여러 구석에서 어떤 끝을 맞이했다. 한국이라고 안전하지 않았다.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은 심지어 외국으로의 탈출까지 막았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건 아득하게 절망적이다.
내 의지가 아닌 끝을 어떤 식으로 다시 이으면 좋을까 매번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마무리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외에, 이해와 포기 그 어딘가에 있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지속적으로 불안과 불만의 사이에서 표류하며 살았다.
끝없이 나를 미워하는 시간 속에서 여름은 초라해지기 가장 쉬운 시간이었다. 여름은 죄가 없는데도. 사랑을 미움으로 치환하는 것이 가장 쉬웠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가장 사랑하던 것이 추락한 모습은 비극적으로 선명했다. 여름에 빛나던 나는 없고 끝이 바래고 땀으로 어두워진 낯만 있을 뿐. 여름은 종종 그런 불행으로 얼룩졌는데도 나는 여전히 여름을 미화하려는 시도 안에 있었다. 그러나 영원이라는 말이 그렇듯 여름은 어떤 것도 약속해 주지 않았다.
미친 듯이 싸우고 멀어진 사이가 회복이 쉬운가, 자연스럽게 멀어진 사이가 회복이 쉬운가 물으면 이젠 답을 모르겠다. 여름 안에서 입은 상처들이 너무 커서 영영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아무래도 내가 무언가를 속단하기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게 했다.
얼마 전에는 인이 '여름이 온전히 네 것이구나'라는 말을 했다.
그러게, 진짜 이번 여름엔 못 가진 게 없는 것 같다. 아 건강은 조금 해쳤다. 대신 자연재해처럼 날 덮친 사랑이라든가 마냥 아름답진 않아도 새로운 회사라든가. 같은 직군에서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라든가. 얻은 조각들이 커 패인 상처에 금방 살이 차오른다. 살이 차올라도 흉터는 남겠지만 나는 상처 입은 것을 후회하고 돌아보진 않으려고 한다.
트라우마라는 말의 가장 오래된 뿌리는 '뚫다'라는 뜻의 그리스어라고 한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는 "트라우마에 관한 한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나는 트라우마를...'이라는 문장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트라우마는 나를...'이라고 겨우 쓸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여름의 트라우마는 나를 모든 계절 내내 관통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내가 살아남은 흔적이니 기꺼이 자랑스러워 하련다. 이게 이번 여름의 내가 내린 결론이다. 어느 가수의 말처럼 끝나지 않는 계절의 기억에만 머무르던 내가 한 발짝 나서고 있다.
여름과 화해하기. 제일 바라고 미뤄 온 숙제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