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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풀 Jun 28. 2022

방황의 자수

비정기적 우편함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방황할 것 같아.


어느 날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23살의 미국에서도, 25살의 일본에서도, 26살의 유럽에서도, 그리고 28살의 다시 한국에서도. 반복한 고민을 이어붙이면 비로소 내가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니지, 왜 나는 변하지 않는가. 결국은 어영부영 마지막이 와도 좋을 텐데, 왜 끝은 보이지 않는가.


언니, 사람이 원래 불안정하다면 우리는 안정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러게, 미래를 확신하려 하는 데서부터 괴로움이 시작되는 거지.

응 그렇지.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언니도 수 없는 불확실함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으니까. 언니는 안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일을 덮어놓고 남의 일을 먼저 걱정할 줄 아는, 불행히도 그 방법을 알아버린 아주 안된 사람. 우리는 서로의 잔머리가 길게 얽힐 때까지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고민했다. 답은 여전히 나오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와 미래형 어미 것은 호응하지 않는데도 나는 방황 중이라는 핑계로 문장을 아무렇게나 조각낸다. 나의 안된 사람을 위하여, 혼자 만든 건배사로 킬킬대면서.


언니와 방황을 나누던 시간이 그립다. 새벽을 걷는다. 길거리에 웅크린 어둠이 발치로 팍 튀어 오르면 손을 꾹 부여잡고 비명을 참는다. 밤길을 헤매다 말고 우리를 골린 고양이가 유유히 멀어지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비명보다 높은 웃음소리를 흘려보내고. 이제는 혼자 걸어야 한다. 그마저도 혼자 걷다 마주하게 될 그늘이 두려워 불 켜진 곳만 퐁당이며 걷는다. 빛이 끊기면 오도 가도 못한 채로 그 자리에 붙박이게 된다. 결국은 터져버린 눈물이 발자국을 따라 똑, 똑, 찍힐 만큼 구슬픈 길을 걷게 되겠지만. 걸음을 멈춘 행인의 그림자에서 뿌리가 자라났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명쾌한 답을 원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인데도 감히 답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면 울 것 같은 얼굴로 땅만 찬다. 우리의 뇌는 학습된 데 익숙하다고. 해본 것은 무섭지 않다네요. 모르고 겪어본 적 없는 것들이라 무서움을 부풀리는 것뿐이라네요. 잭 니츠키는 인간의 뇌가 모든 부정적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불확실함이 제일 좋아하는 짝꿍은 상상력과 어둠이지요. 그것들은 특히 밤에 사는 우리에게는 천적이지요. 가장 감정적인 부분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웃기죠. 나는 웃겼어요.


종로 골목 어딘가의 사주 선생님은 책상을 탁탁 친다. 쪽박도 대박도 아닌 무난한 인생이구나! 인생이 무난한 아이의 뒤통수에 역마라는 꼬리가 붙어서 파르락 파르락. 재미있겠다 수빈 씨 인생은. 제 인생은 무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럼 어찌해요? 어찌하긴 그렇다고 엎을거여? 그거 아니면 그냥 살면 되지! 명랑한 목소리가 뒤통수에 퍼억하고 달라붙는다. 그러게요, 글쎄요. 알쏭달쏭 한 답변 끝에 걸린 해가 솟는지, 지는지는 언제나처럼 알 수 없지만. 발이 닿는 곳이 땅인지 하늘인지도 언제까지고 모르겠지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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