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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풀 Jun 22. 2022

사랑의 연료는 무엇이면 되나요

비정기적 우편함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사랑을 하기에 실격인 사람도 있을까. 


며칠 전에 누군가 술자리에서 던진 질문이다. 다들 불콰하게 술이 오른 상태로 새로운 토론 주제에 귀를 기울였다. 


“인간 강아지인 거지. 사람이 너무 좋고, 사람이 있는 자리도, 사람이랑 노는 것도,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도 그냥 다 너무 좋은 거야. 박애주의자 뭐 그런 거 같은 거.”


그게 그 화두를 던진 이가 정의한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몇 초 정도 정적이 이어졌다가 한 사람이 단호하게 ‘불호’를 표시했다. 


“바꿔서 이야기하면 내가 그 사람한테 특별한 사람이 되더라도 그걸 못 느낀다는 거잖아. 그럼 난 싫어. 내가 그 사람이랑 사귀는데 그 사람이 나를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대하면 그게 무슨 사귀는 관계냐? 그냥 수많은 여사친 중 하나인 거지.”


“난 상관없을 거 같은데, 아무리 그 사람이 사람을 미친 듯이 좋아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좋아하긴 힘들잖아. 특별한 애정을 받는 사람은 본인이 그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쯤은 알지 않을까?”


두 사람의 이야기가 부딪히고 난 다음부터 주변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실격이라는 말은 너무 슬프지 않냐는 말부터, 박애주의자가 죄냐는 볼멘소리. 모두를 아끼고 친절한 사람과 만나봤는데 최악이었다는 솔직한 경험담까지. 각 좌석이 시끌시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빈은 어때? 수빈이 사람 좋아 부류의 인간 아닌가? 수빈이 연애 어떻게 하더라?”


그렇게 모든 시선이 나한테 쏠렸다. 그러게, 수빈이 연애 어떻게 해? 궁금증을 담은 10쌍의 눈이 한꺼번에 깜빡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흐름 속에서 쏠리는 시선이 달갑지는 않았다. 팽팽하게 갈리는 두 가지 의견 속에서 한쪽을 해명하는 듯한 말을 해야 하는 당사자가 된 것이 어찌 유쾌하리.


“좋아하는 거랑 사랑은 다르지 않을까?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두 어번의 그런가? 사이에서 질문은 길을 잃었다. 술자리는 다시 의미 없는 북적거림으로 가득 찼다. 나는 질문 사이에 남겨져서 집에 가는 내내 그 질문에 대해 고민했다. 고맙게도 친구들아, 나는 그런 질문을 허투루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말이다. 


쉽게 나를 태우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헤어진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순간이었고 헤어지는 것은 영원과 같다. 사랑을 시작하면 우선순위가 바뀐다. 순식간에 차곡차곡 적립된 승점을 바탕으로 1위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지. 


인간은 학습이 빠른 동물이라, 몇 번의 학습이 반복되고 나면 빠르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나는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 방금 끝난 사랑과 같은 것은 다시는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 생각보다 인생의 타이밍은 쉽게 찾아와 주지 않는다는 것.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무섭고 아득해진다. 혹여 시작하게 되더라도 방어적인 태도로 임한다. 나는 이번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 이번에는 절대로 상처 입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런데 사람 관계에는 절대성이 없다. 그럼 상처 입고 싶지 않은 나는 어떡하지? 그런 생각에까지 이르면 다음 단계는 한층 어려워진다.

방금까지 나열한 것들은 지난 몇 년간의 내 모습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무서워지는 상황이 올 줄이야. 울렁거리는 감정이 설레는 것이 아니라 ‘또 시작됐다’며 머리를 짚어야 할 상황이 올 줄이야. 항상 아현이에게 통보를 한다. 나 이 사람 좋아하는 거 같아. 그러면 아현이는 왜 또 사랑에 빠져서 왔어, 한다. 상태가 심각해 보이면 ‘우리 집 올래?’하고 긴급 호출까지 이루어진다. 좋아한다고 했는데 사랑에 빠졌다고 정확히 짚어내는 그 앞에서 나는 또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하는 것이다. 아시잖아요. 생각대로 됐으면 제가 안 이러고 있겠죠. 안 그럽니까. 


날 상처 입힐 것이 뻔한 사랑의 손을 잡고 있자면 엄마 말을 죽어라 안 듣는 반항아가 된 기분이다. 이 사람과 ‘실패하지 않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된다는 것이 서글펐다. 실패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실패한 사랑도, 짝사랑, 이별도 모두 이름만 다른 같은 것들인데도. 


그런 과정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지금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사랑하기에 실격인 사람’이라는 질문이 다르게 들린다. 사람을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로 무방비하게) 너무 좋아해서 (그만큼 되돌려주지 않는 사람들을 붙잡고) 사랑하기에 실격인 사람이라는 질문이 되는 것이다. 목표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사랑하지 않기, 쉽게 나를 태우지 않기. 실격하지 않기 등등. 하나 추가하자면 여름에 사랑에 빠지지 않기. 더 이상 내가 아끼는 계절이 아픈 감정으로 뒤덮이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허공에 으름장을 놓으며 어느 저녁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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