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락 페스티벌
케이팝(K-POP)에는 열광하지만 진정한 K-음악인, 국악은 어려워하는 이유가 뭘까. 지인 A에게 물어봤다. ‘그야, 국악하면 엄중한 궁중악이 먼저 떠오르니까. 편하게 즐기기는 좀 부담스럽지 않나.’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날치는 어때?”
“그건 좋던데.”
“이날치 국악밴드야.”
“아 그래?”
“이날치는 왜 좋아해?”
“그냥, 노래도 좋고 힙하잖아.”
진정한 K-음악임에도 불구, 전통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재미에 대한 관심은 활발하지 않다. 대중과 뜨겁게 만나기 위해서는 전통음악의 변화도 필요한 걸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소리를 살리면서 대중성을 띨 순 없을까. 그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는 시간과 공간이 있다.
7월 한 달을 달려온 2022 여우락 페스티벌이 7월 23일 ‘여우락 Extension’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여우락 페스티벌은 국립극장이 매년 개최하고 있는 여름 축제다. 이번 여우락 주제는 ‘확장’, ‘증폭’, ‘팽창’. 우리 음악의 자유로운 폭발을 발산하는 현장으로 기획됐다. 여우락 Extension에서는 그간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아티스트 중 일부가 참여해 공연을 그려냈다.
여우락 페스티벌은 ‘팔레트’ 같았다.
거문고와 드럼, 판소리가 하나의 소리를 만들고, 아쟁과 전자음악이 구슬프고 힘 있는 노래를 한다. 다양한 분야의 국악과 연주자로 만든 공연은 마치 하나의 그림을 보고 온 느낌이었다.
하나의 큰 전지에다가 각 모서리에 앉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물감을 흩뿌려 완성된 것 같은 그림. 연주자들이 입은 옷들처럼 각각의 색과 소리가 꺾이지 않고 만든 그림. 그리고 여우락은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한 팔레트가 되어 있었다.
보통 공연이나 연주회를 갔다 오면 동행인과 함께 다시 듣고 싶은 곡을 꼽아보자고 하는 편이다. 이날 그 영광은 리마이더스와 달음이 차지했다. 네 사람은 ‘네 개의 점’이라는 이름으로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났다. 가야금과 거문고 듀오로 활동하는 두 크루의 만남이었다.
같은 악기 구성으로 다른 음악을 하는 크루이기 때문에 같은 무대에서 만날 일이 없었다는 히스토리는 그들의 만남에 특별함을 더했다. 리마이더스의 김민영 연주가는 “리마이더스는 MBTI로 치면 E, 달음은 I”라며 각자의 특색을 자랑했다.
마주 보고 앉은 리마이더스와 달음이 만들어내는 연주는 닮았고 달랐다. 들리는 소리가 다르고, 연주하는 모습도 다르다. 악기 위를 나르는 손과 즐거운 표정은 닮았다.
그들이 소개한 연주의 이름은 ‘원심력’. 네 개의 다른 힘이 보여주는 무대는 강렬했다. 술대로 거문고를 힘차게 두드리자 강단 있는 베이스가 깔렸고 피아노를 치듯 바쁘게 가야금 위를 타고 나르는 손가락이 멜로디를 더했다. 둔탁해 보이는 악기 안에서 새어 나오는 통통 튀고 발랄한 음을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손으로 무릎을 두드리는 등 나름대로의 흥을 표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을 다녀봤지만 콘서트를 제외하고 이렇게 관람객들이 몸을 흔들고 소리 없는 박수를 치며 참여하는 공연이 있었나. 시체관극이라는 극단적인 용어가 쓰일 정도로 엄격한 관람 매너를 요하는 곳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전에 공연한 연주자가 나와 공연을 마무리하는 소감과, 여우락에 참여하는 중 발생한 에피소드, 다음 연주자에 대한 소개를 말한다. 그리고 나면 새로운 무대가 시작된다. 공연이 끝날 때마다 하나씩 사라지는 악기가 너무 아쉬워서 멀어지는 악기들의 그림자를 오래오래 봤다.
무대에 설치된 몇 개의 장치, 드럼을 제외하고 모든 악기가 빠진 빈 무대에 다시 연주자와 악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피날레는 궁중음악 ‘수연장지곡’이 장식했다. 공교롭게도 나의 지인 A가 엄중하고 어렵다고 말했던 그 궁중음악이 등장한 것이다.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유려한 궁중음악을 연주하면서 여우락은 다시 국악이 가지고 있는 전통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유롭게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들던 소리가 마치 자신의 뿌리는 여기이며, 지금까지 당신이 들은 것과 지금 이 음악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우락. 비음과 유음으로 만들어진 부드러운 소리가 입안에서 데구루루 구른다. 이름 한 번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다. 여우비 내리던 마지막 축제, 여름을 악기로 사용하는 청량한 시간. 마지막 곡임을 알리는 궁중 가락이 아쉽게 귀에 멀어진다.
공연이 끝나고 나온 밖은 빗소리로 시끄러웠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여름 공기에 비가 추적추적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매미 소리는 간데없고 빗소리만 투두둑, 토도독. 공연장 안팎으로 넘쳐흐르는 여름의 소리에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여우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궂은비 내리듯 가슴에 스며들고 밀려드는 사랑을 노래한 ‘여창가곡 우락’이 생각난다는 한 연주자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나도 여우락을 다르게 기억해 보려 한다. ‘여름, 우리의 악(락)기’라고 이름 붙여볼까. 국악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차세대 음악인들의 ‘소리’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우리 음악을 들고 찾아올 그들의 연주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위 글은 아트인사이트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