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카페 : 디렉터스 컷
땀 범벅으로 걸어온 여자와 눈물범벅으로 의자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던 여자가 눈을 마주친다. 척 봐도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중 서 있는 여자가 먼저 입을 연다.
“모텔인가요?”
그것이 야스민과 브렌다의 첫 만남이었다.
친해질 수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포스터에서 이 둘은 껴안고 있었던 것인가.
첫 만남을 마주한 소감이다. 아마 그들이 서로를 보고 느낀 점이기도 할 것이다.
야스민은 턱 바로 아래까지 단추를 채운 빡빡한 정장에다가 제법 난해한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 마구 뻗친 머리에 어깨까지 늘어진 가디건과 어딘가 조금씩 색이 바랜 양말과 치마 차림의 브렌다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브렌다와 야스민의 대조적인 모습은 극 내내 반복되는데, 그것을 찾아보는 것이 제법 재밌다. 야스민은 화를 내지도, 울지도 않는다. 브렌다는 울고 있었고, 불같이 화를 냈다가 금세 진정한 후에 멋쩍게 웃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혼자’라는 것. 외로움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이니까. 그리고 몸에서 뚝뚝 흘러내릴 정도의 외로움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농도가 짙다. 외로운 사람 두 명이 붙어 앉았을 때 나아지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고, 마술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랑인 줄 알았던 것들이 너무 쉽게 흩어진다. 가진 것은 무능력뿐인 브렌다의 남편은 나가라는 말에 냉큼 자신의 짐을 챙겨 떠난다. 뺨을 한 대 거하게 얻어맞은 야스민의 남편도 차를 몰고 떠나버린다. 여기서 야스민의 독보적인 캐릭터가 돋보인다. 남겨진 사람들의 얼굴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야스민의 표정은 도통 읽을 수가 없다. 무슨 감정이 담겼는지 도무지. 야스민은 미련 없이 가방을 하나 꺼내 쥐고 사막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야스민이 향하던 곳은 디즈니랜드다. 야스민은 왜 디즈니랜드를 가고 싶어 했을까. 독일에서 반대편 대륙인 미국까지 와서 가려던 곳이 디즈니랜드라니. 꿈과 마법이 대표적인 수식어인 디즈니랜드를 꿈꾸던 야스민은 사막 한가운데서 자신만의 디즈니랜드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무뚝뚝한 독일 여성이 가져오는 변화는 제법 드라마틱 하다. 사무실과 카페는 새로 태어난 듯 깨끗해진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생긴 갑작스러운 변화에 총까지 들고 쫓아온 것이 무색하게 브렌다는 바뀐 환경에 쉽게 적응해버린다. 무언가를 치우고 정리하고 애정을 쏟기에는 브렌다는 너무 지쳐있었고, 어쩌면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야스민과 같은 누군가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야스민은 사막 한가운데 내려앉아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필리스와는 친구가 되고, 살로모에게는 하나뿐인 관객이 된다.
브렌다는 이 무뚝뚝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이 여자가 자꾸만 자신과 자신의 삶을 헤집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급기야는 야스민과 아이들의 행복한 시간을 깨트리고는, ‘네 아이들에게나 잘하라’는 공격적인 말을 해버리고 만다. 야스민은 울지 않고 화내지도 않는다. 그저 고요하게 답한다. 아이가 없어요. 자신의 불행과 상황이 제일이었던 그녀의 감정과 방패에 금이 간 순간이다. 그대로 나가버린 브렌다는 얼마 못가 돌아온다. 소리 없이 다시 열린 문과 함께 브렌다의 마음도 열린다.
Magic. 마법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마술이라도 해석하기도 한다. 언어학적으로는 마력으로 불가사의한 일을 행하는 것이 마법, 손놀림이나 장치, 속임수로 불가사의한 일을 해 보이는 것이 마술. 둘은 엄연히 다르다. 야스민은 마녀가 아니니까.
분명 야스민이 사람들의 귀에서 동전을 꺼내고, 손에서 꽃을 피운 것은 마술인데, 사람들의 마음까지 열린 것은 마법 같다. 그러는 동안 야스민의 모습도 변해간다. 편한 차림에, 모자에 숨기고 있던 붉은 머리는 편하게 내려놓고 모든 것은 편하고 헐거워진다. 스며들기 좋게끔. 야스민이 한 마술 중 제일은 브렌다에게 웃음을 되찾아준 일이다. 미소는 그러니까 정말로 마법 같았다.
“The magic is gone.(마법은 사라졌어요)”
그리고 마술을 멈추는 건 대개 현실이다. 야스민의 거침없는 마술을 멈춘 것은 비자 만료. 순식간에 이방인의 신분을 실감하게 만드는 철퇴다. ‘우리는 이제 가족이에요’ 같은 말풍선을 띄워놓은 것 같은 그런 행복한 시간에 대한 철퇴. 야스민은 그렇게 미국 땅을 떠나고 만다. 야스민의 부재를 실감하게 만드는 여러 장치들이 나는 저 말이 그렇게 슬펐다. 찾아온 행복을 정말 하나의 일시적인 이벤트처럼 치부해버리는 그런 말 같아서...
야스민은 결국 돌아온다. 야스민이 어떻게 돌아왔는지 몰라도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 돌아온 것이 마땅한 그들의 가족이니까. 달려오는 야스민의 얼굴과 브렌다의 얼굴이 같은 모습인 게 마음을 두들겼다. 돌아오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엎어질 듯 뛰고 싶지 않았을까. 바그다드 카페가 나만 기억하는 모든 환상이면 어떡하지. 설렘과 기분 좋은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을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 그 꿈같은 곳으로 돌아온 그의 기분을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돌아갈 곳이 생긴 사람의 마음은 어떤 노래를 불렀을지.
나는 바그다드 카페의 주인이 아니고, 앞으로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나는 터덜터덜 사막을 걷는 야스민이 되고 싶다. 뜻 모를 표정을 하고 마술을 부리는 묘한 여성. 얼마나 멋진가. 게다가 사막 한 가운데에는 친구가 있다. 사막 한 가운데 내가 만들어 놓은 나만의 디즈니랜드로 돌아가는 길...언제나 같은 표정으로 웃어줄 친구에게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