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는 여름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여름밤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이었다. 여름밤을 알고 그것을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만나본 적은 없어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서 그 확신은 기쁘게 들어맞았다.
여름의 변주는 놀랍다. 그래서 삶도 여름에 가장 변수가 많은가 보다.
여름이 다 지고, 그 이후 찾아오는 서늘한 가을바람이 야속한 그 기분을. 항상 새로운 사건 사고 앞에서 아득해지는 여름밤을 사랑하는 것은 숨기기 힘들다. 몬구의 글에도 여름에 대한 애정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여름의 변주와 변수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진득한 여름 공기 속에 가끔 부는 이상하리만치 상쾌한 바람들을 맞으면, 여름은 참 위험한 계절이다 싶다. A와도 ‘여름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며 지난여름에 우리가 해왔던 ‘미친 짓’들을 자주 돌이키곤 한다. 우리는 여름에 평소라면 어울리지 않을 사람들과 기꺼이 신나게 어울렸고, 그 때문에 싸웠고, 이미 서로 숱하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또 하고, 또 하느라 해가 밝는 것까지 지켜봤다. 변수와 변주만큼 그것들을 멋들어지게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화자를 예측할 수 없는 글을 좋아한다. 화자를 예측할 수 있는 특정 글들이 있다. 성별을 묘사하는 방식이나, 친구를 대하는 방식, 나이를 이야기하는 방식 등에 대한 정보들이 등이 과다하게 드러나다 보면 당연히 화자에 대한 파악도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때때로 그러한 분석은 ‘그럼 그렇지’라는 맥빠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몬구는 내가 좋아하는 화자로 분류된다. 섬세하고 담백하면서 열정적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이 거북한 공감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무엇을 섬세하게 훑는 시선에서 그의 성별이나 나이를 섣불리 가늠할 수도 없다.
직업병도 발동했다. 귀여운 할아버지가 꿈인 몽상가와의 인터뷰는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면서, 그에 대한 피로와 지침도 건강하게 인지하고, 어느 정도 현실에 발붙이고 있으면서도 이상은 잃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들과는 틀림없이 잘 맞아왔기 때문에 더 나아가 책을 쓴 몬구라는 페르소나 역시 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강렬한 예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것에도 기대를 크게 하지 않게 된다. 사람뿐만 아니라 영화나 책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새로운 만남이 필요하다 느끼는 것은 계속 흐르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생경한 것들이 가득한 문화초대에 두려움 없이 응하는 것도 비슷한 마음에서 비롯된 용기인 듯하다. 기대를 버리고 만난 곳에서 뜻밖의 취향을 마주하면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왜 이제 왔어! 라며.
비에 젖은 운동화를 신어 본 사람은 안다. 빗물이 얼마나 깊이 스미는지. 추억은 비와 같아서 세포 하나하나에 깊이 스민다.
이런 사소한 것들을 들여볼 줄 아는 사람이 당연하게도 여름밤을 좋아하니,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