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사월의 푸르름을 담은 편지

by 눈부신

A에게


한주의 시작이야. 오늘 훈련은 어땠어? 훈련소에 말간 봄꽃들은 몇 있는지, 그 꽃들은 활짝 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


꽃들에게 이번 봄엔 조금 천천히 피어달라 부탁한 참이었는데 올해 유독 빨리 피어나는걸 보면 내 말은 귓등으로 들으려나봐. 응봉산 개나리는 정말 아름답게 만개했어. 샛노란 꽃들로 가득한 풍경에 공원에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려와. 이보다 더 절하게 봄 표현해내는 장면이 있을까?


산을 둘러 나있는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서울의 동쪽 풍경이 뻥 뚫린듯 훤히 보여. 그래서 유독 지난 겨울의 프라하 생각이 많이 났어. 과거 요새이자 공동 묘지인 비세흐라드를 다녀올 때, 강을 끼고 보이는 도시 전경이나 반짝이는 강, 눈부신 햇살, 옷 속을 파고드는 시원한 바람들이 마음에 남아있었거든. 그래서 좋더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만큼, 그때 기억이 물씬 다가와 반가웠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앞에 두고, 카페에 가 따뜻한 차 한잔을 시켰어. 오늘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크리스티앙 보뱅의 《환희의 인간》이야. 전에 읽던 《작은 파티 드레스》보다 한결 화사하고 푸르른 장들이 이 계절과 어울렸어. 역설적이게도 책은 작가가 아내를 잃고 몇년을 두문불출하며 쓴 글이지만, 어두움을 알기에 더 깊고 다채로운 파랑을 그려낸거 같아.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파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사월의 신선한 아침에 맞이하는 그 푸르름 말입니다. 벨벳의 부드러움과 눈물의 반짝임이 담겨있는 푸르름이지요. 당신에게 이 푸르름만이 가득 담긴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나도 언제나 A에겐 사월의 푸르름만이 담긴 편지를 쓰고 싶어. 제 짧게 쓰인 글로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일도 편지할게.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