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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Nov 14. 2023

구역탕(救逆湯)과 공황장애, 그리고 설사 - 1

두어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9월 모의평가를 앞둔 고3 학생이 엄마와 함께 내원했다.


증상은 한 달 전부터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다. 밤 12시만 되면 마음에 울렁이듯 찾아오는 불안은 핸드폰을 하다가도 이유 없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냥 기분 탓으로 여겼다. 그러다 보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고 죽을 것 같은 느낌에 잠에서 깼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빨리 뛰고 가슴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이런 힘든 밤이 찾아오면 두려움으로 소리를 지르며 엄마 아빠를 깨웠다.


심장병이라도 생겼나, 이리 가슴이 아파 잠에서 깬다니. 후에 찾아보니 이것이 공황장애와 유사한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한 달 전에는 전혀 없던 증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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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난 학생은 한눈에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바짝 마른 나뭇가지처럼 안색이 어둡고 눈을 맞추기 어려울 정도로 정동이 불안했다.


낮은 혈압에 어딘가 푹 가라앉은 모양새. 맥과 설진을 보고 복진을 하려니 환자는 복부를 보이기 꺼려 했다. 손이 닿는 것과 보이는 것을 재차 거부하여 가볍게 옷 위로 흉곽을 확인하고 문진을 이어갔다.


그중 특징적인 증상은 하루 종일 지속되는 어지럼증과 이명, 그리고 기면(嗜眠)에 가까울 정도로 잠이 쏟아지는 증상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이다. 어지럼증은 원래도 기립성 저혈압이 다소 있기는 했지만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주위가 핑 도는 현훈(眩暈; vertigo)으로 나타났다.


이어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자니 아이가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긴장이 심해서 새 학기가 되면 항상 몸이 아프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반응도 있어 젖을 떼기가 유독 어려웠다고 말했다.


지금도 식욕이 거의 없어 하루에 한 끼를 과자나 라면 등으로 때우고 음식물에 알레르기도 많아 이것저것 챙겨먹이기도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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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환자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한약을 한 달만이라도 먹어보자 말했다.


증상은 돌발적으로 나타났으나 원인이 될만한 것이 짐작되었다.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문제지만 친구들 사이 갈등으로 함께 다니던 친구 무리와 헤어지게 된 것이 마침 한달 전이라고 했다.


증상에는 분명 전체를 관통하는 경향성이 있어 보였다. 치료하면 충분히 편안해질 것이라고 산발적으로 나타나던 증상시험 전까지 전체적으로 풀릴 것이라 설명했다. 결국 한 달의 치료 기간을 얻게 된 나는 계지거작약가촉칠용골모려탕이라는 일명 구역탕(救逆湯)을 처방으로 냈다.


2023. 11. 13. 속초 해변

(글은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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