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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Nov 10. 2023

친애하는 수험생 환자들에게

수능이 지척이다. 대치동이라는 근무지 특성상 지난주 많은 수의 학생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대부분 타지에서 이곳으로 올라와 학사나 고시원 등지에 자리를 잡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고 이제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갖고 오는 증상들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대개는 목 어깨 허리 부위 뻐근한 통증부터 소화기 장애가 가장 흔하지만 스트레스와 관련된 신체화 증상, 불안으로 인한 기타 여러의 증상을 호소하는 친구들도 많다.


나는 임상에 나와 진료를 보기 시작한 후부터 줄곧 어린 환자들에게 마음이 가는 편인데 학창 시절 수많은 잔병치레를 겪으며 스트레스로 인한 위장염, 하루 종일 지속되는 두통, 불면 등으로 많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나는 증상이 있을 때 그를 당장에 없애주는 약을 찾아 먹는 것이 건강에 해가 간다거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못했고 그래서 이렇게 스스로 한의원에 찾아와 조금 더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치료를 받는 학생들을 보고있자니 동생처럼 기특하다.


무엇보다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은 수척한 근심들을 마주할 때면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마음이 쏟아져서 수능이 다가오면 내 마음도 조금은 싱숭생숭해지는 것이다.


마음속에 이러저러한 당부와 응원의 말이 떠오르지만 결국 가장 진부한 문장으로 위로를 건넨다.


"그냥 잘 할 거예요. 잘 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에요. 그냥 잘 할 수밖에 없어서 잘하기도 하는 거예요."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나는 수험생 때 그 말이 그렇게 싫었다.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끝이요, 사람의 일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거다.


그때의 나는 "최선"이라는 단어에 확신이 없었고 만약 이것이 최선이 아니라면 하늘은 기어이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건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류의 위로를 듣고 나면 오히려 설명하지 못할 슬픔이 밀려왔다. 속도 없이 쉽게 위로를 건넨다는 생각도 들었다.


-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 혹은 반항은 시간이 지나며 차차 풀렸다. 아마도 마음에 조금씩 여유가 자리 잡으며 가능해진 일일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최선"의 범위나 정도에 대해 이전만큼 반항심을 갖진 않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잘 될 거라는 위로는 여전히 건네지 못한다. 나와 닮은 마음을 가진 수험생이 어디선가 슬픈 모양을 하고 내내 곱씹을까 두려워서.


그러니 친애하는 나의 환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왔던 그것과 상관없이 여러분은 잘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일에 꼭 어떤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거든요.


잘 되는 것에도 안 되는 것에도, 가끔은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세상엔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니 굳이 꼽자면 우리는 잘 되는 쪽에 편을 들어 살아갑시다.


다음 만남은 천천히 기약하며, 부디 시험이 끝난 뒤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건강하시길. 시험 잘 보고 오세요. 


2022. 12. 03.  azenhas do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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