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이 호소하는 두통의 특징적인 증상은 눈압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눈이 터질 것 같아서 누군가 구멍을 터주면 모든 게 확 풀어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관자놀이와 이마 전반적인 두통과 더불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였다. 머리가 멍해서 무언가 몰두하는 것이 어렵고 생전 없던 어지럼증도 생겨 불편하다고 했다.
특히 하루 한두 번 열이 확 솟구치는 느낌, 즉 상열(上熱) 증세가 나타날 때면 기운이 훅 빠져 피로감이 심하고 잘 마시던 커피도 요즘은 가슴이 답답해서 잘 못 마시겠다는 말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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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한눈에 진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높은 경지에 이른 한의사는 못되어서 처방 전 꼼꼼한 문진을 시행하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 환자분의 경우, 처음 진료실에 들어와 이러저러한 증상을 호소할 때부터 마음속에 어떠한 상(像)이 그려짐을 느꼈는데 말하자면 환자는 사상체질 중 하나인 소양인의 결을 갖고 있었다.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의 경향성을 고려할 때 시호거삼가계탕이라는 처방을 지어 보름 동안 투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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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한약이 나가고 일이 바빠 3주 만에 온 환자는 처음 증상의 60% 이상 호전된 상태로 내원하였다.추나나 침 치료를 주기적으로 받지 않아도 한약만으로 호전 유지 중이라는 것에 의의를 두고 같은 약을 보름치 더 투약했다.
환자는 한 달이 훌쩍 지나 재내원하였는데 중간에 2주간 해외 출장을 가 비교적 최근에야 약을 다 복용할 수 있었다고 했다.약을 복용하지 못한 기간에도 두통은 더 심해지거나 하는 부분 없이 호전 상태를 유지했으며, 전부다 복용한 이후에는 처음보다 90% 이상 좋아진 상태로 악화 없이 유지 중이라고 했다.
이제는 하루 종일 두통이 있는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관자놀이가 조금 뻐근한 느낌으로 남아있어 이 정도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러 내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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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보다 보면 겉으로 만져지는 증상과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 사이에 큰 격차가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환자의 몸을 촉진할 때 이 정도면 증상이 꽤 극심할 법도 한데 멀쩡히 괜찮은 환자가 있는가 한 반면, 영상 진단 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나온 환자래도 실제 호소 증상은 극렬한 경우가 있다.
이는 누군 그렇고 누군 아닐 수 있는 확률의 문제라기 보다 몸의 겉과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관관계로 발현되는 문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옳다고 판단되면 때에 따라 한약 처방을 병용하는 일에 머뭇거리고 싶지 않다.
필요한 것보다 과잉해서 치료하지 않되 옳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반드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