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끝자락. 나는 '최선'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최선'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마치 끝까지 노력한 결과로 얻는 아름다운 결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최선이란 단순히 노력의 끝에서 오는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 때로는 아프고 불완전한 선택이기도 하다.
어쩌면 '차선'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이 생각을 떠올리게 해 준 시집이 바로 이규리의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이다.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중략)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이규리, 시집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중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는 행위는 작가가 말하는 또 다른 '최선'의 모습이다. 도마뱀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의 꼬리를 버린다. 그것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고통스러운 결단이며, 선택의 순간이다.
꼬리를 자르는 과정은 아프지만 그로 인해 삶이 지속될 수 있다. 이러한 도마뱀의 결단은 우리가 삶의 혼란 속에서 때로는 무엇인가를 내려놓아야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도마뱀의 행동은 단순한 생존 전략을 넘어 더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시에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은 도마뱀의 희생적 선택을 넘어서 혼란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삶을 이어가는 내면의 강인함을 상징한다. 이는 삶의 어려운 순간에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용기와 연대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때로는 무엇인가를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이 최선이 되기도 한다. 도마뱀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것처럼, 우리도 삶의 순간순간에서 최선의 선택은 완전함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방향일 때가 있다.
삶의 다른 순간들에서도 우리는 이런 선택들을 마주한다. 도마뱀이 꼬리를 버림으로써 생존을 선택하듯, 우리도 혼란스러운 순간마다 삶을 정리하고 다시 나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삶을 정리하고 다시 나아갈 방법을 찾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일이 아닐까? 우울하거나 심란할 때 책상 정리나 방 청소로 시작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런 행위는 단순히 공간을 깨끗이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돌보고 삶을 유지하는 중요한 과정임을 상기시킨다. 어지러운 방을 정리하며 복잡한 생각이 정돈되는 순간, 우리는 마음의 안정과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생명을 유지하고 마음을 가꾸며 관계를 보살피는 이러한 행위는 단순히 집안일에 머물지 않는다. 어쩌면 살림을 통해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나를 살리는 소중한 행위로 자리 잡는다.
최선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는 선택에서 비롯된다.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스스로를 돌보며 삶을 유지하는 과정이다. 완벽한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최선은 각자의 상황과 마음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
누군가에게 최선은 끝까지 버티는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무언가를 놓아버리는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말하는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침묵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의 순간에 최선은 아주 작고 단순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우리가 진정 최선을 다했을 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보여준 마음의 진정성이다. 무엇이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최선일 것이다. 최선은 완벽이 아닌, 삶을 이어가게 하는 작고 단단한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규리 작가의 시속에서 등장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희생한 존재가 아니라, 혼란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상징하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