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여럿, 가족 하나.
"이번 주 토요일 저녁에 시간 돼?"
결혼 준비를 앞두고 여자친구가 친가족들을 보자며 날을 잡았다.
여자친구는 3남매 중 둘째다. 시간이 맞는 친언니와 친척 두 명을 포함해 다섯 명이 만나기로 했다. 장소는 신사의 '동녘'이라는 식당, 시간은 저녁이었다. 도착하니 모두가 모여 있었다. 인사를 건네자마자 서로의 얼굴을 보며 갑작스레 웃음을 터뜨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싶었지만, 그저 멋쩍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웨이터인 줄 알았어요! 너무 편하게 다가와서요."
여자친구와 친언니 사이에 앉아 있던 여자가 농담을 던졌다. 그녀는 여자친구의 사촌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첫마디에 분위기는 금세 부드러워졌고 이내 질문이 쏟아졌다.
"어떻게 만났어요?"
"결혼 준비는 어디까지 했어요?"
"술 잘 드세요?"
휘몰아치는 질문공세에 여자친구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여자친구가 이 가족 안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지 느꼈다. 각기 다른 색깔의 물감이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듯했다. 여자친구의 가족들은 참 단란했다. 서로가 돌아가며 장난스러운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고, 추억을 꺼내며 다 같이 웃음을 나누는 모습이 따뜻했다.
"언니가 컴퓨터 제한 시간을 정했다니까? 부모님도 아니면서?"
매번 해도 재밌는 추억 이야기에 모두가 배를 잡고 웃었다. 사랑은 단순한 관계의 집합이 아니다. 각자가 서로의 일부분이 되어 의미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오늘, 여자친구의 가족들과 함께하며 그 구조의 한 조각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나에게 있어 가족이란 개념은 다소 희미했다. 나에게 가족은 늘 가까운 듯하면서도 손에 닿지 않는 구름 같았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서울로 독립했기 때문일까. 이처럼 정겨운 가족의 모습을 보니 어색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하지만 오늘의 경험을 통해 또 다른 가족이 생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 마음을 네 컷 사진으로 고스란히 남기며 자리는 마무리 됐다.
저녁에 돌아가는 차 안, 오랜만에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밥은?"
어머니의 익숙한 물음은 어린 시절의 아침을 떠올리게 했다. 단순하지만 반복되던 그 말은, 내 삶의 가장 든든한 기둥이었다. 이제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잔잔한 울림이 퍼져나갔다.
"네, 오늘은 여자친구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냈어요."
내 말에 아버지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다. 네가 잘 지내면 우리도 좋은 거야."
나는 생각했다. 진정한 사랑은 이미 깊게 물들어 있었음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채우는 도구가 아니다. 형형색색의 물감들이며, 나라는 종이를 깊게 물들이는 소중한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