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유럽
베로나 Verona, ITALY
베로나는 기원전 1세기부터 그리드 플랜 (grid plan, 격자 계획)을 따라 도시 계획을 진행하여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13세기~14세기 스칼리제르가문 (Scaliger family)의 통치로, 15~18세기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일부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시 외곽에 튼튼한 성을 축조하여 성곽의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이런 이유로 고대 로마 유적과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기념물을 보존하고 있는 군사 요새 도시의 뛰어난 사례가 인정되어 유네스코에서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해 놓았습니다.
이런 유적이 아니어도 베로나를 유명하게 만든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하여 셰익스피어. 엥? 영국 사람이 왜 베로나를 유명하게 해? 그건 바로 몬테규 가문과 케플렛 가문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로미오와 쥴리엣. 만난 지 며칠밖에 안 된 미성년자들이 불장난에 목숨 걸다 사고 친 이야기입니다. 정작 이 비극을 쓴 섬나라 대문호님은 베로나 근처에 얼씬도 못 해 봤다는 비극이…. 그래서 베로나에는 로미오의 집도 있고, 줄리엣의 집도 있습니다. (그 집이 진실인지는 믿거나 말거나) 특히 줄리엣 아가씨 집에는 없던 발코니도 만들어 놓고 가냘픈 청동 동상을 세워두어 사랑에 애타는 남녀들이 바글바글. 다 늙은 노친네들 역시 무슨 미련이 남아 꼭 들러서 인증사진 찍는 "이건 해야 해" 코스로 변했습니다.
베로나 아레나 Verona Arena, ITALY
베로나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원형 경기장이 있는 곳입니다. 첫째는 누구나 짐작할 로마의 콜로세움. 5만 명 수용이랍니다. 헐~ 엄청남…. 두 번째 큰 경기장은 나폴리 북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있는 카푸아 원형 경기장입니다. 4만 이상 수용 가능한 크기고요. 세 번째가 바로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베로나 아레나입니다. 아레나 [Arena]는 라틴어로 "한가운데에 모래를 깔아 놓은 원형 경기장"을 뜻합니다.
베로나 아레나는 로마가 번성하던 서기 1세기경에 세워졌습니다. 당시 3만 명을 수용하는 극장을 지었다는 것은 엄청난 대규모 토목공사였을 겁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극장이 필요했던 베로나의 도시 규모 역시 놀랍습니다. (2000년 이 지난 지금 베로나 주민 수는 26만 정도로 이탈리아에서 중간 정도 도시에 속합니다.)
이 원형 경기장이 완벽하게 지금까지 보존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12세기에 지진으로 베로나 전체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무너진 부분들을 방치하다 1850년대에 복원하였고 원래는 3단으로 둘러쳐진 외벽을 지금은 부서진 상태로 남겨 두었습니다. 베로나 아레나는 지붕이 없고 외벽이 손상된 상태지만 거의 모든 좌석에 음향이 완벽하게 전달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수리 과정에서 뛰어난 음향 효과가 알려지면서 경기장이 아닌 오페라 공연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오페라 극장들이 효과적인 음향 전달을 위해 고심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2000년 전 지어진 야외 원형 극장이 완벽한 음향을 전달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런 고대 유적을 그대로 보존만 하고 있었다면 베로나는 그냥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조용히 남아있게 되었을 것입니다만 1913년 8월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야외 오페라 축제를 시작하면서 한여름 시즌 유럽을 후끈하게 달구는 도시로 변모합니다. 이렇듯 베로나를 유명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 바로 "베로나 아레나"인 샘이죠.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참고로 지난해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을 보러 온 관객 수는 베로나 인구 26만의 2배 가까운 48만 4천 명. 티켓 수입만 2,876만 유로 (약 400억 원)이었답니다. 이외에 숙박업체와 식당, 상점들이 누리는 경제효과는 한 해 7,00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 베로나 아레나 공식 홈 : http://www.arena.it/en-US/HOMEen.html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매년 6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열립니다. 1913년 8월 10일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처음 개최됐으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인 베르디, 푸치니, 로시니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양한 오페라가 공연됩니다.
이 축제는 고대 원형 경기장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 독특한 매력을 지닙니다. 달밤,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수준 높은 공연은 오페라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조차 황홀경으로 인도합니다. 축제는 해가 갈수록 다듬어져 관객들의 환호에 보답하고 있습니다. 축제 기간에는 보통 5~7편의 오페라가 50회 이상 공연되는데, 공연은 전통적으로 밤 9시경에 시작되어 자정이 넘어서 끝이 납니다. 올해는 6월 20일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를 시작으로 6편의 오페라가 54회에 거쳐 공연됩니다. 폐막일은 9월 7일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로 막을 내립니다.
* 2014년 공연된 연주
베르디의 `아이다` , '가면무도회' ,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 푸치니의 `나비부인` , `투란도트` , 특별 공연으로 플라시도 도밍고의 베르디 오페라 갈라 콘서트, 카를 오르프의 오라토리오 `카르미나 부라나`, 이탈리아 최고 발레리노 로베르토 볼레와 친구들 각 1회씩 있습니다.
이 공연들 중에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베르디의 "아이다" 일 겁니다. 1913년 개막 공연부터 매년 빠진 적이 없는 작품입니다. 다른 오페라에 비해 스케일이 큰 아이다의 무대로 베로나 아레나는 안성맞춤인 셈입니다. 또, 베로나 아레나의 무대 진화를 아이다에서 엿볼 수 있어 이 공연에 특히 주목하는 팬들도 많습니다.
2012년 9월 축제 폐막작으로 공연된 아이다를 참관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려고 스위스에서 달려와 다음날 독일 북부 브레멘까지 올라가야 했습니다. 밤 9시에 시작한 공연이 새벽 1시가 다 되어 끝이 나는데 감동의 도가니탕이라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몰랐습니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가끔 스토리를 물어서 안 되는 영어로 대답해 주느라 버벅거린 점만 빼면…. ㅋㅋ 대신 제가 앉은자리에서 사진을 찍도록 배려를 해주어서 공연을 몇 장 찍을 수 있었습니다.
1 막
[제1막] 이집트는 인접국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수많은 에티오피아인을 포로로 잡아온다. 그중에는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도 있다. 아이다는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Amneris)의 노예가 된다. 그녀가 에티오피아의 공주인 것은 아무도 모른다. 이집트에 항거해 에티오피아가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자, 이집트의 청년 장군 라다메스(Radames)는 대장으로 선발되기를 기도한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 국왕의 신임을 얻어 사랑하는 아이다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다메스는 암네리스 공주가 자신을 아주 특별히 여기는 것을 알지만, 그의 마음은 온통 노예 처녀 아이다에게 가 있다. 이 삼각관계에서 불행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라다메스가 토벌군 대장으로 선발된다. 적군은 대단히 거친 아모나스로(Amonasro) 왕이 이끌고 있다. 바로 아이다의 아버지다. 만일 아이다가 라다메스의 승리를 기원한다면 아버지의 죽음을 기원하는 셈이고, 아버지의 승리를 기원한다면 사랑하는 라다메스의 죽음을 기원하는 셈이 된다. 라다메스의 군대가 출정하자 군중들은 「이기고 돌아오라」를 노래한다. 화려하고 관능적인 이집트 댄스로 제1막의 막이 내린다.
2 막
[제2막] 라다메스가 에티오피아 군대를 쓸어버리고 승리한다. 그가 개선하는 장면이 장관을 이룬다. 이집트 국왕은 라다메스에게 소원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하라고 한다. 그는 아이다와의 결혼을 요청할 생각이다. 라다메스는 우선 전쟁 포로를 모두 석방한다. 다만 아이다와 아이다의 아버지인 에티오피아 왕은 남겨놓는다. 아이다의 아버지는 병사로 위장하고 있어 아직 신분이 탄로 나지는 않았다. 이집트 국왕은 개선에 대한 보상으로 라다메스로 하여금 자기 딸 암네리스 공주의 손을 잡게 한다. 결혼의 상징이다. 군중이 환호하며 “이집트에 영광을!”이라고 외친다.
3 막
[제3막] 나일 강은 달빛으로 고요하다. 강변에 우뚝 솟은 사원에서 라다메스를 기다리는 아이다 앞에 아버지 아모나스로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라다메스 장군을 설득해 이집트 군대의 에티오피아 총공격 계획을 알아내라고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에티오피아군은 전멸할 것이며 가족 역시 모두 살육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다는 마지못해 아버지의 말대로 하겠다고 대답한다.
라다메스가 달빛을 받으며 나타난다. 아이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멀리 떠나자고 애원하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라다메스는 이집트군에 발각되지 않고 도피하려면 이러저러한 방향으로 가면 된다고 말한다. 그 방향은 이집트가 에티오피아를 치기 위해 거치지 않은 유일한 길로, 라다메스는 은연중에 중요한 전략을 발설한 것이다. 암네리스 공주는 라다메스가 어디론가 혼자 가는 것을 보고 따라왔다가 함께 있는 두 사람을 목격한다. 에티오피아의 왕이며 아이다의 아버지인 아모나스로가 숨어 있던 곳에서 뛰어나온다. 이제 전략을 알게 된 것이다. 숨어 있던 암네리스도 뛰어나온다. 그녀 역시 군사전략 이상의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4 막
[제4막] 암네리스 공주는 라다메스의 목숨은 살리고 싶었지만, 라다메스가 거절한다. 그는 오로지 죽음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사원의 승려들이 나와 라다메스에게 “배반자!”라고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