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피소드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 ,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 세상 모든 나라 중에 허풍 심하기로 단연 첫손에 꼽히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중국! 이들의 과장법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르러 하루를 삼 년에 비하고 기다림에 지쳐 자란 백발이 삼천 장이라고 말하는 것쯤은 애교에 가깝다. 근두운을 타고 날던 손오공의 후예들은 지금도 엄청난 파괴력의 장풍을 손에서 뿜어내며 한걸음에 천 리를 내닫는 축지법을 줄기차게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말 만 그리한 것이 아니라 그림도 마찬가지다. 기기묘묘한 봉오리가 수천 군상을 이루고 자연법칙을 무시한 폭포가 곳곳에서 휘날리니 허풍에 관한 한은 중국을 따라갈 나라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중국의 허풍을 무조건 믿는다. 중국 땅엔 남모르게 장풍을 날리는 사람도 있고 거꾸로 쏟아지는 폭포도 있을 거라고….
상상 속의 그림이 중국 땅에 가면 실제로 널려 있는데 다른 것을 못 믿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나라 화풍 중에 진경산수와 관념 산수라는 말이 있다. 진경산수란 보고 느낀 대로 자연을 화폭에 닮는 것이고, 관념 산수란 상상의 자연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관념 산수화를 대표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그린 상상화다. 그러나 이 그림을 중국에 옮겨 놓으면 실제로 존재하는 진경산수화가 된다. 이 때문에 나는 중국 대자연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자연의 기묘함에 관한 한 중국엔 상상력을 뛰어넘을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운남, 사천, 감숙, 청해, 서장, 신장, 섬서, 절강, 호북, 호남, 산동... 발 닿은 모든 곳의 자연은 그야말로 숨을 멈추게 하는 경관들이었다. 이번에는 귀주다. 섣부른 기대치가 어떤 놀람으로 바뀔지 자못 궁금해진다.
지금도 중국 사람들은 귀주라는 곳을 이렇게 표현한다. 天無三日晴 地無三里平 人無三分銀 [년 중 맑은 하늘이 3일이 안 되고 평지라고 해봐야 평평한 곳이 삼리를 넘지 않으며 사람들 수중엔 세 푼의 돈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식으로 풀어 보자면 "귀주성 = 우중충한 첩첩산중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라는 방정식이 성립된다.
인터넷을 뒤져 귀주에 대한 간략 설명을 보자. 귀주성 - 1,000m 이상의 평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의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 중국에서 가장 못 살고 낙후된 지역으로 유명하며,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오지로 알려졌음. 성도는 귀양, 귀주성 전체 넓이는 남한의 한배 반 이상 되며 인구는 대략 3,500만 정도. 위도상 남쪽에 위치하여 겨울에도 눈이 거의 오지 않으며 여름에는 고원 기후로 시원하여 사계절 여행하기 좋다.
헐~... 중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서 운남, 북 사천, 동 호남... 산수 좋기로 유명한 세 곳의 가운데 놓인 귀주를 너무 심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중국 최대 명주 마오타이주 앞에 꼭 귀주라는 말이 붙어 있어 기회만 닿으면 가보리라 작심한 곳 아니더냐. 구미가 확 당기는 곳이다. 오지로 갈수록 자연이 아름답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국 여행 동호회에서 시행하는 귀주 여행의 안내를 자청했다.
[첨 언] 인터넷에 떠도는 대부분의 귀주성 여행 자료가 터무니없는 글을 올려 두었다. 중국자료에 의하면 귀주성의 소득 수준은 지하자원과 수자원을 바탕으로 중국 평균을 상회하여 7번째의 일인당 소득수준을 보이는 공업지역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도 그랬다. 여행 중에 낙후 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 곳이 귀주다. 년 중 맑은 하늘이 3일이 안 된다 (天無三日晴)는 말은 겨울시즌엔 딱 맞는 말이었다. 10일간 해를 딱 한 번! 그것도 점심 먹는 동안 잠깐 본 것이 전부다.
출발 직전 받아 든 확정서에 참가 인원은 달랑 8명. 이거야 원. 단체인솔 8명은 처음 해 보는 진귀한 경험이다. 행사 진행팀이 피눈물을 흘려도 나는 신상 편해서 좋아 죽겠다. 더불어 연령대 분포가 환상이다. 띵호와 * 2.^^
왠지 맘이 설레고 잘 풀리란 기대감이 100배 솟아오른다.
새벽3시, 눈발이 날리는 집을 나섰다. 도로 상태가 생각보다 좋아 두 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하여 티케팅할 준비를 마무리하고 여유자적. 약속시간 안에 모든 분들이 도착했다. 띵까 띵까. 처음 뵙는 분들이 친구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부담이 없으니 너무 좋다. "티케팅 해주세용." "결항입니다. 좀 기다려 주셈." 헉! 출발부터 이게 무슨 일? 동방항공 스케줄이 어제부터 꼬여 난리가 부르스란다. "안 되지라. 우리 홍차오에서 귀양 가는 비행기 타려면 시간이 별로 없당께요. 선/처/바/람!" 쩔쩔매는 직원에게 폭탄을 떨어뜨렸더니 안절부절 우리 일에 매달린다.
몇 분 후, 두 시간 늦게 출발하는 대한항공으로 우리를 인수인계. 발이 묶인 다른 팀들은 세월아 네월아 기다릴 테지만 연계하여 항공권을 끊은 대가를 톡톡히 본다. "에헤라디여~"... 시작부터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가? 상해에서 국내선 수속할 시간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고 기다리는 지루함까지 덜게 생겼다. 그리고 우리는 팔자에 없는 국적기 대/한/항/공 타고 간다...ㅋㅋ
* 주 ; 에헤라디여~. 이 말은 우리가 여행 내내 유행어로 굳힌 단어다. 중국을 첫나들이 하는 우선생님이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면 이 단어를 연발하여 모두 애용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묻어둔 멋스러운 우리말이 참 많다. 어허야 둥기둥기~ 이런 말도 가끔 써주자.
푸동공항 출국 수속은 너무나 깔끔하게 빨리 끝났다. 올림픽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아니면 동방항공 결항이 많아 손님이 없나? 예전의 푸동이 아니다. 아무튼 또 에헤라디여~ 1번 버스 타고 홍차오 공항으로 한 시간 만에 이동. 시간 널널하고~~. 상해에서 합류하는 두 분만 만나면 끝.
"인터넷 예매했는데 귀양 가는 표 줘라~" "지금 못 줘!" "왜? 먼일 났냐?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거야?" "딜레이야... 저쪽 창구 가서 안내 받아." "케게겍! 동방 항공 니들 왜 이러는 거야? 우리 뱅기 한국에서도 결항시키고 여기서 또? 그래도 오늘은 갈 수 있는 거지?" "나도 몰라, 쥐도 몰라, 새도 몰라. 며느리도 모르고 시엄씨도 모른다. 짐을 이곳에 놓으면 호텔에 데려다줄 테니 그냥 쉬고 있어." 아이고 출발부터 일이 터지더니 끝내는 상해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생겼다.
도살장 끌려가듯 공항 호텔로 따라가 손 씻고 있었더니 식당 내려와서 저녁 먹으라는 콜이 왔다. 으이그…. 아무래도 오늘은 날 샜다. 확실한 기별을 줘야 밤거리라도 배회를 하지 이거야 원 창살 없는 감옥 신세가 되는 건 아닐까? 모래알 같은 저녁을 먹고 나자 잠시 후 떠난다는 연락이 왔다.
에헤라디여~~ 동방항공 정말 웃긴다. 달랑 두 시간 딜레이에 호텔 서비스하고 저녁까지…. 무언지 몰라도 예내들은 지금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서너 시간 딜레이 되는 정도면 여타 항공사들 눈도 깜짝 않는데 이게 왠 횡재? 정말 가는 거 맞긴 하냐? 아무튼, 우리는 밥 4끼 먹고 호사했다…. 모/두 공/짜.
강남제비표 동방항공은 신통하게 탑승 후 바로 출발했다. 귀양 공항에 무사 안착한 시간은 밤 10시. 가이드 김순이 실장을 만나 호텔 체크인한 후 맥주 한잔 하면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상의를 하고 나니 자정이다. 운 좋은 사람들의 첫 날 일정은 이렇게 마감한다.
이 이후 우리는 여행을 마치는 날까지 수없이 에헤라디여~를 외치며 환상적인 나날 속에 희희낙락했는데 복병은 마지막에 숨어있었다.
마지막 날 카이리 가는 길에 도로 사정이 좀 심상치 않았다. 눈이 오지 않는 지역에 눈이 와서 길이 얼어 버렸다. 귀양 방면으로 가는 길을 막아 두었다. 점심을 먹는 동안 도로사정을 체크하니 아직 봉쇄가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단을 내릴 시간. 혹시 하고 기다리다 3시에 도로 봉쇄가 풀리지 않으면 난감한 처지가 된다. 안전이 최우선! 차에 있는 짐을 모두 끌고 기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카이리 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도로 봉쇄를 짐작한 사람들이 몽땅 역으로 몰렸다. 사람이 너무 많아 매표소 창구를 닫아버리고 어떻게든 차에 탄 후 계산을 하란다. 1시 50분 항주발 귀양행 열차가 정시 도착. 진짜 인간들 많다. 기차 안 역시 발 디딜 틈 없이 빼곡. 용감한 한궈런 열 명이 커다란 돌돌이 가방과 기념품 보따리를 끌고 식당 칸으로 이동을 하는 동안 중국 사람들은 싫은 내색도 않고 조금씩 자리를 비켜주기 시작한다. 아이구 고마우셔라. 그래도 좁은 틈 빠져나가려니 진땀이 다 났다. 헥헥.
고속도로로 2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기차는 4시간이 너머 걸렸다. 공항에 도착하여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가 타고 갈 동방 항공이 무사 안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일주일간 함께했던 명기사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길이 막혀 아직도 도로에서 서 있다고. 아무래도 오늘 밤은 통행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소름이 좌악 끼쳤다. 우리가 열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도로에서 밤을 지새울 기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론 잘한 결정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착한 가이드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 탑승 게이트에서 빈둥거리다 정시에 탑승을 시작했다. 이제 우리의 귀주 여정은 완벽하게 끝이 나는 순간이다.하나둘 게이트를 빠져나가고 거의 마지막 남은 내 차례 앞에서 갑자기 직원 하나가 허둥지둥 달려오더니 스톱을 시킨다. "왜 그래? 이번에는 또 먼일이야?" 그냥 좀 기다리라는 말끝에 분위기가 자못 싸늘해져 간다. "머냐고? 딜레이 되는 거야? 그래도 나 좀 들여보내 줘라. 우리 팀 5명이 들어갔는데 남은 사람 안 가면 걱정하잖아" "안 돼 좀만 더 기다려" "이 잉간아 왜 그러는지 이유나 알아야지 다 들어갔는데 왜 우리만 달랑 남겨 놓냐고. 버럭"
정말 웃기는 동방 항공이다. 올 때부터 제비표 비행기는 한 번에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잠시 후, "오늘 비행기 못 뜬다."... 허망~ 망연자실. 밤이 되자 활주로가 갑자기 얼었다고 한다.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에서 비행기 한 대가 쓩~하고 떠오르고, 잠시 후 반짝반짝 불을 깜빡이며 비행기 한 대가 착륙. “쟤네들은 어떻게 뜨는 거야? 바퀴가 스케이트 날 인감?” 와글와글 야단법석.
비행기에 탔던 승객들이 한꺼번에 돌아 왔다. 그리고 우리는 찍소리도 못 내고 공항에서 안내하는 버스에 탑승하여 공항 근처 호텔로 들어 가 방배정을 받았으니... 이거 머냐고. 신난다고 해야 하나? 하루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준단다. 허허.
둘씩 짝을 지어 방을 배정하는데 나만 홀로 남았다. “기왕이면 젊은 처자랑 짝 맞추어 주면 안 되겠니? 안되면 싱글 룸 줘라. 헤헤” 꿈도 야무지다는 핀잔을 들으면서 방 키를 받았다. 선택할 권리가 나에겐 없단다. 내 방엔 이미 덩치 크고 엄청 시끄러운 아이가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었다. 음~~ 이 녀석 코는 안 골았으면 좋겠다. "너 영어 되냐?" "쬐끔요" "그래? 집은 어딘데?" "상해 옆에 우석이요" "귀양엔 왜 왔어?" "보일러 회사 부사장이라 영업 왔어요."
어쭈구리…. 노트북 들고 다니는 거 보니 뭔가 한 가닥 하긴 하나보다. "근데 우리 비행기는 왜 안 뜨는 거야? 우리 나올 때 남방항공하고 국제항공은 뜨던데" 공항 호텔이라 비행 스케줄이 TV에 중계되어 몇몇 항공사가 이륙하는 것이 보였다. "버벅 버벅…." 여기까지가 룸메이트의 한계인가 보다. "괜찮아 괜찮아... 너 이름은 머야?" 명함을 내민다 "徐飛 Xu Fei" "음~ 이름 좋다 슈페이. 너 전화 있으면 한 번만 빌려줄래? 시내 전화 잠깐만 할게." 완전히 비서를 채용했다고 생각하는 웃/비/아...컥컥.
띠딕띠딕... "순이씨 우리 못 갔다. 다른 비행기는 뜨는데 왜 우리 만 못 가는지 예한데 좀 물어 봐줄래? 내일 예상도..." 가이드가 슈페이랑 솰라 솰라 통화한 후 답을 받았다. 귀양 공항에 디아이싱 (비행기 동체가 얼지 말라고 동절기에 화학 약품을 뿌리는 것) 장비가 딱 한 대 있는데 그게 남방 항공 거고 한 시간에 한대 밖에 처리를 못해서 오늘 우리가 못 간다는 것이다. 내일은 아마 오전에 보내 줄 거라고...
이런 썩을~ 결항과 딜레이로 유명한 남방항공이 이곳에선 왕 이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 달라며 가이드가 자기 일처럼 걱정을 한다. "괜찮아 이런 일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고... 이래서 인솔자가 필요한 거잖아 푹자~. 참. 명기사는?" “이제는 통신 두절 상태예요.“ 아무래도 오늘밤 길바닥에서 떨어야 할 거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구 불쌍해라. "슈페이 너 안 춥냐? 이 방에 온도를 더 못 올리는 거야?" "여기 원래 그래요. 이 정도면 따뜻한데. 이 담요 드릴 테니 더 덥고 주무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