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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bia 김흥수 Jan 13. 2017

여권에 얽힌 황당한 이야기 4

여행 에피소드 10


2011년 01월 


새벽 03:20분 

현관문을 나설 때면 늘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이번엔 또 어떤 사건 사고가 기다리고 있을지….

유난히 찬 새벽 공기에 정신을 가다듬습니다. 


오전 07:50분 

항공 카운터에 E-티켓을 건네며 가방 속에 있는 

여권을... 여권을...  앗! 여권이….-!-

번쩍하는 섬광이 뇌를 통과하여 심장을 지나 온몸을 훑고 발끝을 빠져나갔습니다.

이틀 전 특강을 가면서 항상 지니던 가방에서 서랍으로 옮겨 두었습니다. 


웃지 못할 사태가 드디어 발생했습니다.-!-

손님들에게 여권 꼭 챙기라는 말을 수십 번 드렸는데 정작 내 여권은….

여권에 얽힌 수많은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시간을 계산해 봅니다.

보딩 타임 오전 11시 30분…. 남은 시간 3시간 40분….

전주에서 인천공항까지 이동하기에는 빠듯한 시간.

침착해지자. 


08:00분

"곰두리 택시죠? 인천공항까지 서류 하나 보낼 택시 부탁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무조건 빠른 차로…."

"여보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서랍 속을 봐.

지금 택시 회사에 차 불렀으니 그걸 들고 정문으로 나가면 택시가 올 거야." 


08:50분

“지금 어디쯤 오고 있습니까?” “논산-천안 간 고속도로 탔습니다.”

“예~ 조심해서 가능한 한 빨리 오세요.”


09:10분 

대구에서 출발한 손님들이 공항에 집결했습니다.

첫인사를 하고, 수속을 하는 동안 택시 기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눈 때문에 너무 막혀서 차가 꼼짝 못 합니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생각하기 싫은 시추에이션이 빈속을 파도치듯 뒤집어 놓습니다.

심하게 멀미가 납니다.

손님에게 알리고 첫 대면부터 불안감을 줘야 할지, 감춰야 할지….

갈등은 잠시, 운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차분히 짐을 모두 부치고, 출국장 입구까지 모셔 드린 후, 

48번 게이트에서 늦지 않게 만나자는 약속을 드렸습니다.


10시 00분

"지금 어디쯤이죠?" 남은 거리 80Km. 정체가 언제 풀릴지 모른답니다.

속은 타들어 가고,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가고….

항공 카운터에 사정 이야기를 하고 발권 준비를 끝내 두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담배에 불 붙이고 기다리는 일 밖에….


11시 00분

발권 마감 시간이 지났습니다.

기사와 연락 두절…. 배터리가 다 되었나 봅니다.

앞으로 10분….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보며 서서히 마음속을 정리합니다.

수많은 원성과 처리해야 할 뒷일들….

벌써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11시 05분

상향 등을 깜빡이며 미끄러져 들어오는 택시….

터져 나오는 한숨.

덥석 안아 주고 싶지만 감사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11시 18분

변함없는 풍경…. 적당한 소음. 익숙한 냄새….

영문 모르는 손님들의 표정이 유난히 정겹습니다.


이날의 반전 : 

까맣게 타들어 간 속을 진정시키려는 찰나 탑승 안내가 나왔습니다.

"11시 30분 보딩 예정인 대만행 대한항공 기상상태 악화로 1시간 탑승 지연됩니다.다.다.다…….-!-“

한 마디로 허무 개그의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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