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tbia 김흥수 Feb 01. 2017

에헤라디여~
겨울 귀주 이야기 (하)

여행 에피소드

Day 8. 


아침에 일어나 보니 슈페이는 웃통을 홀라당 벗고 얇은 이불 한 장 속에서 씩씩거리며 잘 자고 있다. 난 이불 위에 담요 두 장을 추가로 덮고 잤는데 발이 시려서 깼구먼. 100년 묵은 산삼을 통째로 먹었나? 젊음이 부럽다.아침을 먹고 따뜻한 박 선생님 방으로 건너가 이제나 자네나 콜을 기다리며 우리는 방안을 서성였다. (중국 호텔이 모든 방이 추운 건 아니다. 간혹 기계가 고장 나서 엄청 따뜻한 방도 있다. - 이건 고장이 난 것이다. 정상은 춥다...-!-) 모니터에 우리 비행시간이 세 번째로 잡혀 있는데 CZ랑 남방항공 몇 대가 추월하여 떠나기 시작했다.


오전 12시가 넘으면 오늘 서울에 도착할 가망성이 없어진다. 떠난다 한들 서울까지 연결편이 없다. 어차피 하루는 까먹었으니 맘 편히 기다리자. 점심도 호텔에서 먹고 보상금도 한 사람당 200위안씩 받았다. 선생님들도 하루쯤 쉬는 것은 아무 상관 없다 하시니 맘이 편했다. 에라 엎어진 김에 쉬다 가자~ 카메라를 들고 호텔 앞 공원으로 걸어 나왔다.캬~ 신기한 풍경이다. 모든 것이 얼어 있다. 잔디도 얼고, 가로수도 얼고, 대나무도 얼고... 꽃도 얼었다. 서리나 안개가 얼어 하얗게 상고대가 되는 것은 한국에서도 종종 보지만 이렇게 투명하게 어는 것은 처음 본다. 얼음이 얼 정도라면 분명히 눈이 와야 하는데 하늘에서는 분무기로 물을 뿌리듯 비가 내린다. 비가 오면 얼음이 녹아야지 왜 얼어붙는 걸까? 참 신기한 일이다. 확실히 중국엔 폭포가 거꾸로 흐르는 곳이 있을 것이다.


신기한 기상현상 아이스 스톰 Ice Storm


이런 현상을 중국에서 동우 [凍雨, frozen rain] 라 부른다. 영어로는 아이스 스톰 Ice Storm. 얼음 폭풍이다. 아이스 스톰은 가는 비가 지표면에 닿기 직전 얼음이 되어 내린다는데 이곳은 분명히 비가 오고 있다. 어쨌거나 귀양은 지금 몇 십 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이상기후를 겪고 있다. 우리는 참 운도 좋다. 공짜로 밥 먹고, 보상금 받고, 덤으로 별난 걸 다 본다. 에헤라디여~~오후 4시 기다리던 기별이 왔다. 드디어 떠난다... 만쉐이~ 어제와 똑같은 방법으로 공항에 들어가 바로 탑승했다. 오후 5시다. 상해에 가면 항공사에서 알아서 방 잡아 줄 것이고 내일 표도 줄 테니 별걱정 없다. 빨리 떠나기나 해라.


움직일 듯 말듯, 한 시간 이상 밍기적거리니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점점 기내가 술렁일 무렵 음료수를 나누어 준다. 냉큼 받아 마셨다. 기내식도 나누어 준다. 음~ 이건 느낌이 별로 안 좋다. 금방 떠나지 않을 거란 뜻 아닌가? 날이 어두워져 기온이 떨어지면 출발이 더 힘들어질 텐데...저녁 8시 무렵, 드디어 일이 터졌다. "비행 취소" 몽땅 내리라고…. 오늘은 갈 수 없단다. 머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냐고…. 컥컥컥. 차라리 뱅기를 태우지 말지. 모든 승객들이 발을 구르고 항의하며 비행기 안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절/대/로 못/내/린/다. 다른 비행기는 뜨는데 너희는 왜 이러냐?" 제비 뱃속에서 농성이 시작되었다.


공항 직원들이 내려 달라고 사정을 한다. "내려서 머 할 건데? 어차피 갈 곳도 없잖아. 한 시간에 한 대 뜰 수 있다면서 우리는 왜 못 가?" 그동안 또 다른 비행기는 굉음을 울리며 이륙을 하고 있다. 마치 약 오르지? 라며 놀리는 것 같다. 그래도 비행이 재기 될 수 없음을 나는 잘 안다. 아무리 중국이란 나라가 험하다 해도 승객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륙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액션은 취해야지 멀뚱멀뚱 있으면 이놈들이 우리를 봉으로 볼 것 같다.


밤 열시가 되어 우리의 농성도 끝이 났다. 어차피 이제는 비행 불가능한 시간이 된 것이다. 털레털레 공항을 나와 항공사에 마련한 버스를 타고 호텔로…. 어제 우리가 묵었던 호텔을 지나쳐 시내로 들어간다. 농성하는 동안 다른 팀을 이 호텔에 투숙시켰나 보다. 한참을 달려 엄청나게 큰 호텔 앞에 내려줄 때 항공사가 특별히 배려했다는 생각이 들어 괘씸함을 잠깐 잊었다. 그것도 잠시. 방문을 연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난방 절대 안 됨. 침대 삐걱거리고, 시트는 꼬질 꼬질... 역시나 중국은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다행스럽게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온다. 온몸을 담그면 좋으련만 지금 이대로도 고마워해야 할 처지다. 샤워로 몸을 덥히고 양말과 옷을 껴입은 다음 그대로 침대 속으로 직행…….




Day 9. 


드디어 감기에 걸렸다. 아침부터 몸 상태가 영 아니올시다 다. 써늘한 식당에서 죽 한 그릇 마시고 돌아서자 온몸이 쑤시고 열이 난다. 아자 아자 화이팅……. 힘을 내서 오늘은 꼭 돌아가야 한다.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오전 10시 반경 공항버스가 왔다. 어제와 같은 절차를 밟고 게이트에 도착하니 오늘도 보상금 200위안씩 나누어 준다. 차라리 비행기가 한 달간 안 뜨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루 일당 200위안이면 6,000위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800,000원... 에라 안 한다. 이 돈 너 같고 얼른 데려다주기나 해라.



11시 반 탑승 시작... 오늘은 꼭 가는 거지? 특수차가 와서 비누 거품 같은 액체를 비행기에 분사했다. 그런데 저건 무얼까? 염화칼슘? 부동액? 아니면 세차? 아무튼, 안 하든 짓 하는 거 보니 확실히 뜨는 거 맞나 보다.


12시 20분경 드디어 이륙.... 짝짝짝!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의 음모는 시작되었다. 비행하는 동안 슈페이는 중국인들 몇 명과 공작을 꾸미고 나는 나름대로 짱구를 굴리는 중이다. 이대로 상해에 도착하면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이 너무 힘들어진다. 상해도 우리나라처럼 국내선은 홍차오 공항에서, 국제선은 한 시간 이상 떨어진 푸동공항에서 뜬다. 우리는 당연히 푸동에서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스케줄이다. 하지만 오후 4시경 상해 홍차오 공항과 김포를 오가는 동방항공이 하루 한 대 운항한다. 이 비행기를 탈 수 있다면 정말 편하다. 


일단, 종이에 우리의 요구 조건을 간단한 영어로 기록했다.우리는 한국인 8명 그룹이다.

1. 지금 홍차오를 출발하여 김포를 가는 비행편이 있다면 당장 연결해 줘라.

2. 만약 자리가 없다면... * 내일 홍차오-김포 티켓을 줄 것 * 숙소는 홍차오 공항 근처나 시내에 4성급 호텔로 제공 할 것. * 공항에서 호텔까지 이동 수단과 식사를 제공할 것. * 추가 보상을 할 것.

3. 홍차오- 김포 티켓이 정 없으면...* 내일 푸동에서 인천 공항 가는 티켓이라도 주고 호텔은 시내에 잡을 것, 나머지는 2항과 같음.


오후 3시 15분경... 드디어 상해 홍차오 공항에 우리는 안착했다. 목소리 큰 슈페이가 앞에 나가서 내리지 말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주 급한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비행기 안에 남았다. 착한 중국 사람들 말도 잘 듣는다. 20분쯤 지나자 공항 근무자들이 와서 빨리 내리라고 재촉을 한다. 그렇거나 말거나... 영어 되는 사람 있으면 오라고 해라. 한참 있다 뺀질뺀질하게 생긴 아이가 왔다. “직함은?” “항공 보험 회사에서 나왔다.” “그럼 우리 표 줄래?” “일단 내려서 이야기를 하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내가 중국을 한두 번 다녀온 줄 알아?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은 못 믿는데 어딜 내려. 어여 표 같고 와.”잠시 후, 그넘이 또 왔다. 지금 김포행 비행기 표는 구할 수 없고, 내일 푸동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푸동 가면 줄 것이라고 한다. 호텔은 그쪽에서 잡아 줄 것이며 보상은 이틀 치 다했으므로 줄 의무 없단다. “잘났다. 그렇다면 우리 절대 못 내려…. 어디 강제로 끌어내려 봐라~~ 씩씩.” 기장을 비롯한 승무원은 뺑소니치듯 몽땅 내리고 아무 대책 없이 한 시간 이상 흘렀다.


공안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가 비행기 안의 분위기가 험악함을 눈치채고 제풀에 꺾여 사라졌다. 슈페이를 비롯한 중국 사람들은 계속 높은 사람 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간간히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카카 농성진행 두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불안해졌다. 선생님들도 많이 피곤해 보인다. 이러다 어젯밤처럼 그냥 내려야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중국 사람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두 명씩 계속 내려 이제 비행기 안은 절반 정도만 남았다. 오늘 한국 돌아가기는 이제 글렀다. 슈페이에게 다시 한 번 전화를 빌렸다. 각자 급한 메시지를 전하고 전화를 돌려주면서 돈을 줬더니 절대 안 받는다. 강제로 주머니에 넣으면 도로 꺼내 놓고... 아이구 이놈 한 성질 한다. 선생님들이 슈페이를 씩씩이라고 불렀다.



오후 5시 반경, 제법 똑똑해 보이는 여직원이 올라왔다. “직함은?” “공항 매니저.” “명함 한 장 줄래?” “지금 없어요.” “그럼 이름과 전화번호라도 여기다 써줘. 우리 요구 조건 들어 줘야 내린다.” “오늘 서울까지 연결할 방법은 없고, 내일 홍차오에서 김포 가는 3시 반 비행기 표를 드리겠습니다. 호텔은 동방항공에서 계약한 공항 호텔이 모두 3성이라 3성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대신 호텔까지 모셔드리고 식사를 제공하겠습니다. 보상금은 규정대로 모두 지급했기 때문에 더 주는 것은 불가능하고요.”


음~ 홍차오에서 김포 가는 표를 받으면 우리 일은 모두 잘 풀린 셈이다. 다른 조건은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라 이 정도에서 양보해도 괜찮겠다. 하지만 지금 따라 내리면 슈페이랑 남아 있는 중국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일단 구두 약속은 믿을 수 없으니 항공권부터 발급해 오라고 매니저를 돌려보냈다.“슈페이야... 미안하지만 우리 이제 시간이 없다. 십 분 후쯤 내릴 텐데 괜찮겠니?” 슈페이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리가 내리면 맥이 풀려 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다. 혼자라면 몇 시간이라도 더 버텨 줄 텐데 인솔자의 입장에서 손님의 편의를 생각해야 한다. 이틀간 한방을 쓰며 정이 들었는데 배신을 하는 것 같아 나도 갑자기 울적해진다.


매니저가 다시 왔다. 시간이 늦어 지금 표를 발급할 수 없고 자기를 믿어주면 내일 분명히 표를 주겠다고 한다. “그건 안 되지... 전화번호 하나 달랑 써 주고 믿으라니... 내일 근무도 아니잖아? 그런 경우가 어디 있냐? 그렇다면 PNR이라도 줘라.” - PNR = PASSENGER NAME RECORD 항공 예약 승객의 일정이 기록된 기록 - “OK 지금 따라오시면 사무실에서 PNR을 받아 주겠습니다.” 중국 친구들에게 더는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우리는 자리를 떴다. 슈페이와 긴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악수를 했다. 전화비를 강제로 주머니 속에 넣어 주었더니 땅바닥에 내던졌다. 음~~ 미안하다. 화가 많이 났구나. 내 속은 더 쓰리단다. 젊은 친구 잊지 않을게... 잘 살 거라.


공항 사무실 앞에 우리 짐을 미리 갖다 놓았다. 매니저의 전화를 빌려 슈페이와 통화를 했다. 비행기 안이 아주 소란스럽다. 마지막까지 함께 있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매니저가 PNR을 받아 오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도 협상이 타결되었다. 부사장이 직접 사과를 하고 추가 보상한다고 매니저가 알려 주었다. 우리도 사인을 하고 200위안씩 더 받았다. 승객들이 보상을 받는 장소에 슈페이는 오지 않았다. 농성이 잔돈푼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냥 나갔을 것이다. 조금 더 기다렸다 함께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씩씩한 놈... 다시 만나 한잔할 날이 오길 빈다.


우리가 묵을 공항 호텔은 차를 탈 필요도 없이 바로 옆에 있었다. 직원이 호텔 데스크까지 안내하고 내일 1시에 마중을 나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갔다.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호텔에서 제공한 저녁 식사를 했다. 티를 안 내려 해도 밥이 목구멍에서 넘어 가지 않는다. 차 한 잔 마시고 방으로 직행. 손만 씻고 몸살약을 삼킨 후 이를 덜덜 떨며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Day 10. 



밤새 땀을 흘렸더니 아침에 몸이 제법 가벼워졌다. 오전 시간 선생님들과 와이탄으로 나가 관광송도를 타고 동방명주까지 다녀와서 남경로를 돌았다. 짧지만 여분으로 얻은 중국에서의 마지막 날을 알차게 마무리해 드리고 싶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뒷골목에서 길거리 음식도 사 먹고, 맛나게 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호텔로 돌아와 짐을 찾아 바로 곁의 공항으로….


우리의 8일 일정은 이렇게 10일로 늘어났지만 정말 잊지 못할 여정이 되었다. 덤으로 얻은 이틀간 우리는 더 많은 정이 들었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해봐야 그 속을 안다고 했다. 무던히 참아주며 늘 웃어 주시던 선생님들…. 앞으로도 함께 할 기회가 자주 있기를 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헤라디여~ 겨울 귀주 이야기 (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