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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bia 김흥수 Feb 15. 2017

이란, 에스파한 – 철부지 Mehdi

낯선 곳에서 만남

시오세 다리를 돌아보고 다리 아래편의 운치 있는 노천카페에 들어섰습니다. 온종일 걸어 다녔더니 느긋하게 쉴 곳이 필요했죠. 자리에 앉기도 전에 건너편에 자리 잡은 청년이 자기 자리로 오라고 불러댑니다. 말이 통한다면 사양할 이유도 없지…. 본인들의 차를 내 컵에 따라주며 물담배를 권합니다. "하하. 이거 참 재미있는 물건이야. 바람 불면 담뱃대에 담아 놓은 하얀 숯가루가 머리에 날리는 것만 빼면…." 담배 맛은 괜찮은데 니코틴이 없어서 아무리 빨아도 2% 부족합니다.



영어가 서툰 청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자기소개를 합니다. "괜찮아 천천히 말해. 내 눈치가 100단이라 네가 입만 뻥긋해도 다 알아듣는다."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그 청년도 내 표정을 보고 안심하는 듯했습니다. 주소를 적어주면 사진을 보내 주겠다고 수첩을 줬더니 그곳에 열심히 그림을 그립니다. "너 시간 있니?" "아니 별로 없어. 해지면 이맘 스퀘어 가서 야경 찍을 거야." "그럼 두 시간만 빌려줘라." "머 하게?" "우리 집에 가자." "어딘데? 가까워?" "응 택시 타면 30분쯤…." 헉! 이 친구 차 한 잔 먹여 놓고 날 납치하려고? 피하려 했지만, 왠지 눈빛에서 진심이 보입니다. "그래 딱 두 시간만 빌려줄게." 차 안에서 메디는 신이 났습니다. 난 자꾸만 불안해지는데…. "도대체 이 청년의 신분이 뭐지? 집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호기심 때문에 아무래도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Mehdi…. How old are you?" 못 알아듣습니다. "What's your age?" 그래도 못 알아듣고…. "메디, 난 47살이다. 이해 가니? 넌 몇 살이냐?" "아~ 내 나이? 18살…." 헉! 이놈아 18살이면 우리 딸보다 어린데 그렇게 팍 삭았냐? (27~8살쯤 된 줄 알았다) "너 그럼 대학생이냐?" "응!" "전공이 먼데?" 또 못 알아듣습니다. "에휴 이놈아 말도 못 알아들으면서 너희 집엔 왜 가제…. 너희 엄마가 이상한 사람 데려가면 화낼 텐데." 이젠 납치가 아니라 철없는 아이의 행동이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딩동~ 꼬불꼬불 골목길을 한참 걸어서 메디네 집 앞에 도착해 보니 건물이 제법 큽니다. 기다렸다는 듯 예쁜 처녀가 문을 열고 배시시 웃으며 "웰컴 투 마이 하우스. 오빠가 전화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빠? 그럼 넌 동생?" 헉…. 갈수록 태산입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걸까? 아무튼, 동생이 영어를 잘해서 다행입니다. 메디의 아빠는 트럭 운전사, 동생 미나는 고등학생…. 아주 똑똑합니다. 메디는 미대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엄마는 잠시 나들이 가셨나 봅니다. 집 구경을 하고, 미나가 연주하는 시타도 듣고…. 메디는 연신 누군가에게 전화하며 냉장고에 든 모든 것을 하나씩 꺼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제발 먹는 건 그만…."



딩동~ 메디 엄마가 왔습니다. 하나둘, 아랫집에 사는 친구들이 모두 몰려옵니다. 메디가 계속 전화질을 해대며 우리 집에 이상한 인간 왔다고 자랑을 했나 본데 당최 감당이 안 됩니다. "이걸 우짜면 좋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 손에 먹을 것이 들려 있다는 것이 너무 큰 부담이었습니다. "자~ 이제 가 볼 시간이야." 메디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안 된다고 붙잡습니다. 집에 왔으면 저녁을 먹고 가야지 그냥 일어서냐고... "헉! 지금까지 먹었는데 또 먹으라고요? 차라리 날 잡아 잡수세요…. 흑흑." 도저히 이 집을 빠져나올 재간이 없습니다.


"미나야 그럼 저녁만 간단히 먹고 간다. 나 할 일이 있어서 빨리 가야 하거든." "예~ 알았어요. 10분만 기다리세요." 갑자기 가족들 모두 옷을 갈아입는 겁니다. "헐~ 이건 또 무슨 경우지?" "자~ 갑시다." "어딜?" "우리 할아버지 집에요." "거긴 왜?" "할아버지 집에 가서 저녁 먹어요"…. 헉! "할아버지가 손님 왔다고 가족들을 모두 불렀어요." 에구 망할 놈의 메디가 동네방네 전화질 하더니 아무래도 큰일을 냈나 봅니다.


할아버지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이란 사람들도 참 잘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둘…. 친척들이 몰려와서 인사를 하는데 손님이 올 때마다 주인마님은 차와 사탕, 떡, 과일을 나릅니다. 정성 들여 차를 올리는 모습이 신선하고 이런 일이 전혀 어색하고 낯설지 않을 걸 보면 일상사에 손님맞이를 이렇게 하나 봅니다. 모두 20명이던가? 아무튼, 그날 저녁은 먹는 것에 관한 한 함구무언해야겠습니다.



자정이 가까워 정말 헤어질 시간…. 무언가 인사를 해야겠는데 드릴 것이 없습니다. 지갑 속의 천 원짜리 지폐와 동전을 꺼내 감사를 담아 전했죠. 그런데 이 양반들이 이곳저곳에서 돈이라는 돈은 종류별로 다 들고 나와서 내 손에 쥐여 줍니다. 이제는 미안함을 떠나 어이가 없어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쩌면 장롱 속의 옛날 동전까지 꺼내 올 생각을 다 했을까? 가족과 함께 이란에 오면 일주일간 편하게 묵어가야 한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할아버지 집에서 얌전하던 메디가 문밖을 나오자 신이 나서 떠듭니다. 이맘 스퀘어까지 데려다줄 테니 걱정 말라고. 가는 길에 차를 세우고 잠시 사라졌다 나타났습니다. 담배가 떨어진 걸 언제 눈치채고 파란색 에세를 한 갑 사 왔습니다. "아니 이란에도 이 담배를 파니?" "예! 특별한 곳에선 팔아요." "참 신기한 나라네." “자~ 돌아가서 편지할게. 고마웠다.” 야경이 눈부신 이맘 스퀘어에서 늦은 작별을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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