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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bia 김흥수 Feb 16. 2017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테헤란, 헤미드 가족

낯선 곳에서 만남

해 질 녘 에스파한의 강과 다리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혼자라는 것이 가슴 아플 뿐…. "Where are you come from?" 삼각대 아래 가방을 놓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며 묻습니다. "아까부터 죽 지켜보았는데 가방 조심하세요. 이곳은 소매치기가 많습니다." 그렇지…. 친절한 사람들 틈에서 긴장이 풀렸었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자리를 옮기며 사진을 찍고 오는 길에 그 사람들을 또 만났습니다. 


자연스럽게 함께 온 가족들과 풀밭에 앉아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헤미드 베이크씨 가족은 이곳에 사는 딸 집을 방문하고 내일 오후면 테헤란으로 돌아간답니다. 큰딸 마샤와 의사인 사위 레자의 아들 마니가 매우 귀엽습니다. 주소를 적어주며 저녁 5시 이후에 자기 집에 와서 머물다 가라며 친절을 베푸는데…. 어젯밤 메디네 가족 기억도 있고, 현지인들의 사는 모습을 더 자세히 볼 기회가 온 것이 내심 기뻤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을 범위에서 처신한다면 하루쯤 신세를 진다 해도 큰 폐는 되지 않을 것 같아 쾌히 응했죠. "오늘 밤차로 테헤란 가면 내일 저녁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헤미드 가족 
헤미드 베이크, 부인 베헤나즈 큰딸 마샤. 사위 레자, 손자 마니 - 에스파한 거주 둘째 딸 모나, 사위 모하마드 - 근처 아파트에 분가. 셋째 딸 마르쟌 - 이란대 2년. 테헤란 북부 신시가지의 30평 정도 크기의 빌라에 산다. 헤미드씨의 직업을 묻지 않아 확실히 모르겠지만 중개업을 하는 듯했다. 헤미드씨의 영어는 좀 서툰 편, 셋째 딸 마르쟌은 유창, 다른 딸들과 엄마는 영어를 한마디도 안 쓴다.


다음날 테헤란에 도착하여 헤미드씨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엄청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메디네 할아버지 집에서처럼 밝고 온화함을 느꼈습니다. 백색의 단순함과 카펫, 가구가 잘 어우러져서 화려하지 않지만, 생동감이 있고 전체적으로 보자면 유럽스타일의 인테리어입니다. 부인 베헤나즈는 저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둘째 딸 모나 부부가 오고, 셋째 딸 마르쟌의 직업이 학생이라고 해서 놀랐습니다. 이란 사람들은 나이를 짐작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장인 앞에서 꼼짝을 못하는 모하마드는 우리나라 풍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요. 서로의 궁금함을 이야기하다 자정이 넘어 베헤나즈가 깔끔하게 정돈해 준 손님방에서 잠자리에 들어 정신없이 꿈나라를 헤맸습니다.



다음날, 숙소를 옮기려던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헤미드씨는 네버... 네버...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습니다. 오늘은 테헤란 바자르를 구경하고, 내일은 토챨을 가야 한다고. 그리고 딸 모나 집에 안 들르면 섭섭해, 할 거라고…. 테헤란을 떠날 때까지 며칠이든 자기 집에 묵어야 한다고 못을 박습니다. 허~ 참 하루만 묶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었는데…. 오래 머물다 어떤 실수를 저지르게 될지 오히려 내가 조심스러웠지만, 여행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베헤나즈가 차려주는 음식이 매우 예뻐서 사진을 찍어도 괜찮으냐고 물었습니다. 허락을 받은 이후에는 음식만 나오면 사진을 찍었죠.^^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에도 좋다던가? 맛도 원더풀~ 우리 집에 손님이 오면 스텔라가 이렇게 차려낼 수 있을까? 집 생각이 더 났습니다.


마르쟌이 자기 방을 공개했습니다. 이란이 폐쇄 적이라는 말은 가정에선 통하지 않는 가 봅니다. 아무리 이슬람 원리주의를 주장해도 세월이 흐르면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함을 막을 방법이 없을 겁니다. 마르쟌이 이란 영화 VCD 두 장과 쉬라즈 엽서를 선물로 내밀었습니다.



헤미드씨의 차는 대우 씨에롭니다. 내 차도 대우라고 했더니 차를 탈 때마다 "데뷰~ 굿"이라며 내 기분을 맞춥니다. (이란 사람들은 대우를 "데뷰"로 발음. 현대는 "헨다이"...^^) 메디네 외삼촌 차도 "프라이드"였습니다. 마르쟌의 컴퓨터 모니터는 LG고…. 이란에서 한국 가전제품과 핸드폰, 자동차는 아주 인기 품목이었습니다. 인도도 그랬는데 옆 나라 파키스탄 역시 그랬고. 한국 제품만 보면 왠지 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4월 24 아침, 헤미드씨와 테헤란 시내 구경을 나왔습니다. 바자르의 이곳저곳 친구들이 많아서 얻어 마신 차만 일곱 잔입니다. 헤미드씨는 나를 친구에게 소개하는 재미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덕분에 물배가 가득 찼습니다.



헤미드씨의 집요한 이란 말 가르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선생님과 한 달만 함께 지내면 웬만한 이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한 말 중에 쉬운 말은 이란말로 되풀이해주었습니다. "thank you"는 불어와 같은 "메르씨" "Hello"는 살람 "Good bye" 호다 하페즈 "How are you? 할레 쇼마 체토레 "Excuse me"  베바크 쉬드. 재미있는 말 중에 Mr.를 "아가"라고 부릅니다. 엥? 한국에서 아가는 Baby 라고 했더니 뒤집어 집니다.^^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함께 이란 영화를 보고,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오늘도 자정이 훨씬 지나 꿈나라로 갔습니다.



4월 25일, 오늘은 운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토챨을 가려고 준비해서 나왔는데 정상으로 오르는 텔레케빈(케이블카)이 쉬는 날입니다. 아니 오히려 운이 좋은 건지도 모릅니다. 이곳에 꼭 다시 오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산 위에 안개가 짙게 끼어 올라가도 전망을 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천천히 걸어서 버스정류장까지 오는 동안 마르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의 고민은 어느 나라든 다 같은가 봅니다. 부모님이 너무 완고하여 자기의 생각을 관철하지 못하는 것이 제일 아쉽다고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Give & take…. 받은 것을 즉시 돌려주는 것이 경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좋은 인연으로 남으려면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나절, 가족들과 함께 쇼핑센터를 구경하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베헤나즈가 원하는 물건이 적당한 가격이라면 선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모두 내 눈치를 챘는지 아무도 무언가를 원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헤미드씨에게 슬쩍 봉투를 건넸습니다. 보답하고 싶은데 무엇을 사드려야 할지 모르니 맘에 드는 물건이 있을 때 보태시라고…. 친절을 돈으로 계산하여 갚을 수 없지만, 테헤란에서 혼자 여행을 했다 해도 그만한 돈은 써야 했을 겁니다. 깊은 속을 이야기하기에는 헤미드씨나 저나 영어가 꼬이는 건 마찬가지여서 한참을 버벅거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둘째 딸 모나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덩치 큰, 모하마드는 어제 보고 낮을 익혔는데도 수줍어서 말을 못합니다. 장인 앞이라 더더욱 졸았나 봅니다. 신혼집답게 너무 정갈합니다. 나도 이란에서 장가 한 번 더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다 맞아 죽지) 티타임에 이렇게 멋진 다과상을 받아 본적은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오랜만에 진한 네스카페도 마시고. 에고…. 이런 호사를 받을 줄 알고 이란여행을 결정했을까요? 여행의 행운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4월 26일, “언젠가 가족들과 함께 오겠습니다. 그때는 북쪽의 별장에도 놀러 가고 더 오래 머물다 갈게요. 건강 조심하시고, 베헤나즈의 관절염이 좋아지길 빕니다. 호다 하페즈" 3박 4일의 이별이 너무 어렵습니다. 차 안에서 먹으라고 헤미드씨가 비닐봉지에 이것저것 싸들고 왔습니다. "이 많은 걸 어떻게 배낭에 넣고 다녀요?” 고맙지만 정말 들고 다니기 힘들어 차에 두고 내렸습니다. 안 가져가면 베헤나즈가 섭섭해 한다고 또 꺼내 놓습니다. 사탕 몇 개만 꺼내 들고 차 안에 슬쩍 놓고 내렸더니 모나가 일부러 들고 왔다며 커다란 코코넛 반쪽을 배낭에 집어넣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배낭을 정리하다 비닐 백 속에서 검은 곰팡이가 핀 코코넛을 발견했습니다. 아~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꼼꼼씨 헤미드씨는 터미널까지 와서도 내 가방을 챙깁니다. 야즈드와 케르만 지도에 이것저것 적어주고 볼만한 곳을 표시해 놓았습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또 물어봅니다. 그리고…."야즈드"를 절대로 "야지드"라고 발음하지 말라며 주의를 시키는군요. 야지드는 이란의 큰 욕이라고 했습니다. 삼 일간 내가 너무 덜렁거렸나 봅니다. "호다 하페즈~ 차케레탐" 야즈드행 버스가 떠날 때까지 헤미드씨는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마한, 샤흐자데 Minolta A1


● 여행을 다녀와서 헤미드씨와 메디네 집에 사진과 기념품을 보내드렸는데 소식이 오지 않아 궁금하던 차 몇 년 전 형님께서 테헤란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헤미드씨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 방문해 달라고 했습니다. 베헤나즈 관절염약도 한국에서 사 들고 갔습니다. 헤미드씨를 만난 형님께 저와 가족이 함께 올 약속을 기다린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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