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피소드
하늘엔 극락, 땅에는 항저우(杭州)와 쑤저우(蘇州)
태어날 곳은 쑤저우, 살 곳은 항저우, 먹을 곳은 광저우, 죽을 곳은 류저우.
공항 청사처럼 크고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항주역사를 나오자 숙소와 투어를 예약하라고 많은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사전 준비가 부실한 지역에서는 이런 삐끼 아줌마들이 오히려 반갑습니다. 여행 중에 는 건 눈치밖에 없습니다. 잘 고르면 수고비를 조금 주고 좋은 숙소도 마련할 수 있거든요.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몇 번 가늠하다 착하게 보이는 아줌마를 따라갔습니다. 역시~ 오늘도 잘 찍었습니다. 호텔도 역에서 가깝고 값에 비해 깨끗했습니다. 배낭을 풀어 놓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한 다음 중국 제일의 경승지라는 시후호(서호) 유람을 떠났습니다. 이 좋은 자리에서 시 한수 안 읊을 수 없죠.
물빛 반짝이는 청명한 날도 좋고
비오는 날의 안개 낀 산빛도 좋아
시후 호를 서시와 비기건대
단아하게 꾸몄든 성장을 하였든
모두 아름답다고나 할까
--- 북송 제일의 시인 "소동파"의 시였습니다.
항저우 일일 투어가 끝나고 버스는 시내로 돌아왔지만 이른 저녁이라 역 근처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무언가 허전했습니다. 중국에서 마지막 밤을 독수공방 혼자 보내기에는 너무 아쉽죠. 가장 번화한 곳에서 무작정 버스를 내려 서호 부근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슬슬 배가 고파 오는데 저 앞에 분위기 괜찮은 퓨전 레스토랑이 보였습니다. 이름하여 "음악 찬방".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는데…. 다리도 아프고…. 그냥 들어갔습니다. 오호~ 정갈하고 분위기도 참 괜찮았습니다. 물론 음식점에서 제일 중요한 음식 맛이 받쳐 준다면야.
중국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종업원들이 참하긴 해도 영어를 못합니다. 한참을 헤매다 대충 아무거나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종업원이 예쁜 서양 아가씨를 한 명 데려왔습니다. 반가워라~ 이 아가씨 덕분에 이 집에서 맛있다는 새우튀김과 국수를 시켰습니다. 집의 분위기에 걸맞게 아주 맛있더군요. 맥주도 한 병 마시고….
저녁식사가 끝나갈 무렵, 생음악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영어로 시작하는 멘트에서 "코리아"와 "미스터 김"이라는 단어가 들리더군요. 아~ 이 아가씨가 바로 음악 찬방에서 라틴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의 리더였습니다.
바로 옆자리에서 맥주를 마시던 팀이 제게 다가와서 인사를 하더군요. 젊은데…. 이 집 사장이랍니다. 대만에서 성공하여 이곳에 분점을 차렸답니다.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필리핀 밴드를 초청하여 라틴음악 주간을 열고, 그 분위기를 파악하러 왔다가 항저우의 친구들과 한잔하는 중이었습니다.
개업 이 후 처음 온 외국인이라며 너무도 반가이 맞아 줍니다. 사업상 일정이 바쁠 것 같아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오려는데 음식값을 받지 않겠답니다. 그럴 수는 없지요. 호의에 감사하고 곱게 계산을 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바쁜 일 없으면 한잔하고 가라며 손을 잡아끕니다. 바쁜 일? 하하. 엄청 바쁘죠. 이 밤을 혼자 지내려면….
옆에 앉은 나이 좀 드신 분이 명함을 건넵니다, 이름이 "류궈량". 류궈량? 생각나는 사람 없습니까? 중국 남자 탁구계의 일인자. "우와~ 사인 한 장 부탁한다."고 말했더니 뒤집어지더군요. 어떻게 중국 탁구 선수 이름까지 아냐며... 우리 딸이 탁구 선수라고 자랑을 했죠. 그때부터 술자리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양주에 맥주, 와인까지. 밴드의 리더가 우리 자리로 왔습니다. (상냥하고 이국적으로 생긴 세 아가씨는 필리핀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꾸 나와서 노래 한 곡을 부르랍니다…. 후후. 제가 노래 부르면 사람들이 돼지고기 사러 몰려온다고 사양을 했습니다만 막무가내였습니다. -!-
음치 웃비아도 이렇게 간곡한 요청엔 어쩔 수 없이…. 아는 노래가 머 있더라? 틀려도 남들이 모르는 우리 노래가 제격이죠. 코드 C, "슬로우 락"으로 리듬을 부탁하고….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 우우우~~~. 노래 끝나고 박수받기는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음악 찬방"의 분위기는 한없이 무르익어갔습니다. 자리를 메운 현지인들이 맥주를 한잔씩 들고 와서는 건배를 청합니다. 밴드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연주하며 다시 한 번 노래를 부르라고 청합니다. “으으~~ 저거 따라 불렀다가는 맞아 죽는데…."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팬들의 요청이 이러한데…. 죽을 각오를 하고 또 불렀습니다. 하하 다행히도 잘 살아 있는 걸 보니 그럭저럭 괜찮았나 봅니다. 끝날 무렵 또 한 곡을 부른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저를 아시는 분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못 믿을 겁니다.)
자정이 넘어 숙소로 돌아 올 때 땅이 자꾸 흔들리고 아스팔트가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이 날 밤은 정말 즐겁고, 오랜만에 흥겨웠던, 잊지 못할 시간이었습니다. 중국의 마지막 밤을 멋지게 장식해 준 음악 찬방의 모든 분에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