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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나

시네마 천국

by utbia 김흥수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1988 / 드라마 / 이탈리아 / 124분

감독 : 쥬세페 토르나토레 / 출연 : 자끄 페렝, 브리지트 포시, 필립 느와레


시네마 천국은 제목부터 걸작임을 암시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에 평생을 바친 알프레도. 그는 영화인이 아닌 극장 기사입니다. 영화 제작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영화가 시네마 천국입니다. 이탈리아의 감수성이 그대로 담겨 있는 이 영화는 시네마키드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영화 중 토토와 알프레도가 자전거 타는 장면 한 컷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영화 속에 담긴 흑백필름 속 영화가 아련한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였습니다.




영화가 웃뺘에게 끼친 영향이 과연 얼마만큼 클까?


가시적으로 보면 저는 지난 20년을 영화를 매체로 먹고살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영화인이라면 배우나 감독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저는 그 마지막 가장 천대받는 직업을 업으로 택했습니다. 영화인이라는 분류에 끼지조차 못하지만, 우리 같은 업종의 사람들이 없다면 여러분이 영화를 손쉽게 볼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저도 영화인임은 틀림없습니다. 각설하고, 저의 영화사랑은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된 것만으로도 증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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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린 시절 영화라는 매체를 접하기에는 너무도 낙후된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어쩌다 장터에 광목으로 천을 치고 낡은, 영사기를 설치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밥맛을 잃을 정도로 흥분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저의 큰 형수님이 제법 멋쟁이 시라서 삼척이나 강릉 같은 큰 도시를 오가며 영화를 보고 온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황홀 그 자체였습니다. 형수님이 얼마나 이야기를 사실감 있게 묘사해 주시는지 화면을 보고 있는 착각을 느끼고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는 박수를 치거나 눈시울을 적시던 기억이 있는데…. 이것이 저의 영화 사랑에 시작입니다.


중학교 때 철원으로 이사하고 난 후 한두 달에 한 번 영화 관람을 단체로 할 기회가 생긴 것은 놀랄만한 발전이었습니다. 그 무렵 시골 극장에 그리 좋은 영화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은 다 아실 겁니다. 필름이 끊어지거나 비가 오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저 오래도록 화면을 보고 싶은 그런 때였습니다. 작은 극장에 바글바글 입장하면 저는 스크린과 가장 가까운 곳에 가방을 깔고 앉아 자리를 잡습니다. 왠지 화면과 가까이 가야 더 많이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지요. 시네마 천국의 토토도 그런 아이였습니다.


우리가 본 영화의 대부분은 어설픈 액션물이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홍콩영화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간혹 죤 웨인이 말 타고 나오는 영화를 보면 쨩이였지요. 그레고리 팩의 "맥켄나의 황금"을 얼마나 신나게 보았는지 모릅니다. 그 무렵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는 찰튼 헤스톤의 "혹성탈출"과 숀 코넬리가 본드로 나오는 007시리즈였습니다. 혹성 탈출은 한자리에 앉아서 두 번을 보고 다음 날 또 가서 보았습니다. 그 영화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 당시 영화에 사용된 특수 효과에 매료되어 우주 비행사가 되어 미지로 가보고 싶은 꿈을 맨날 꾸었습니다. 007…. 지금도 숀 코넬리는 저의 우상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숀 코넬리처럼 멋지게 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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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시골에도 티브이가 들어 왔습니다. 2KM쯤 떨어진 둘째 누님 집에 처음으로 티브이가 들어오던 날 그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주말의 명화 시간은 저의 단골 메뉴였습니다. 이 프로 때문에 누님이 잠을 설친 걸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쌀쌀한 겨울날이었습니다. 그날 프로는 저가 그리 좋아하지 않던 드라마였습니다. 그래도 영화라는 이유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웬걸요. 이 영화를 다 보고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리 옆에 서서 그 충격을 달래느라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그때 그 느낌…. 쌀쌀한 밤바람과 강물에 비친 초승달이 지금도 가슴에 싸아하고 남아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이 영화를 꼽아야 할 겁니다. 제목이 궁금하시죠? 그 영화는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가 주연한 영화 "애수" Waterloo Bridge입니다. 고향 가는 길에 불타기 직전의 대왕극장에서 본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압권이었습니다.


영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에 뛰어든 저에게 힘들었던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활력소였습니다. 영화가 없었다면 그 힘든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그 무렵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죠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4편", 알랭 드롱과 쟝 가방의 "암흑가의 두 사람", 훼이 다나웨이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주연의 "연인들의 장소" 삼류 극장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본 데이비드 린 감독의 "라이언의 처녀", 그리고 영화사에 남을 불후의 명작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운드 오브 뮤직, 닥터 지바고 등 헤아릴 수 없습니다.


결혼한 이후에도 한 주에 한 번은 아내와 함께 극장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제가 비디오를 구입한 것은 비디오 가게를 열기 불과 반년 전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데크가 집에 있으면 일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놓고 보니 그 우려가 현실로 닥치더군요. 늦도록 일하고 들어와 두 편의 영화를 보고 토끼 눈을 하고 출근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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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실감합니다. 아마추어는 좋아서 그 일을 하지만 프로는 돈을 위해 일을 합니다. 이제 제 인생에서 영화가 그렇게 되어 버린 기분입니다. 의무적으로 보는 영화는 정말 싫었습니다. 여러분도 영화 자체를 즐기고 싶으시다면 절대로 이런 직업은 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영향을 준 영화가 너무 많아 여기에 다 기술하지 못합니다. 돌아보면 명작이라고 크게 떠들거나 내용을 알고 본 영화는 그리 큰 감동을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본 영화 중에 충격을 받은 영화가 많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지금도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는 영화평이나 줄거리를 미리 읽지 않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대신 영화를 본 이후에는 그 영화의 자료를 찾아봅니다. 지금 우리 집 창고에 낡은 스크랩북이 몇 권 있습니다. 그걸 펼쳐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보고 난 영화 티켓을 제목과 함께 배우, 감독, 극장 명을 써서 모아 두었습니다. 극장에서 나누어주던 명함 크기의 포스터를 모으려고 이 극장 저 극장 방황하던 그때, 일기를 쓰지 않는 저는 그 포스터나 극장에 갔던 날을 유추하여 그 당시의 일들을 기억해 냅니다. 정말 좋은 방법이니 여러분도 영화일지를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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