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포스티노
1994 / 드라마 /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 116분
감독 : 마이클 래드포드 / 출연 : 필립 느와레, 마시모 트로이시
유럽을 다녀온 후 밀린 일들을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본 영화가 “일 포스티노”였습니다. 가까운 친구가 "최근에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는 이 영화를 선뜻 곤합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이사를 자주 한 제 생활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중학교 시절 낯선 곳으로 이사했을 때 저를 외로움에서 건져준 친구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서울로 유학하여 다시 이별하는 아픔 속에 우리는 편지를 나누며 방학 때만을 기다렸었지요. 이제 둘 다 먹고사는 일에 얽매여 일 년에 한 번 만나기 힘든 사이가 되었지만, 그 시절을 돌아볼 땐 편지에 대한 기억이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일 포스티노"의 시인 "네루다"가 서울로 유학 간 친구라면 저는 시골의 무식하고 나약한 "마리오" 같았습니다. 방학 중 만나면 서울에 대한 동경을 한 아름 안고 온 똑똑한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아주 사소한 사건조차 우리에게는 무슨 보물처럼 기억하던 그때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저는 마리오의 아픔과 환희, 국경과 신분 차이를 넘어서는 인연의 끈을 실감하듯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신의 아름다움을 시로 풀어내는 네루다와 시 언어를 몸짓으로 보여준 마리오…. 이탈리아 작은 어촌의 자연과 정말 안 어울리는 두 남자의 우정이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눈물을 끌어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일 포스티노는 영화가 갖추어야 할 미덕을 모두 갖추고 있는 영화입니다. 아름다운 풍광, 자연스러운 흐름, 명품연기에 쥐어짜지 않는 스토리까지. 특히 루이스 바칼로프의 음악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인간들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채색합니다. 그해(199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남우주연,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시네마 천국"의 극장 기사 "필립 느와레"가 "파블로 네루다역"을, 이탈리아의 감독이자 배우인 "마시모 트레이시"는 "마리오"역을 맡습니다. 마시모는 심장병이 있음에도 출연을 고집하여 생애 마지막 연기를 보여주고는 촬영이 끝난 다음 날 영화처럼 사망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보면 영화가 더 애잔합니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일 포스티노는 이탈리아 서부 해안의 작은 섬 몇 곳에서 나누어 찍고 한 동네처럼 편집하였습니다. 그중 한 곳이 나폴리 해안 앞에 있는 “포지타노”라는 섬입니다. 근처 아말피 해안 카프리섬은 올해도 두 번이나 갔는데 이 섬은 매번 갈 기회를 놓칩니다. 재작년 동생과 발칸지역을 돌고 나서 나폴리로 떠나는 동생에게 이곳을 꼭 다녀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영화 한 편 때문에 저의 버킷리스트에 아직도 들어있는 동네여서 동생이 찍어 온 포지타노의 모습을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