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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신께 경배를

신과 함께 가라

by utbia 김흥수

신과 함께 가라 Vaya Con Dios

2002 / 코미디, 드라마 / 독일 / 106분

감독 : 졸탄 스피란델리 / 출연 : 마이클 귀스덱, 매티아스 브레너, 다니엘 브륄


세상에는 참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신을 섬기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흔치 않은 수도사의 이야기가 바로 "신과 함께 가라"입니다.


칸토리안 교단은 오래전 가톨릭에서 이단으로 파문당해 독일과 이탈리아 단 두 곳에만 수도회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중 독일에 있는 칸토리안 수도회는 재정 적자에 허덕이면서 원장 포함 수도사 4명만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늙고 고지식한 원장, 지성적인 벤노 수사, 시골 농부 같은 타실로 수사, 그리고 아기 때부터 수도원에서 자란 순수한 청년 아르보….


갑작스러운 원장의 죽음으로 수도회는 파산을 맞고 남은 3명은 이탈리아 칸토리안 수도회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30년 이상 고립된 생활을 하다 세상에 나온 세 수사는 중세에서 현대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 손에 든 것은 교단의 보물인 규범집 하나와 타실로의 친구 염소 한 마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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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와 종교를 다룬 영화라고 하여 딱딱하고 칙칙할 거란 생각을 하시면 오산입니다. 이 영화는 세 명의 수도사가 무전취식하며 이탈리아까지 가는 과정을 산뜻하고 유쾌하게 표현해 놓았습니다. 각기 다른 세 사람의 캐릭터도 재미있고, 마지막 결말도 나름대로 인상적이죠. 보는 이들에게 웃음과 인간의 따뜻함을 함께 안겨 줍니다. 이렇게 길을 따라 진행되는 영화를 로드 무비라 하고 로드 무비에는 좋은 영화들이 참 많습니다.


이 색다른 독일 영화를 적극 추천하는 이유는 종교에 대한 통찰과 그레고리안 성가가 주는 감동 때문입니다. 음악의 시초는 바로 인간의 목소리, 서양음악의 기초는 신을 찬양하던 노래 그레고리안 성가입니다. 중세 이전 서양음악은 대부분 신을 찬양하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다 아실 겁니다. 우리가 아는 클래식 음악 작곡가 대부분은 미사곡을 작곡했습니다. 키리에, 상투스, 글로리아, 아뉴스데이는 가톨릭 미사에서 매일 바쳐지는 노래들입니다. 레퀘엠(진혼곡)은 장례 미사에 쓰이는 곡이었고요. 합창하시는 분들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미사곡 한두 곡쯤은 다 연주했을 겁니다. 그 장엄함과 성스러움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원래 그레고리안 성가는 악보 없이 구전으로 전해 내려져 왔습니다. 당연히 반주도 없고…. 현대에서도 그레고리안 성가의 악보는 기보법이 독특합니다. 무반주로 흐르는 인간의 목소리가 전율처럼 아름답게 들리실 테니 영화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레고리안 성가와 종교음악의 성스러움에 대해 조금은 느끼게 되실 겁니다. 이 음악의 매력을 아시는 분들은 영화 중반부, 성당에서 세 수사가 성가를 부르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종교란 다른 종교를 이해하고 포용할 때, 진정한 종교라고 저는 믿습니다. 믿는 방법은 달라도 양심의 소리에 따라 살면 모든 이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믿음이고요. 이 또한 가톨릭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편협 된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종교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이 영화를 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아무쪼록 잘 알려진 영화가 아니지만, 이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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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이 영화를 보면서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생각났습니다.

청빈의 수도자며 동물의 수호성인인 성 프란체스코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로 시작하는 “평화의 기도”를 쓰신 분입니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긴 모랫길이 펼쳐져 있고 예수님이 자기 옆에 서 계셨습니다.

모래에는 4개의 발자국이 길게 길을 따라 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제까지 네가 살아온 길이다."

프란체스코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발자국이 네 개입니까?

저의 발자국을 제외한 두 개의 발자국은 누구의 것입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그것은 나의 것이다. 나는 네가 나면서부터 늘 함께 걸어왔다."

발자국은 언덕을 넘고 사막을 건너서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높고 험한 산길에서는 발자국이 두 개만 나타났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서운해하며 물었습니다.

"왜 제가 가장 힘들던 시기에는 혼자 두셨습니까? 발자국이 제 것만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발자국은 내 것이니라. 그때 나는 너를 업고 걷고 있었단다."


01-26-04.JPG 2007. SONY α700 이탈리아 아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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