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먹거리
점심 무렵 차는 분지 한가운데 있는 작고 평범한 동내 리탕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로 기록된 곳입니다. 유일한 동행자와 -아침부터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청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 국수를 먹었지요. 나이는 28, 이름은 "Xue Feng" (기억하기 좋게 칼끝"鋒"자를 따서 "봉"이라 불렀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근무처 상해, 한 달간 성도에 출장을 나왔답니다. 기왕 사천성에 온 김에 5일간 휴가를 내어 야딩풍경구를 보려고 또쳉에 왔답니다. 음식값을 계산하려니까 "봉"이 벌써 지급을 끝냈습니다. 비록 3元(500원)짜리 국수였지만 고마운 마음을 값으로 따질 순 없죠. 이때부터 성도(쳉두)에 도착할 때까지 "봉"이는 자연스럽게 제 전용 통역 겸 안내자로 변신했습니다. 넓디넓은 분지를 벗어나 캉딩으로 가는 길 역시 오묘한 모습입니다. 한동안 스코틀랜드를 생각나게 하는 곳을 지나쳤습니다.
저녁나절 캉딩에 도착하여 봉이랑 허름한 여관에 함께 묵었습니다. "봉이야 사천요리는 중국에서도 유명하잖아. 여기선 뭘 먹으면 좋을까?" "훠궈요" "훠궈?"... "아~ 그 매운 거? 좋~지" 봉이가 물어물어 찾아간 훠궈 집은 캉딩에서도 꽤 유명한 곳이었나 봅니다. 넓은 식당에 사람들이 꽉 찼더군요.
훠궈(火鍋)란... 직역하면 "불가마"죠? 그만큼 화끈한 요리입니다. 일종의 샤부샤부인데요, 육수에 매운 고추와 양념을 넣고 펄펄 끓이면서 그 안에 식성에 따라 재료를 넣고 익으면 건져 먹는 음식입니다. 사천에서도 중경의 훠궈는 특히 유명한데 안내책자에 의하면 세계에서 제일 매운 요리가 바로 "충칭훠궈(重慶火鍋)"일 거라고 하는군요. 제가 간 집은 냄비가 두 개로 나뉘어서 한쪽은 맵지 않은 육수 국물이 나오더군요. 뷔페처럼 온갖 재료를 담아 놓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덜어다 익혀 먹는 방식이었죠.
* 훠궈는 샤부샤부의 원조 격이고 태국 쪽으로 내려가 수끼가 되었다고 합니다. 장강 삼협을 운행하는 뱃사람들이 점심으로 싸온 음식이 식으면 강가에 불을 피우고 냄비에 이것저것 데워 먹던 음식이 발전했다 하며 많은 훠궈 중 원조답게 사천성 훠궈가 제일 유명합니다.
제가 집어 온 것은 연근, 다시마, 숙주나물, 채소, 고구마, 감자, 오징어 등등. 봉이는 메기, 미꾸라지, 소간 기타 등등 그리고 어떤 동물의 뇌…. 헉!!! 엽기적인 것들만 골라 왔습니다. 옴마야~~ 미쳐 불겠네. "그걸 우짜 먹노? 속이 다 뒤집힌다" <-- (이건 한국말로 함) "아저씨는 왜 풀만 먹어? 이거 좀 드세요. 맛있어요." "헥…!" 고소 증세 때문에 가뜩이나 머리가 멍하고 속이 울렁거리는데 흐물흐물한 메기를 허연 육수에 삶아서 그걸 들이밀면 우짜노." 아이고 저놈의 "뇌"…. 저거 유명한 원숭이 골 아닐까? 아직 장가도 안 간 놈이 몸에 좋다는 보양식은 잘도 챙기는 구마." 그래도 어쩝니까? 착한 봉이가 어른을 대접한다고 권하는데…. 맥주를 입가심하며 늠름한 표정으로 몇 점 집어 먹어줬죠.
맛이요? 재료를 잘 섞으면 괜찮을 듯했습니다. 봉이가 주워다 놓은 것들이 워낙 미끈거리는(?) 것들이라 제가 집어 온 재료들은 검붉은 색 매운 육수에 몽땅 집어넣었습니다. 흐미~~ 빨간 육수가 정말 맵긴 맵더군요. 숙소에 돌아와서 바로 화장실을 갈 만큼…. 얼마나 매운지 항문이 아려서 찬물로 한참 뒷물을 했다는 사실…. 하하.
중국으로 떠나면서 먹는 것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반반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음식이 느끼해서 과일만 먹고 왔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중국음식처럼 싸고 맛있는 건 없다" 하고. 다리 넷 달린 것 중에 책상만 빼고 다 요리한다는 사람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왔다"였습니다. 누가 뭐래도 중국 요리는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맛있는 음식입니다. 혹시 입에 맞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평균치에서 좀 모자란다는 뜻이 되겠지요…. 하하 (농담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현지 음식을 덥석덥석 먹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웃뺘는 먹을 것을 눈앞에 두면 끝없이 주워 먹는 습성이 있습니다. 생각 없이 자꾸 집어넣다가 숨쉬기가 거북하여 위장약 신세를 지는 무식함을 떨기도 합니다. (이런 고약한 버릇이 있는 사람 앞엔 음식물을 감추어 두는 게 상책입니다) 이런 말 한다고 식충인 줄 아실 텐데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저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라는 말이죠. 다만 비위가 좀 약한 편입니다. 첫째로 생물의 형태가 리얼하게 드러나면 잘 못 먹습니다. 두 번째는 정력에 좋다는 음식들 대부분을 못 먹습니다. 세 번째는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못 먹습니다. 엥? 누구든지 그렇다고요? 그렇긴 하겠네요. 하하.
바쁜 여정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정식으로 먹을 순 없을 겁니다. 일상적인 중국의 아침 식사는 정말 싸고 입맛에 잘 맞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길거리 어디에서든 아침을 파는 곳은 많이 눈에 뜨입니다. 가장 좋은 메뉴는…. 쌀죽 한 그릇. 만터우(흰 빵), 찐 달걀, 김치를 닮은 채소, 볶은 땅콩. 튀긴 꽈배기 비슷한 빵 요우타이(유조)와 콩물 등 뜻밖에 개운하고 맛있는 아침 식사가 됩니다.
점심은 더 신나죠. 길거리에서 이것저것 먹어 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합니다. 국수나 라면, 만두(끝내 줍니다.^^)… 그리고 꼬치구이, 중국 과자나 과일 말린 거…. 먹을 게 너무 많아서 아마 고민될 겁니다. 바쁠 땐 중국 컵라면도 드셔 보세요. 조미료가 좀 많이 들어 있는 것이 흠이긴 해도 ** 아이스크림 선전처럼 골라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중국은 어디를 가도 보온병에 뜨거운 물이 있습니다. 물 걱정 뚝!
저녁엔 주변 사람들이 잘 가는 곳을 안내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선택할 요리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약간의 진통이 따릅니다. 메뉴를 보고 음식을 고른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현지인들이 먹는 걸 보고 "저거요~" 하는 방법이 제일 좋겠죠? 라면을 고를 때나 음식점에서 요리를 시킨 후 심정이 어떤지 아세요? 연필 굴려서 사지선다형 답을 쓴 기분입니다. 입에 맞는 음식이 나왔다면 대박 터진 거죠.
[ 샹챠이 香菜 ]
중국요리가 아무리 세계적인 음식이라 해도 가끔은 이상한 향 때문에 입맛을 잃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을 몇 번 반복해 먹어 보면 점점 나아지는 경향이 있더군요. "고수풀"이라 불리는 채소를 드셔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서양에선 코리앤더(Coriander)라고 부르며 향수 원료가 되기도 하고, 월남, 태국, 캄보디아같이 더운 나라에서 기본양념처럼 쓰이는 풀입니다. (월남 국수에 고수 풀이 빠지면 팥소 없는 찐빵이죠.^^) 이 풀을 태국에선 "팍치", 중국에선 샹차이(香菜)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먹기 힘들어하는 샹차이(香菜)는 적응하기 정말 어렵더군요. (이 향을 빈대 냄새라고 한다는데 빈대를 잡아먹지 못해 봐서…. 쩝) 만약 이 풀에 혼이 난 분이 계시면 음식점에 가실 때 "뿌야오 샹챠이"라고 말씀하시던가. 저처럼 "不要香菜"라고 큼지막하게 노트에 써서 보여 주세요. 이제는 샹챠이에 적응을 하여 조금 주면 더 달라고 합니다.^^
[ 화챠오 花椒 ]
따리(대리)에 가시면 백족의 전통차-삼도차(三道茶)를 맛보실 수 있습니다. 참 묘한 차라 기억에 남습니다. 이름처럼 三道茶는 세 가지 다른 맛의 차를 차례로 마십니다. 첫째 잔은 인생의 달콤함, 두 번째는 오묘함, 셋째 잔은 인생의 쓴맛을…. 두 번째 잔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단맛과 쓴맛은 흔하니 접어 두고 오묘한 맛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봉밀이 든 달콤한 첫째 잔을 마시고…. 두 번째 잔을 입에 쏟아부었지요. 느닷없이 혀끝이 아리 아리~ 스리 스리~... 완전히 아라리가 났습니다. 이렇게 설명하기 힘든 묘한 맛은 정말 처음입니다. 맛이라기보다 혀끝과 입안에서 미세 전기가 끊임없이 흐르는 듯, 한참을 기다려도 쉽게 멈추지 않았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재료를 물어보았습니다. 예쁜 아가씨가 열심히 설명해도 소귀에 경 읽기랑 다를 바 없더군요. 무식이 탄로 날까 봐 고개만 끄덕거리고 그냥 궁금함을 가슴에 담아 두었습니다. 또쳉에서 씽이랑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닭고기 요리에서 갑자기 전기가 번쩍 왔습니다. 분명히 삼도차 두 번째 잔에서 흐르던 전기. 흐흐. 음식에 들어간 재료를 하나씩 골라내서 차례로 씹으며 검사를 시작했습니다. 고추 씨보다 조금 큰 산초 열매 하나를 씹자…. 쨘~~ 입안에 불이 확 켜졌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그 재료를 얻어 비닐봉지에 담아 왔습니다. 이름은 "화초". 제가 붙인 이름은 "아리아리 스리스리 열매"입니다!! 산초의 일종인데 우리나라 산초와 조금 다릅니다.
[실크로드와 양꼬치]
서안에서 시작하는 실크로드는 가욕관을 지나 둔황을 거치면서 드넓은 신장성을 양쪽으로 감고 지나갑니다. 하나는 천산 남로요. 하나는 천산 북로. 이 길이 끝나는 유럽 대륙까지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은 아마도 양일 겁니다. 실크로드 어느 길을 가든 양고기는 거의 주식과 다름없습니다.
제가 먹은 양고기 중 가장 싼 곳이 있었다면 바로 카스 (카슈카르). 몇 년 전 가격이지만 양꼬치 하나에 1위안이 안 되는 - 그것도 양이 어마 어마한 꼬치였습니다. 중국 내에서도 양꼬치는 인기 있는 음식입니다. 대부분 저녁나절 술안주로 좌판에서 먹긴 하지만 이 양꼬치가 끝없이 쌓여있는 시장이 바로 우루무치입니다. 우루무치 먹자골목은 저녁이 되면 거의 양꼬치 굽는 냄새와 연기로 질식할 정도입니다. 어떤 상상을 하든 이곳에서 양꼬치 소비 규모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제 생각엔 이 양꼬치 때문에 생산되는 공해가 우루무치를 망하게 할 것 같은데 현지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무튼, 실크로드 주변 도시들에선 양꼬치를 질리도록 먹을 수 있습니다. 아무렴 본산에서 먹는 양꼬치는 값도 싸고, 양도 많고, 맛있습니다.
[란저우 우육면]
중국의 면 요리는 워낙 다양하지만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맛볼 수 있는 면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중 대표가 우육면, 그리고 쌀국수... 쌀국수의 대표 지역은 운남성이고 우육면을 대표하는 곳은 란저우입니다. 운남 쌀국수는 북쪽 지방에서 찾기 어려워지는데 우육면은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인기 메뉴입니다. 우육면 본고장에서 맛 본 란저우 우육면은 어떤 맛일까요? 정말 맛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칼국수와 비슷한 면발에 국물은 매우면서 구수한 맛이 납니다. 식초에 절인 통마늘을 김치처럼 주는데 그것도 삼삼하게 맛있습니다. 물론 가격도 부담 없이 쌉니다.^^ 이렇게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먹고 나면 그 동내가 왠지 더 좋아집니다.
[ 공룡알 ]
중국에선 찐 달걀을 먹게 되는 기회가 많습니다.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이 사람들이 소금을 찍지 않고 먹는다는 것이죠. 소금 없이 먹는 찐 달걀 맛도 익숙해지면 괜찮은 편이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합니다. 이럴 땐 간장처럼 검은 물에 삶은 달걀을 골라 보십시오. 이 달걀 맛이 바로 진국입니다. 껍질을 벗기면 속살은 하얀데 짭짤하게 간이 배서 간식거리로 딱입니다. 이 달걀 이름은 “차지단”입니다. 검은 국물은 간장이 아니라 찻잎을 넣고 끓여서 검은색이 납니다. 소금이나 간장을 넣기도 하고 다른 약재를 넣기도 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흰죽 역시 아무런 간을 하지 않고 먹는 걸 보면 우리보다 소금을 덜 먹는 민족 같습니다. 서양 애들과 어울려 길거리를 배회하다 엄청 큰 달걀을 보고 궁금해서 샀습니다. 맛은 달걀과 비슷했지만, 양이 엄청납니다. 코 큰애들이 어떤 종류의 알인지 몹시 궁금해하더군요. 이건 바로 "Dinosaur Egg"라고 했더니 배를 움켜잡고 뒤집어졌습니다.^^ 아마 슈퍼 오리알 아니었을까요?
[ 건강차 ]
상해에 도착하여 차를 타는데 신기한 것이 눈에 뜨입니다. 많은 사람 손에 풀, 꽃, 열매들이 든 투명 물병이 들려있었습니다. 아마 직접 조제를 한 건강차인가 봅니다.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면 따~땃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냉장고가 없어서라기보다 찬물에 익숙지 않은 듯했습니다. 갑자기 오렌지 주스를 데워 마시던 케냐의 "와찌라"가 생각났습니다. 웃뺘는 그렇게 짠돌이는 아닌데 물을 사 먹는 경우를 참 아까워하는 편입니다. (생수 회사 직원에게 미안~) 그런 면에서 중국은 아주 좋습니다. 차 문화가 발달하여 어디를 가든 뜨거운 물이 넘치죠. 찻잎 몇 개 띄워놓고 수통에 담아 들고 다니면 물을 갈아 마셔서 탈 나는 고생도 하지 않아 일거양득입니다.
중국 음식 이야기를 하자면 워낙 다양하여 여기서 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