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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bia 김흥수 Mar 21. 2017

장수 마을 훈자와
카라코람 하이웨이, 쿤제랍 패스

훈자, 카라코람 하이웨이, 쿤제랍 패스

세계적인 장수마을, 훈자 


훈자는 카라코람 하이웨이 중간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을 대표하는 마을 이름이 카리마바드. 훈자가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장수마을이라는 발표 때문이었습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개통되기 이전 이 지역 사람들은 외부와 고립된 생활을 하며 자연이 주는 풍요와 적당한 노동의 대가로 생명연장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런 지역이 여러 곳 있는데 유독 이 마을 사람들이 장수하는 이유가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물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과연 이 물이 장수를 도와주는 생명수일까요?



이곳의 모든 물들, 심지어 샘에서 솟아오르는 물조차 이렇게 탁한 회녹색 빛입니다. 사진은 주민들이 음료수로 사용하는 샘을 찍은 것인데, 이 물은 그저 뿌연 것이 아니고 백색과 녹색, 두 종류의 물이 섞이지 않은 상태로, 금가루 섞은 화장품처럼 늘 따로 놀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참 신기한 물이죠? 하얀 옷을 저곳에 담아두면 당장 물이 들 것 같아 마셔 볼 엄두도 못 냈습니다. 장수할 기회를 발로 차고 온 것일까? 목이 뻐근하고 어깨가 쑤십니다.



훈자의 대표적 이미지 하나를 떠올리라면 장대한 미루나무들입니다. 예리한 칼로 절단해 놓은 듯한 강기슭의 절벽. 검은색이 도는 장중한 산. 그 사이를 이어주는 진초록의 풀과 미루나무 풍경이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가슴이 탁 트입니다. 그런데 28mm 광각이 지원되는 카메라를 너무 활용을 못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런 전경들을 최대한 넓게 찍어 온 사진이 하나도 없군요. 이건 또 무슨 망령일까? 광각으로 다가가면 뷰파인더로 보이는 풍경들이 너무 작아서 그대로 사진을 찍으면 망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카메라를 좀 믿어봐야겠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다시 한번 차분히 보았습니다. 바람 계곡이 훈자를 모티브로 했다고 들었기 때문에…. 또, 만화가 박재동 님이 쓴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과 수잔 휫필드(Susan Whitfield)의 실크로드 이야기도 읽었습니다. 그중 박 화백님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은 실제로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훈자 지역을 실제로 방문하고 나우시카를 그렸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카리마바드 발티드 포트에서 내려다본 그 풍광은 정말 영화 속 바람 계곡과 닮았습니다. 미야자키 감독 특유의 푸근함과 곡선이 강조되어 좀 더 넓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문득문득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는 걸 보면 그 느낌만큼은 실제에 가깝더군요.


박 화백의 스케치 기행에서 훈자 부분은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시선을 끕니다. 이 책을 보고 가지 않았다면 미루나무의 아름다운 선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쉽게 그린 듯한 스케치에서 많은 것을 전달하고 보여주는 작가의 힘이 너무 부럽습니다. 연녹색 포플러를 보면서도 가을의 노란 단풍이 오버랩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만큼 박 화백의 스케치가 뇌리에 남아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실크로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박재동 님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을 꼭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 



제3의 극지라 불리는 카라코람 산맥을 관통하는 도로가 이름처럼 하이웨이 일 거란 상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이 길을 뚫는 데 20년이 걸렸고 수많은 생명이 희생당한 길인데…. 눈이 쌓이는 겨울에 통행을 못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장마철이라면 곳곳이 붕괴하거나 낙석에 묻히는 일은 다반사일 겁니다. 이렇게라도 관리를 해주어 차가 통행할 수 있다는 자체가 고맙죠.



카라코람 하이웨이 대표적인 풍경 중 하나가 이렇게 생긴 강입니다. 물길이 토사를 운반하여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수만 년 동안 다듬어졌을 이 풍광들이 경이롭습니다.




써스팬션 브리지


굴미트를 지나 파수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이 다리는 론리 플레닛에 소개되어 유명해졌습니다. 이름하여 서스펜션 브리지. 인디아나 죤스 다리라고도 합니다. 그저 재미로 만들어 둔 다리가 아니라 주민들이 머리에 나뭇단을 이고 훌쩍훌쩍 건너 다니는 중요 통행로입니다. 이 다리는 생각보다 길고 많이 흔들렸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중간 지점에서는 꼼짝을 못 하고 매달려 죽을 맛이었습니다. 장마철 급류가 흐를 때 저 다리 위를 건너는 상상을 해보세요.



재미있는 다리를 잘 봅시다. 오른편은 이미 부서져 통행을 할 수 없는 다리입니다. (이 다리가 통행자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촉매제 역할을 함) 새로 놓은 다리조차 발판이 듬성듬성, 균형을 유지해주는 세로줄은 간격이 너무 멉니다. 바닥은 수평이 아니고 워낙 흔들려서 손을 놓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이 다리를 한국에 옮겨와서 공포체험 사업을 하면 한몫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파수 빙하


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빙하가 바로 이곳일 겁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이 빙하를 볼 수 있습니다. 큰길에서 걸어서 20분 정도만 가면 빙하를 만져 볼 수 있습니다. 흙과 자갈이 박혀있어 생각보다 많이 어수선한 빙하입니다.



쏘스트에 도착하여 PTDC에서 운영하는 호텔을 찾아갔는데 무슨 이유에 선지 만원이랍니다. 깨끗하고 숙박비도 저렴했는데…. 이 좁은 바닥에 누가 단체 여행을 왔을까? 설마 외국인에게 방을 주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건 아니겠지요. 레오가 이쪽저쪽 알아보더니 “허름하지만 싼 집에서 묵을래요? 깨끗하고 비싼 집에서 묵을래요?” 그럽니다. “깨끗하고 싼 집” 그런 곳은 PTDC 밖에 없다는군요. 800루피에 리베라 호텔에 묵기로 했습니다. (이 값이면 올드 훈자인에서 열흘 묵을 수 있습니다) 리베라 호텔은 작지만, 파키스탄에 묵은 곳 중 최상의 시설이었습니다. 호텔 식당의 저녁과 아침 식사 역시 GOOD!



새벽 5시 반에 눈이 떠졌습니다. 코딱지만 한 마을이라 돌아다닐 곳도 없습니다. 아침 시간이 한가하고 심심 해지는 경험은 정말 오랜만에 하는 셈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호텔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낮게 드리운 구름이 아침 햇살을 받아 승천을 시작했습니다. 높은 고도, 맑은 공기…. 드물게 경험하는 청명한 아침입니다.




쿤제랍 패스


“피의 협곡”이라 불리는 쿤제랍 패스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해발 2,700M 소스트에서 2,000M를 숨 가쁘게 올라 정상에 도달하면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에 이릅니다. 이 고개를 기점으로 서쪽은 파키스탄, 동쪽은 중국입니다.



9시까지 버스터미널에 오라고 해서 시간을 맞추어 나갔더니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리라 예상했는데 9인승 벤 두 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리베라 호텔에 함께 묵은 네덜란드 단체 여행객의 차가 자전거를 지붕에 싣고 도착했습니다. 어제 쿤제랍 정상에서 이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내려왔고, 오늘은 중국 측으로 넘어가 카라쿨 호수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예정이랍니다.



차를 타기 전 여권 검사와 짐 검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허술한 출국장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검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배낭을 온통 풀어헤치고, 치약까지 짜서 냄새를 맡고…. 이런 짐 검사는 지금까지 여행 중 처음입니다. 내가 마약상으로 보였을까? 검사 중에 샴푸 뚜껑을 열어 놓아서 타슈쿠르칸에 도착해 보니 세면도구 가방이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망할 놈들 맛을 봤으면 뚜껑은 닫아 두어야지~-!-



9시 출발 예정 버스가 11시가 다 되어 출발했습니다. 마을 밖에 나가는듯하다 제대로 된 건물로 또 차가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출국 심사. 헉…. 세관 검사와 심사를 한꺼번에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고 11시 20분에 정식으로 소스트를 벗어났습니다.



그냥 온전히 가면 죄악입니다. 이번에는 펑크가 났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망 좋은 곳에서는 절대로 펑크가 나지 않습니다. 차가 퍼진 장소는 낙석이 굴러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너덜지대였습니다. 기사가 타이어를 갈아 끼는 동안 승객들은 500m쯤 물러나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낙석을 피해야 했습니다.



지금부터 쿤제랍 패스의 시작입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습니다. 자국민은 20루피 외국인은 4달러…. 도적놈들, 무려 12배를 받다니….


우리 차에는 중국인 남자 1. 여자 1, 파키스탄 여자 1, 남자 3, 그리고 나와 기사가 타고 있습니다. 중국인 남녀는 차를 타는 순간부터 담배를 피워대며 무례하게 떠들기 시작했고, 파키스탄 아줌마도 덩달아 신이 나서 떠드는 일에 동참합니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우는 소리여서 까마귀 소리처럼 너무 귀에 거슬립니다. 에구~ 저 인간들 입을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나?



점차 고도가 높아집니다. 파키스탄 까마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다. 이번에는 머리가 아파 죽겠다고 징징댑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너무 떠들어서 너 벌 받은 거야. 중국 아이들은 고소 적응이 되었는지 쉼 없이 떠들며 해바라기 씨를 까먹습니다. 높은 곳을 몇 차례 올라 다녔다고 나도 이제는 고소 적응이 완벽하게 된 것 같습니다.

뒷자리에 탄 파키스타니 역시 노랗게 질려 헐떡거립니다. 



찬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차창을 닫아두었는데 중국 아이 둘은 계속 줄담배를 피웁니다. 저렇게 정신없는 인간들이 있을까? 함께 탄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나? “익스큐즈미... 담배는 차가 서면 밖에서 피우는 것이 좋겠다. 다들 불편해하잖아.” 경고해 두고 타이레놀을 꺼내어 파키스탄 아줌마와 아저씨에게 한 알씩 건넸습니다. 고소증 치료제는 아니지만, 타이레놀이 두통을 없애는 효과가 분명히 있습니다. 한참을 조용히 가는듯하다 중국 여자아이가 또 담배를 꺼내 뭅니다. “야! 너 미쳤냐? 저 사람들 괴로워하는 거 안 보여?” 호통을 치자 처녀는 담배를 창밖으로 던지고 입을 빼뭅니다. 영어가 겨우 되는 남자아이는 미안하다며 대신 사과를 했습니다. 뒷자리에서 죽어가던 파키스타니가 내 등을 쿡쿡 찌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해발 4,700m 쿤제랍패스 정상


해발 4,700m. 정상 부근에 파키스탄 초소와 국경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차에서 내려 파키스탄의 마지막 땅을 밟아 보았습니다. 사진은 평화롭게 보이지만 칼바람이 붑니다.



쿤제랍 패스 정상 


여기서부터 잠시 검문을 하고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면 중국 측 국경이 나옵니다. 소스트에서 파키스탄 국경까지는 90Km 정도. 9시에 출발한다던 버스가 11시에 떠나 오후 2시 20분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중국 국경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40분 (파키스탄 시각) 파키스탄에서 출발한 차 3대가 모두 도착하자 짐 검사를 시작. 한 시간 이상 지체를 한 후 중국 군인의 호위를 받으며 타슈쿠르칸으로 출발했습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 중국측 초소


이슬라마바드에서 시작한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쿤제랍 패스에 도착할 때까지 파키스탄의 지형은 너무도 직선적이며 강인하게 솟아오르고 거칠게 파헤쳐진 현재 진행형이었습니다. 남성중에서도, 아주 거친 야성의 청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고개를 넘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진 중국 대륙은 그야말로 장대하고 부드럽습니다. 똑같은 산의 색깔조차 파키스탄은 검은 데 반해 중국은 누렇게 보입니다. 세월에 갈고 닦여서 둥글어진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은 국경선이 없어도 다른 나라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슈쿠르칸 까지 계속되는 내리막길...


파키스탄 서남쪽 타프탄에 도착하여 12일 동안 열심히 파키스탄을 가로질렀습니다. 이제는 파키스탄도 안녕~. 이란도 파키스탄도 꼭 다시 오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면서….



타슈쿠르칸 塔什庫爾干


오후 4시 40분. 지루하게 끌던 국경 통과 절차가 끝나고 파키스탄에서 함께 출발한 차 3대를 중국 군인이 호위하여 또 함께 출발했습니다. 아마도 국경에서 타슈쿠르칸까지는 개인이 함부로 통행할 수 없나 봅니다. 국경 초소에서 타슈쿠르칸까지 근 200Km 구간은 1,500m의 고도차가 있습니다. 장대한 고원의 분지를 서서히 돌아내려 오는 이 길 역시 아름답습니다. 파키스탄에서 가파르게 솟은 검은색 산만 보다가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부드러운 곡선의 누~런 산을 대할 때, 극명한 대비에서 오는 신비감이 더 커진 걸 겁니다.


길이 정말 좋습니다. 그러나 통행하는 차가 거의 없습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중국 측 길은 정말 잘 닦여 있습니다. 2차선 도로여도 길이 넓고, 도무지 통행하는 차가 없어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 아우토반 중에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3시간 가는 동안 마주 오는 차를 한번 본 기억밖에 없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놀라게 되는 일이 있다면 이런 길이나 건물들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통행량이 적은 지역에 황당할 정도로 잘 닦인 길, 시골에서 만나는 기괴하게 큰 건축물, 전기가 남아도는 듯한 야경……. 비현실적이거나 비효율성 때문에 이따금 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도 나오고, 이따금 은 그 힘에 압도를 당합니다. 잊고 지내다가 이럴 때면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상기하곤 했습니다.


저녁 7시 50분, 타슈쿠르칸 세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정식으로 입국 절차를 밟고 세관검사를 끝내야 완전하게 중국 땅을 밟는 겁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어둠이 내리는데 타슈쿠르칸 전체가 깜깜한 암흑천지였습니다. 중국의 서쪽 끝에 있는 이 마을은 분위기로 보아 정전이 자주 되는 지역인가 봅니다. 양초라도 몇 개 준비해 두면 좋으련만 랜턴을 든 공안만 몇 명 어슬렁거리면서 짐을 뒤척일 뿐, 입국 카드를 쓸 만한 책상도 준비해 주지 않았습니다. 네 신세 니 알아서 하라는…. 배낭에서 랜턴을 꺼내 이 사람 저 사람 빌려주며 함께 온 네덜란드 여행자들과 입국 신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중국인과 파키스탄 사람들은 까다롭게 짐을 풀어헤치는 데 반해 내 배낭과 네덜란드 사람들 짐은 대충 훑어보고 통과를 시켰습니다.


입국장을 나서자 입국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삐끼가 달려들더군요. 100위안에 카슈가르까지 가는 차들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이 밤에 카스를 가면 카라쿨 호도 못 보고 길가 풍경도 못 보게 될 겁니다. "잡지 마. 난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갈란다~."



여행은 새로운 만남의 연장선


교통빈관을 찾아야 하는데 어둠이 짙어져서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영어가 되는 인간도 나타나지 않고…. 이럴 때는 눈에 잘 뜨이는 곳에 배낭을 깔고 앉아서 잠시 쉬며 낚싯줄을 드리우는 것이 상책입니다. 누군가 접근을 하겠지요. 담배 한 대를 절반쯤 피웠을 때…. "Where are you come from?" 그렇지…. 월척이 걸려들었습니다. 네덜란드 관광객을 마중 나온 현지의 파키스타니 가이드가 인사를 하더군요.


"나 교통빈관 찾는데 어떻게 가지? 그리고 내일 아침 카라쿨 호수 들렀다 카스 가는 차가 있느냐?" "그래? 그럼 우리가 묵는 호텔로 가자. 내일 카라쿨 호수까지 빈 차로 가는데 공짜로 태워줄게" "오 예~"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그 호텔 비싼데 아니야?" "비싸긴 한데 단체 할인받아서 265위안짜리가 170위안이다." 170위안…? 으이그 너무 비싸다…. 혼자 그 좋은 호텔에서 뭐 하라고 이 정전 언제 끝난 데냐?" "아마도 오늘은 안 들어올걸. 종종 그래"


헉! 이 깜깜한 곳에서 어딜 찾아다니겠습니까? 그냥 깨갱 하고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내일 카라쿨 까지 천천히 유람할 수 있다는 것에 맘을 뺏겼기 때문입니다.

"참…. 나 중국 돈 없는데 호텔에서 환전되냐?" 100불 주면 내가 800위안 바꿔줄게. "빠르게 계산…. (100$*1,200원) / 800위안 = 150…. "그래 그 정도면 되겠다." 가이드에게 우선 쓸 돈 100불을 바꿨습니다.


겉만 멀쩡한 타슈쿠르칸 스톤호텔


4성급 호텔이라는 스톤 호텔에 도착하여 중국의 호텔 시스템에 또 한 번 경악했습니다. 넓은 호텔 카운터에 불친절의 극치인 여자 두 명이 모든 일을 다 보는 듯…. 정전이라는 이유로 배를 째고 앉아 신경질만 부리면서, 카운터에 촛불 하나 달랑 켜두고, 영어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열쇠를 꾸러미째로 집어던지고, 양초 한 자루씩 쥐여 주었습니다. 방은 알아서 찾아가라는 식이지요. 긴 복도에 불을 안 켜 두어 무덤에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스무 명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기가 막혀서 웃지도 못하더군요. 파키스타니 가이드만 혼자 죽으라 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그러던가 말던가…. 방은 넓은데 뜨거운 물은 안 나오고, 당연히 티브이도 안 나오고,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해야 하는데 우짜면 좋노….


자전거를 싣고 쿤제랍패스를 넘어 온 네덜란드 사람들...


네덜란드 팀의 우두머리와 정식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쏘스트에서 같은 호텔에 투숙했고, 오늘도 함께 왔기 때문에 모두 낯설지 않습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너의 팀이 내일 카리쿨리 호수까지 간다는데 나도 따라가면 안 될까? 차비는 낼게." 얌체처럼 그 사람들이 빌린 차를 훔쳐 타긴 싫었습니다. "아무렴, 그렇게 해….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갈 거니까 빈 버스로 가는데 잘 된 셈이다."


비스킷 하나로 점심을 때운지라 배가 고팠습니다. (*파키스탄에서 버스가 출발한 이후 타슈쿠르칸까지 매점이나 식당은 한 곳도 없습니다. 이 길을 가시는 분은 간식거리나 점심을 미리 준비해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어두운 호텔에 짐을 풀고, 랜턴을 들고 밖으로 나와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걸었습니다. (자가 발전기를 돌리는 집들이 몇 곳 있어 불 켜진 식당이 눈에 뜨였습니다) 어떤 음식을 파는지도 모르겠고…. 메뉴도 못 알아보겠고…. 그냥 밥하고 요리하나 달라고 손가락으로 짚어 주었습니다. 생각보다 맛은 괜찮은데 혼자 먹는 밥이 유난히 목에 걸려 허기만 면하고 남겼습니다.


타슈쿠르칸 시내 풍경


불편한 정전의 대가로 잠을 푹 잤습니다. 6시에 눈을 떠서 창을 열자 날이 밝아오기 시작합니다. 그때까지도 정전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8시 반 약속 시각이 많이 남아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고원지대의 아침이 상쾌합니다. 미처 숨지 못한 반달이 하늘에 떠서 빛을 잃어 가는데…. 저 멀리 군부대에서 기상을 알리는 신호나팔 소리와 함성이 들려오는군요. 곧이어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왔습니다. 곧이어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왔습니다. 가늘지만 힘찬 장족의 노래, 작년 샹그릴라 지역을 돌며 귀에 익었던 가락이라 더 잘 들렸습니다. 박재동 화백이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에 올려놓은 "눈먼 소년의 노래" 가 진하게 생각났죠. 그 노래 제목은 "천당"이었는데 제가 들은 노래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무언가 비슷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같은 노래라고 착각이 들 만큼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제일 잘 어울리는 노래라는 생각만 들더군요. 이틀 후 이 노래 제목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타슈쿠르칸에서 젤 그럴듯한 장소였습니다.^^ 관공서 같은데 무슨 건물인지 잘 모르겠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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