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tbia 김흥수 May 21. 2022

작은 친절이 주는 행복

EDE 야외 극장

2년 만의 나들이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13일은 손님들을 모시고 다닌 일정이고, 나머지 열흘은 – 마지막 날 코로나 PCR 검사에서 양성을 받는 분이 계시면 혼자 두고 돌아올 수 없어- 미리 연장하고 갔습니다.

다행스럽게 양성판정을 받은 분이 한 분도 안 계셔서 혼자 여행이 되었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한 토막…….


나는 브라스 밴드를 좋아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금관악기 소리에 끌림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학창시절 밴드부를 자원한 것도 그 이유고.

만약, 가정 형편이 허락했다면 음대에 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ㅎㅎ

아무튼, 금관악기로 귀를 다듬어 온 결과, 이제는 다양한 음악에 빠져들고 좋아합니다.

자연스럽게 클래식 쪽으로…….


이번 여행에서 네덜란드와 독일쪽 음악회를 미리 체크해 보았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시골,

EDE라는 동네에서 팝 오케스트라로 꽤 유명한 공연이 있었습니다.

“Maestro & The European Pop Orchestra” 

그런데. 이 공연의 관람료가 터무니없이 싼 5유로. 

(통상 유러피안 팝 오케스트라 공연의 가격은 60유로 이상임)



정말 이상하지만, 분명히 맞습니다.

문제는 사이트에서 입장권 예매를 하고 결재를 누르면, 카드결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ㅠㅠ

점점 도전 욕심이 생겨 별 방법을 다 동원하다 마지막 수단으로 야외극장 공식 사이트에 적힌 메일로 글을 보냈습니다.


"이 공연 꼭 보고 싶은데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예매할 수 없다. 방법 좀 알려주면 안 되겠니?"

며칠이 지나도 감감무소식…….

이번엔 야외극장 페이스북 페이지로 들어가 또 글을 올렸습니다.

"홈페이지에 있는 메일로 글을 보냈는데 답이 없어 답답하다. 예약할 방법을 좀 알려 주라."

드디어 메일로 답이 왔습니다.

"몇 명이나 올 거냐? 그냥 와."


헐~~~ 뭘 믿고? 그냥 갔다가 자리 없다 하면 어쩌지?

그래도 시골 인심 믿어 보기로 하고 다시 메일을 보냈습니다.

"3명이 갈 예정이고, 푯값은 현장에서 지급할게. 꼭 기억해 주라."


드디어 당일,

아침 일찍 4일간 묵으면 정이든 암스테르담 세인트 크리스토퍼 인과 작별을 하고 시골 마을 에데로 가는 열차를 탔습니다.

지난 2년간, 긴 터널 속에 같혀 이제나저제나 기다려온 나날들,

이럴 줄 알았다면 1년은 좀 더 알차게 보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런 자유를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 한 번 나의 생에 감사합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싱그러운 날입니다.


2022년 5월 11일, 리세 큐켄호프 - LG V30


이른 시간 호텔에 도착, 생각지도 않았는데 키를 주며 푹 쉬랍니다.^^

모처럼 시원하게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낮잠까지 푹~~~.

몇 시간 동내 나들이를 해도 시간이 남아 공연장 근처에서 쉬기로 했습니다.


5시 반, 야외 공연장 입구 도착.

서성거리며 망설일 때 저 안에서 덩치 큰 누군가 나를 부릅니다.

"너 KIM 아니냐?"

웁스~~~~ 내 성을 어찌 알고?

"아까부터 너를 지켜 보고 있었다. 한국에서 왔지?"

오메 고마운거... 그가 누군지 모르지만, 메일을 주고받았던 인물이 분명합니다.


"고맙다. 이곳에 와도 당신을 쉽게 만날 수 있으라 예상치 못했다. 매우 반갑다."

"자~ 15유로…. 세 명이 아니라 나 혼자 왔어. 그래도 3자리 부탁을 했으니 15유로."

"필요 없어…. 그냥 들어 와!"

헐……. 이게 뭐야? 이거 짝퉁 공연인가 벼.

순간 의심이 드는데 저 멀리 공연장 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습니다.

곰 같은 친구가 말하네요. 

“지금 리허설 중이니까 들어와서 봐도 돼.”


2022년 5월 13일, 에데 야외 극장, 유러피안 팝 오케스트라 리허설과 본 공연 - LG V30


얏호!!! 진짜로 진짜로 귀도가 지휘하는 유러피안 팝 오케스트라가 맞습니다요.

이런 횡재가…. 하하하

이제서야 이 공연이 이렇게 싼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이 갔습니다.


에데 공연장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야외극장입니다. 1936년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국가가 건설한 기념물이며, 좌석은 2,060석. 이 좌석수는 당시 도시 규모를 생각하면 매우 큰 편이죠. 제2차 세계 대전 중 극장은 독일군에 의해 손상되었고, 1945년에 캐나다 군인들이 Ede를 수복하고 극장 복원을 도왔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관중석 입구 상단에 기념비를 설치했내요.

그렇습니다. 어제가 네덜란드의 현충일이었고 오늘 (5월 13일)은 광복절입니다. 이 두 날은 항상 붙어서 기념합니다. 엊저녁 암스테르담 담 광장을 모두 막고 국왕 부처가 직접 현충일 행사를 주관했습니다. 8시 정각이 되자 모든 시민이 일손을 멈추고 2분간 묵념을 하는 자리는 숙연했습니다.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네덜란드 국경일.... 이를 기념하여 에데 라이온스 클럽이 주축이 되어 시민을 위한 서비스로 “유러피안 팝 오케스트라”를 초청하였나 봅니다. 질서를 위해 무료 공연보다 단돈 5유로에 서비스를 한 거죠.


https://www.youtube.com/watch?v=JIwqYPGZlos


https://www.youtube.com/watch?v=GUeDiW-g0do


https://en.themaestro.nl/


곰 아저씨는 무척이나 바쁩니다.

여러 가지 관리를 하는 듯. 옆에서 귀찮게 굴기 어려워졌습니다.

웬만하면 함께 저녁 식사라도 하면 좋겠는데 그럴 분위기는 아니고…….

"나 저녁 먹고 다시 올게. 그때 너를 못 만나면 어케 들어오지?"

"아 걱정마... 그냥 오면 알아서 할게."


진짜 맘 편한 곰이네요. 입장 시간 되면 수많은 인파가 몰릴 텐데 니가 없으면 어떻게 하라고?

퍼뜩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자."

저녁 잘 먹고 다시 입장할 때 정문을 가로막는 직원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이 분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곰이 와서 방석을 하나 주며 좋은 자리에 앉아 맘 편히 보라며 등 두드려 주고 갔어요.



그 때 까지 난 이 양반이 누군지도 모르다 공연 끝 무렵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 극장을 운영하는 모임의 회장. 마무리에 끝인사를 하더군요……. 하하하

나올 때도 역시 정신없는 와중이라 회장을 만날 수 없었고요.


돌아와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고맙다. 너의 친절에 감사한다. 작지만 한국 기념품을 보내니 기억해주기 바래…….”


네덜란드를 가면 에데에 다시 들를 이유가 생겼습니다.

거스 [Guus Wijnsouw] 회장과 한가한 날 만나면 코가 삐뚤어지도록 맥주를 마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