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의 손 - 카메라 이야기
아이나 어른이나 남자들은 장난감에 몰두를 한다고 합니다.
성장을 하면서 스케일이 커지긴 해도 유아적 취미는 늘 존재한다지요.
그래서 어른들의 3대 장난감으로 자동차와 오디오와 카메라를 꼽습니다.
(정신없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이제는 이 이야기도 고전으로 전락하겠지만....)
돌아보면 저의 장난감에 대한 편력도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 카메라 부분은 장난감의 차원을 넘어서는 시점에 온 것 같아 한 번 정리를 해보려합니다.
아들이 태어날 무렵 기록용 카메라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의 상징처럼 느껴지던 카메라가 나에게도 필요한 시점이란 생각이 든 게지요.
어떤 카메라를 구입할까 망설일 때 삼성에서 일본 미놀타와 손잡고 첫 발매를 시작한 미놀타 XD5 선전이 눈에 띠었습니다.
워낙 장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좋아보였습니다.
문제는 돈... 이 카메라 한대 가격이 저의 두 달 치 봉급에 버금갔습니다.
수많은 갈등... 지름신은 태초부터 우리를 보호하사...
두 눈 딱 감고 질렀습니다.
그때부터 카메라는 인생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방긋 방긋 웃는 아들 사진 찍는 재미가 카메라 값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리기에 부족함이 없었지요.
사진에 대해 조금 눈을 뜨고, 탐론 80-200 줌렌즈도 하나 장만했습니다.
표준렌즈 쓰다 망원으로 옮겨가니 배경 기가 막히게 날아갑니다.
그런대... 삼각대가 없으면 사진이 죄다 흔들려서 필름 한 롤에 한두 장 건질까 말까 합니다.
폼 나던 망원렌즈는 크고 무거워서 자연스럽게 애물단지가 되어 그대로 방치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무거운 장비에 대한 기피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나 봅니다.)
딸이 태어나고... 피사체가 자연히 딸로 바뀌었는데 사단이 생겼습니다.
호박덩이 주제에 구르기까지 하는 겁니다.
카메라를 피해 울며 달아나는 딸 앞에서 마지막 공식 선언을 했습니다.
"너 아빠 탓 하지 마라. 여기 증거물 있다."
정말 이 아이가 왜 그렇게 사진을 찍기 싫어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생활전선이 바빠지면서 카메라는 점 점 장롱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 하더군요.
나들이 갈 때에도 귀찮다는 이유로 카메라는 두고 같습니다.
특별한 날 필름을 장착하면 한 롤 절반도 못쓰고 다시 장롱으로 들어가는 사례가 생기고...
이래저래 카메라는 부담 가는 물건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그 후,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고... 다시 카메라와의 조우는 시작 됩니다.
생애 첫 해외나들이 기회가 생겼습니다.
기록용 카메라가 필요한데 무거운 XD5는 너무 부담가고...
형님이 쓰는 캐논 자동카메라를 이 기회에 갈취를 했습니다.
아~~ 편하고 좋더군요.
오토 포커스... 그 동안 카메라가 너무 많은 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꺼낼 때 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서 모든 짐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운 공부... 여행에는 최소한 짐을 줄이라는 것.
* 주 : APS 카메라란....
APS = Advanced Photo System 의 약자. 코닥, 캐논 등 5개사의 공동작으로 기존 36mm 카메라보다 더 소형, 경량화 되었고 24mm 폭의 Film에 자기 기록층과 광학 기록층이 있다. APS의 장점으로는 일반규격 사진 외에 16:9 와이드 사진과 더욱 시야가 넓은 파노라마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또, 사용도중 필름 교환이 용이하고 보관이 쉬우며 인덱스 프린터로 출력하여 보관 할 수 있는 등 많은 편리함이 있으나 인화 비용이 비싸고 대형 인화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 나들이는 내 인생의 목표인 배낭여행이었습니다.
마흔이 되던 해에 모든 것을 팽개치고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이때의 실수담과 에피소드는 너무 많아 생략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메라를 또 잊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괜찮은 카메라를 거금을 주고 APS카메라를 새로 샀는데 바로 망가뜨리고...
또 하나를 샀다는 것입니다... 아주 간편하고 작은 놈으로...
좌충우돌하는 저의 띨빵함이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면서 여행은 그 이 후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덕분에 애꿎은 카메라는 기록의 보조수단으로 폄하되고 느낌과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발상이 지배하는 시절이 온 겁니다.
이 후, 한동안 작고 가벼운 필름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아들의 장난감 니콘 쿨픽스2000이라는 디카를 들고 일본을 다녀오면서 디지털의 편리함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복잡한 인화 절차도 없고, 스캔을 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웹에 올리는 여행기를 쓰는 용도로는 이 보다 더 좋은 물건이 없더군요.
그러나 화소수 작은 카메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여행기를 연재하면서 사진이라는 매체가 단순히 기록을 위한 보조수단으로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2004년 실크로드를 떠나기 전, 웹사이트 뒤져 찾아낸 카메라가 바로 미놀타 A1입니다.
500만 화소급, 28미리 광각부터 200미리 망원까지 커버하면서 휴대가 비교적 간편한 카메라.
원하는 바가 확실했기 때문에 이외로 선택은 쉬웠습니다.
이때부터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지던 카메라란 존재가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로 나도 모르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보고 느끼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한 여행도 충분히 매력적일거란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겁니다.
은근히 욕심이 생기더군요.
A1 정도 크기의 DSLR이 나와 준다면 지금 보다 훨씬 여행이 풍요로워 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까지.......
왠지 카메라를 바꾸면 사진이 확 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7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 울렁...
이때부터 수없이 자기최면으로 들어갔습니다.
"제는 너무 크고 무거워서 여행용으로 안 돼! XD5의 말로를 생각 해! 여행에선 절대 안 돼!"
작고 가벼운 카메라가 나올 때 까지 A1으로 만족하자고 수없이 되뇌며 한 해를 보내고...
2005년 9월, 드디어 후퇴할 수 없는 시점에 다다랐습니다.
작고, 가볍고, 손떨림 보정 기능이 있는 DSLR 미놀타 5D 출시!
번들이 장착 된 5D를 처음 잡았을 땐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조금 실망했습니다.
A1과 인터페이스가 유사하여 조금 더 단단하고 크다는 감만 있더군요.
며칠 손에 익히고 나서 A1을 다시 잡았더니 그제야 차이를 실감했습니다.
잘 쓰던 A1이 갑자기 장난감처럼 보이는 겁니다....크헐~
인간은 이렇게 간사한 존재라는 점을 일깨워 주는 것처럼....
거의 모든 분들이 하이엔드에서 SLR로 넘어올 때 이런 생각을 할 겁니다.
“사진이 좋아질 때 까지 번들로 버틴다.”
예~ 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후후... 그 약속이 얼마나 유효하던가요?
저는 머...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결심이 한 달을 못 같으니까.
일단 기본이 된다는 50mm1.4 렌즈부터 질렀습니다.
이걸 써 봐야 5D의 성능을 알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드는 겁니다.
결과는 50mm렌즈는 1.5크롭 바디에선 화각이 너무 좁다는 것만 배웠습니다.
다음엔 미놀의 로망 85.4G렌즈가 궁금해졌습니다.
이 렌즈에 대해 한 마디 안 거드는 사람을 못 볼 정도였으니 얼마나 궁금했갰냐고요.
다행히 이놈은 제 바디와 궁합이 안 맞아서 핀을 못 잡습니다.
두 번이나 바꿔도 그 모양이라 포기하고 가격대가 비슷한 28-70G로 교환했습니다.
크헐~ 왜 모두 비싼 G렌즈를 동경하는지 써보고 알았습니다.
28-70G는 느리고 ,뚱뚱하고, 초점거리 멀고, 무겁고 ...
외관은 단점투성이 인데 번들에서 느낄 수 없던 색감과 선예도, 신뢰도...
이놈이 만약 번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면 저의 지름신은 이쯤에서 물러갔을 겁니다.
드디어 가시밭길은 예고되고....
차츰 갤러리 보는 시간보다 장터나 사용기보고 침 흘리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몽사몽 시간은 흐르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알파마운트의 최고봉 G렌즈 3총사가 제 손에 들려있었죠.
(지금도 이 사건을 만행이라 부르지 않고 득템이라는 말로 속을 달랩니다. -!-)
이제는 천하를 평정했다고 생각 할 무렵 뜬금없는 메일 한 통이 파란을 일으킵니다.
"전시회 요청"
사진 전시회가 어린이 백일장도 아니고... 아무튼 심각한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때 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줄이고,
이 시점부터 주변에서 받은 조언은 별 영양가가 없었다는 점만 밝힙니다.
이유야 뻔합니다.
어떤 사람이 "니 꼬라지를 알라!" 하고 면전에서 상처를 주겠느냐는 말입니다.
현실직시를 했어야 했는데....흑흑
아무튼, 전시회까지 상당한 시일이 남았다는 안도감 때문에 조금 느긋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600만 화소 5D가 대형인화에 충분치 않다는 불안감이 자꾸만 엄습합니다.
그렇다고 애지중지 모아 둔 알파 마운트를 통째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1000만 화소대의 신제품을 빨리 출시해주기만 기다릴 수밖에...
7월말...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1000만 화소의 소니 알파100이 출시되었습니다.
수많은 루머와 기대를 저버리고 알파100은 7D의 완성판이 아니라 5D와 동급으로 출시 된 겁니다.
실망스럽고... 원망스럽고... 그렇다고 어쩌겠습니까?
기업이 자선봉사단체도 아니고... 나름대로 깊은 뜻이 있어서일 텐데...
알파100을 처음 받아 마운트를 하고 오히려 안도의 한숨이 나오더군요.
그간 익숙했던 5D와 너무 닮아 매뉴얼조차 읽어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손에 딱 붙는 개선 된 그립감, 꼼꼼한 마무리, 사정없이 확대되는 리뷰기능, 업그레이드 된 LCD모니터 그리고 DRO기능.
결과물만 좋다면 지금 시점에선 익숙한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급하지 않았지만 저에게 5D는 너무 좋은 카메라였습니다.
작은 부피, 저 노이즈, 손 떨림 방지 기능, 편리한 인터페이스....
여행용으로 쓰기에는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카메라였죠.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충격에 약한 바디와 CCD청소였는데 알파100은 느낌이 더 단단하고 자동 청소 기능까지 있어서 금상첨화입니다.
손 떨림 보정기능도 5D보다 개선되었고...
두 대의 카메라를 비교 해 본 결과 색표현도 알파 100이 미놀타 5D보다 더 풍부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런 알파100에 흠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상하게 알파100은 JPG저장에서 최고 품질이 빠져있습니다.
저처럼 RAW파일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 1000만 화소의 사진이 600만 화소의 사진보다 JPG저장 용량이 작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달리 생각하면 압축 기술이 더 좋아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니콘 D70을 잠시 빌려 쓰면서 동일 메모리 카드에서 기록량이 5D보다 30%정도 더 많아서 신기하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연사나 리뷰에서 5D에 사용 된 최고품질의 압축률로 만들면 느려지기 때문에 아예 비교를 거부하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이건 소니의 계산 된 음모(?)라고 봐야겠죠.
압축 기술의 승리인지 아니면 적당히 뭉개고 빠르게 하려는 음모인지 이 부분은 머리 아파서 그냥 패스하렵니다.
대형 인화 결과물에서 확실히 알파100이 5D보다 나았기 때문에 다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다 아는 사실, ISO를 높이면 알파100은 급격히 입자가 거칠어진다는 것입니다.
ISO 400이상 쓰는 경우가 흔치 않다 해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데.... 아쉬운 건 아쉬운 겁니다.
에니웨이~~~
머리 아픈 전시회는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천여일실 천려일득 이라는 말처럼 천개 중 몇 가지는 잃고 몇 가지는 얻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 실력에 비해 월등한 성능의 알파100 덕에 그래도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고...
몇 개월의 조우지만 전시에 대한 압박에서 해방시켜준 탈출구가 되어주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사진을 처음 접하는 시기에 수동필름카메라인 XD5를 사용했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생각도 듭니다.
셔터스피드와 조리개의 상관관계를 모르면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에 필사적으로 배워야 했고 필름카메라란 특성 때문에 셔터를 누르기 전 심사숙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사진과의 인연이 이제 알파100까지 온 겁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알백이 많이 이뻐 할 겁니다.
이 카메라가 내 생각을 담는데 부족할 만큼 내공이 쌓일 때 까지...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렇게 얌전히 글을 마무리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솔직히 이런 마무리는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몇 개월 후면 달라질 거란 사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잖아요?
그간의 행태를 보면 카메라에서 만큼은 얼리아답터가 저를 두고 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만족한다고 자기 암시를 걸면서 심심하면 신제품 게시판을 들락거리는 지병...
고로, 지금 저가 가장 기다리는 렌즈는 칼자이츠 16-80입니다.
렌즈 교환의 번거로움이 SLR을 쓰면서 느끼는 가장 큰 불편 인데 G렌즈에 맛을 들인 이후 시건방이 들어서 번들은 손이 안 가는 병이 들었습니다.
17-35와 28-70 두개를 주로 쓰기 때문에 16-80이 한 방에 해소해주리란 기대감이 앞서서...
사진은 장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은근히 미워집니다.
왠지 1:1 바디 들면 사진이 확 좋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자이츠 렌즈 장착하면 없는 그림도 그려질 것 같은 생각...흐흐
이걸 어떻게 잠재울 수 있냐고요.
위 글은 2006년 말경에 작성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