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tbia 김흥수 Jan 12. 2017

20년간 이어지는 우정 –에니코 Aniko

낯선 곳에서 만남 6

Mr. 고든을 따라가는 차 속에서 에니코를 만났습니다. 어젯밤 런던에서 같은 버스를 탔었나 봅니다. 한 집에 묵는 인연으로 통성명했죠. 에니코는 17살, 참하고 예쁜 헝가리안 학생입니다. 부다페스트에 살고, 더햄에서 영어 연수를 하다 마리라는 프랑스 친구와 에든버러는 잠시 구경 온 겁니다. 다음 날 네스호 투어를 함께 떠났다가 런던으로 돌아올 때도 함께 왔습니다. 


3박 2일 동안 줄 곳 붙어 다녔더니 말은 안 통해도 많이 친근해졌습니다. 관광 포인트에서 멀뚱멀뚱 돌아다니자 왜 사진을 찍지 않냐고 물어보더군요. 런던에서 카메라를 분실했다고 말했죠. 선뜻 사진을 찍어 보내주겠다는 제의를 해왔습니다. 네스호 휴게실에서 소용이 없어진 필름을 두통 건네주고 주소를 적어 주었습니다. 에니코는 부다페스트에 가면 꼭 봐야 할 것과 헝가리에 대한 안내를 꼼꼼히 적어주었습니다. 한국에 돌아 와 보니 사진과 편지가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에니코와는 편지 교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에니코가 대학을 졸업하고 지리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20년 전 에니코가 보내 준 사진과 편지들...


이후, 여행 인솔을 하게 되면서 부다페스트를 다시 갔습니다. 

첫 만남 이후 9년이 지났습니다. 그때 쓴 글을 올려 봅니다.


그러니까…. 9년 전, 사선을 넘는 기분으로 떠난 유럽여행 중,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카메라도 잃어버리고, 영어도 더듬더듬, 언제나 희죽 희죽, 덤벙대기가 초등학생 수준인 웃기는 놈을 지켜보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기가 퍽 안쓰러웠나 봅니다. 네스호를 가는 동안 이것저것 챙겨주고 사진도 찍어 주고…. 여행이 끝나 집에 도착해보니 사진과 편지가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의 이름은 Uhelly Aniko 헝가리에서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온 학생입니다. 당시 나이가 17살. 이 이후 에니코와 우리 가족 사이에 편지가 오갔습니다. 최근엔 바빠서 (솔직히 말하자면 영문 편지 쓰기 힘들어서) 뜸했지만 아주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죠. 지난 부활절에 대충 이런 편지가 왔습니다.


Dear Kim,

Receiving a letter from you was a big surprise and a great pleasure. I have also thought of you recently as one of my oldest and most faithful pen-friend who always sends me beautiful things from Korea in a nicely packed outfit with pretty colourful stamps that go right into my collection. Thank you for your pictures you sent this time and also for the news about you and your family. -중 략 -

I hope everthing will go well with you and your family this year and in case you come to Europe we should definitely meet up. Take care, and hope to see you soon.    

Love Aniko   Budapest 23, March 2005  


떠나기 며칠 전에 부친 제 답장 중 일부입니다.


Dear Aniko.

The Easter Card and the letter you sent me made me so happy. It is always a pleasure to hear from you. I should write you back right away. But somehow my writing does not catch up of my thoughts as usual. - 중략 - If you returned or (plan to) from France by the time I wish to meet you there. Probably I will have enough time to see you in the evening of 1st, and 2nd day. Hope to see you.... Take care.   Utbia 


부다페스트에 도착하기 전날, 고객들에게 그간 저와 헝가리 처녀와의 펜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에니코가 프랑스로 공부하러 갔다가 8월에 온다고 했기 때문에 만날 확률이 아주 희박했지만 기대는 해봐야죠. (우리가 부다페스트에 도착하는 날이 8월 1일입니다) 함께 동승한 분들이 본인의 일처럼 흥분하며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빌어주더군요.^^


8월 1일 모든 일정이 끝나고, 혼자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너 영어 되니?" "Little...he he^^"

"그럼 이 주소 찾을 수 있냐?" "Yes~ O.K. 잘 사는 동네 부다 지역이고 별로 안 멀어용." 10여분 달려가 단번에 에니코네 집을 찾았습니다. 왠지 진정이 안 되어 길거리에서 담배를 한 대 붙여 물고, 초인종을 힘차게 눌렀습니다. "딩 동~!" 2층 창이 열리면서 굵직한 남자 음성이 들리더군요. "누구셔?" " 여기 에니코네 집 맞아요?" "너 누군데?" " 나요? 한국에서 온 에니코 친굽니다." 잠시 후, 거의 벗은 모습으로 에니코 아버지가 나왔습니다. (아이고 깜짝이야. 헝가리는 남자들 여름에 웃통 벗고 다니는 건 기본 패션임다) 인사할 틈도 안 주고 확 끌어안더니 양쪽 볼에다 키스하는 바람에 어색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앗, 샤워라도 하고 나 올걸." 그 순간에 든 생각이 바로 이겁니다…. 껄~.


지구 반대편에서 십 년 가까이 교류한 사람을 만나는 기분…. 이건 참 묘한 분위기였습니다. 아무튼, 만남이 믿어지지 않더군요. "에니코야 너 내일 시간 있니? 아침에 호텔로 오면 센텐트레 함께 갈 수 있다. 저녁에는 한국 음식도 맛보여 줄게." 예~~~ 그렇게 만나서 8월 2일은 팀에 합류하여 하루를 보냈습니다. (T/C가 애먼 짓 한다는 점은 좀 미안했지만, 손님들이 이해와 응원을 해주셔서….) 에니코는 26살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훌쩍 커서 이제는 몰라볼 정도였고요. 요즘 고민이 아주 많은가 봅니다. 본인도 자신이 너무 염세적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늘이 보여서 가능한 편한 마음으로 살라고 말해줬습니다. 제 영어가 짧아 속 깊은 이야기는 눈으로만 하고,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안녕이라고 인사했습니다. 작별은 언제나 쓸쓸한 법. 이번에는 내가 용감하게 에니코 볼에다 뽀뽀를 해줬습니다. 10년을 변함없이 교류할 수 있는 친구가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멋진 일 아니겠습니까?



이 이후 에니코를 자주 보는 편입니다. 부다페스트는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가는 도시여서 틈이 나면 전화라도 하고 옵니다. E-Mail이 없을 땐 에니코 편지가 한 달에 두 번 이상 왔기 때문에 집사람도 에니코의 성실함에 대해 아주 궁금해했습니다. 지난 2010년 유럽여행에 아내가 동참하여 부다페스트에서 에니코를 함께 만났습니다. 에니코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이 아이들이 커서 한국을 와보고 싶어 하면 내가 안내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든버러 - Mr. 고든 Gorde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