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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새로운 세상을 보다.

by utbia 김흥수


나에게 십 년은 참 별스럽게 지나갑니다.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단위가 바뀔 때마다 심한 몸살 한차례 앓아야 하고 큰일 하나를 저질러야 했습니다.

내 나이 마흔이 되던 해, 뒤돌아본 지난날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과 같았습니다.

털고 일어서지 않으면 다가올 십 년도 이전과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삶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꿈이 크든 작든 시작을 해야 희망이 보일 것 같았습니다.

“나를 위한 투자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터무니없는 계획을 들은 아내는 수긍하면서도 어이없어했습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진정 그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삶이란 수많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망설임 없는 선택 후에도 다른 선택이 더 옳지 않았을까?

미련이 남는 것 또한 인지상정입니다.

잘한 선택도 있고 후회되는 선택도 있기에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늘 마음에 와 닿습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를 꼽으라면

마흔이 되던 해 결단을 내려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이 여행이 없었다면 분명히 저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해도 후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변한 저 자신이 대견스럽기 때문입니다.


유럽 여행 후,

인터넷에 접속하는 법을 배웠고, 그것을 익혀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으며,

그곳에서 많은 인연과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Open한지 17년, 그날부터 저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인터넷, 새로운 세상을 보다.


1999년 4월 20일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처음 쓴 글입니다.

5개월 전 인터넷을 처음 접속했을 때 웃/비/아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감추어진 또 다른 세상을 본 거죠. 멍청한 상자와 구리선을 통해 세상이 하나로 묶여 있었습니다. 물론 이 문명의 이기는 아직도 범세계적으로 보면 소수의 점유물에 불과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나 만큼 커졌을 땐 지금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발전해 있을 겁니다. 이제는 생필품처럼 되어 가는 컴퓨터가 처음 이 땅에 보급된 이후, 저가 컴퓨터를 소유하고 이것을 개인적인 이유로 이용하리라고는 솔직히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귀찮아 은연중 멀리한 것이 큰 이유였겠지요. 인터넷을 모른다고 인생을 잘못 산다거나 뒤처진 삶을 산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문명의 이기에 얽매여 자유로움을 희생당하지 않은 많은 사람과 지난날들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세상이 나를 두고 저만큼 가버린 심정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에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 진실로 복된 사람"이라 하였지만, 토마가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대어보고 믿었듯, 웃/비/아도 호기심과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인터넷을 접속한 동기도 그런 셈이죠.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이 궁금증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책을 보며 정보를 얻고 영화를 통해 남의 삶을 엿보며 여행을 하며 그것을 확인하려 합니다. 책과 영화는 지금의 처지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여행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 갈증을 메워줄 대안 하나가 인터넷을 통한 Virtual tour와 인연 만들기라 생각합니다. 저는 특히 후자가 마음에 듭니다. 고향에 있는 십년지기를 두고 여행 중 잠깐 만난 사람과 오랜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그것이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요? 비록 단편적이긴 해도 웹을 통해 드러난 각 개인의 생각을 보며 소중한 인연 만들기가 가능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웃/비/아는 영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그런 저가 나이가 든 후 여행을 통해 파란 눈의 친구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작은 기쁨이요 고통입니다. 한 장의 편지를 완성하기 위해 수십 권의 책과 자료를 뒤져야 하고 영어사전이 닳도록 찾아야 했습니다. 지난 2년간 제가 부친 영문편지는 수십 통에 달합니다. 사실 이 노력의 결과물은 늘 참담하답니다. 그래도 예쁜 봉투에 담아 온갖 종류의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을 때의 기쁨은 사춘기 소년의 연애편지만큼 신선하여 오지도 않은 답장 쓰기를 미리 준비합니다.

이런 편지를 더 쉽게 쓰고 자료를 보관할 목적으로 아래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 편지에 컴퓨터를 배운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개발새발 쓴 편지를 아들이 대신 쳐주고 있었는데 효과는 바로 나타났습니다. 몇 달 전부터 친구들이 속없이 e-mail 주소를 알려 달라고 재촉합니다. 주소를 차마 알려줄 수 없었습니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쏟아지는 꼬부랑글자를 상형문자 해독하듯 읽는 것은 비교적 쉬운 편에 속하지만, 답장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편지는 오가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을 통한 다른 대처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홈을 하나 만들어 공개하고 답이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하면 간단한 글 몇 자로 여행 중 만났을 때처럼 body language를 대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편지로 보내기에 힘겨운 우리나라의 모든 것들을 링크로 끝낼 수 있어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었습니다. 덤으로 우푯값도 절약할 수 있겠고. 문제는 기다리는 인내와 쓰고 부치는 정성 때문에 편지는 소홀한 문장조차 기쁨이 되어 돌아오지만, 성의 없는 e-mail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아무튼, 이렇게 소박한 야심이(?) 웃/비/아가 홈페이지를 만들게 된 순수한 동기입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


처음 잡은 홈페이지 주제는 간단했습니다. 한국을 알리고 전주를 소개하며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문사이트 하나, 그리고 방명록을 달아두면 끄~읕. 그러나 일은 점점 크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 이 말은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작고 기름이 덜 먹는 소형차를 사기로 작정했습니다. 옵션이 아주 다양하더군요. 기왕 기왕 하다 그 수준에 최고 단계에 올라섰습니다. 멈추긴 했지만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중형차로 넘어갔을 겁니다. 이 홈페이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까지 “웃/비/아”라는 아이디조차 짓지 못하고 있었는데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왕 만드는 홈인데 그럴듯해야겠지? 그럼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지? 맞아, 당연히 영화에 손대야지.” 다 아시겠지만, 영화는 대중에게 인기 있고 다양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자료량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죠.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파기 시작하면 몇 년간 물고 늘어져도 끝이 안 날 만큼 가지치기가 쉽습니다. 그런 부분에 감히 손을 대기 시작하면…. 이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그런 실력이 털끝만큼도 없을뿐더러 훌륭한 사이트가 별처럼 많은데 쓰레기 양산을 해야 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순간 그냥 포기하면 내 본 모습으로 돌아와 열심히 가게 바닥 쓸면서 테이프 정리나 할 텐데 그러기에는 너무 빠져 버린 것 같습니다. 미련을 버릴 수 없어 군살 빼기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더하기는 쉽지만 빼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였습니다.


다시 시작된 갈등 속에 저 자신을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비디오 가게 아저씨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 그리고 해야 할 일은?” 며칠을 고민하다 어이없이 쉽게 어렵던 답이 나왔습니다.”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비디오 한편 골라 주는 것! 조금 더 보태자면 유익한 것으로.” 영화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삶의 질을 적절히 높여 줄 수도 폐해를 줄 수도 있는 양극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웃/비/아가 웹을 통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 생각에 이르러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이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재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저희 홈에는 최신작 영화에 관한 정보는 없습니다. 모든 매체가 앞다투어 상업성 있는 최신작에 발 벗고 나서는 지금 덩달아 장단을 맞출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잠자고 있는 덜 알려진 보물 같은 영화를 하나라도 제대로 소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흥미 유발할 수 없는 모든 매체가 도태되고 있긴 하지만 한번 도전해볼 이유가 분명 있으리라 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수한 세포를 하나씩 잃어 가는 과정이라 했습니다. 아직 망령들 나이에 접어들지 않았는데 기억력에 심한 손상이 오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건망증이라고 말하기엔 도가 지나친 내 생활의 일부를 개선하고 보존하기 위해 "think"라는 페이지를 생각해 내었습니다. 장부 정리 외에 메모하거나 일기를 쓰지 않는 저가 이 페이지를 만들려는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이 역시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도전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간의 게으름 때문에 미루어둔 유럽여행기를 마무리하기로 작정했습니다. 평소보다 시간을 뺏기는 지금에 와서 이제껏 미루어 두었던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2가지 목표 중 하나가 넓은 세상 보기이고 언젠가 그 글을 갈무리하기로 작심한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벌려놓아야 마무리가 될 것 같아 마지막 메뉴에 매달았습니다. 다음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를 마무리해야 할 숙제를 저 자신에게 준 셈이죠.





서툰 목수 집짓기


홈페이지를 만들기로 작정한 이후 아래 한글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웃/비/아가 공부를 위해 준비한 책이 거의 10권에 달합니다. 그 많은 책을 이용하여 실기를 익혔더라면 정말 멋있는 홈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둔하고 성질 급한 웃/비/아가 그것을 다 익힌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도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다행이라면 제주 많고 똑똑한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쉬는 기간이 있어 이 시간을 이용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작업의 어려움을 감히 짐작하십니까? 밤새도록 머릿속에 그린 페이지가 다음날 아들의 손을 통해 태어나면 그것은 정말 잊고 싶은 기억의 연속이었습니다. 첫 메뉴 하나 때문에 아들을 들볶기 거의 2달 만에 겨우 기본 틀이 나왔으니 그사이에 부린 변덕을 짐작하실 겁니다. 몇 주 전, 지겨워하는 아들에게 손찌검까지 한 사실을 이 자리에서 공개합니다. 자식을 쥐어박고 밤잠을 설치면서 이렇게 홈페이지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는 생각할 여력조차 없습니다. 기왕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빨리 웹에 띄우는 것밖에…. 지금 보고 계신 촌스런 화면이 4, 5개월을 고심한 흔적이라니 한심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조금은 자랑스럽습니다. 제 눈이 워낙 높아(?) 도배 한번 바꾸기는 쉬우리라 생각합니다.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정리되는 것이 우선이 되겠지요.





웃/비/아의 작은 소망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능 중에 자기를 들어내고 싶은 속성이 있다고 합니다. 학술적 차원에서 말하지 않더라도 이 홈페이지도 그런 속성 때문에 만들어졌겠지요. 우선 자신에게 바라건대 이곳이 자아도취나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고 사회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진솔한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 손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두 번째, 이 홈페이지를 절대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광고를 하지 않는 깨끗한 홈을 만들고 싶어 무료로 이용하는 방법을 사양하고 도메인 신청을 하였습니다. 다음은 빨리 자판에 익숙해지기를 바랍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여 1분에 50타를 넘기기 힘이 듭니다. 빨리 익숙해져서 여러분과 삶을 윤택하게 할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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