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처음 쓰는 단편

by utbia 김흥수


영준

가톨릭 예식으로 치른 장례는 간소하고 조용하게 끝이 났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도 간단했다. 작은 서재 하나가 이 세상에 아버지가 남긴 모든 것이다. 정리가 잘 되어 손댈 곳이 별로 없다.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 오히려 더 담담하다.


컴퓨터엔 비번이 걸려있지 않았다. 블로그와 메일 접속하는 비밀번호도 예전 그대로다. 아버지는 정말 옹고집이다. “잃을 것 없는 금고를 왜 잠그랴?” 했다. 아버지는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일이 생기면 컴퓨터를 봐라.” 무심히 던진 아버지 말이 생각났다. 몇 년간 아버지의 컴퓨터를 만지지 않았지만 내 것처럼 손에 익다. 폴더 정리법을 알려드린 이후 아버지는 너무도 깔끔하게 자료를 정리하신다. 짐작되는 장소에 아주 간단한 편지글 하나가 아래아한글 파일로 저장되어 있었다.



영준이와 솔에게....


이 글을 본다면 나는 이 세상을 떠난 이후겠지?

너희와 이별의 순간을 맞을 수 없다면 이 글 한 장으로 대신 인사하고 싶다.

많은 말은 생략하자. 그리고 섭섭해 하지 말자.

좋은 아빠로 살지 못했음을 변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너희가 있어 나는 언제나 행복했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나도 아쉬움 없는 삶을 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엄마를 만나 너희를 얻은 것이 나에게 가장 큰 행운이었다.

너희를 잘 알기에 혼자 남은 엄마 걱정도 않으마.


천국이 있다면 천국에서….

다음 생이 있다면 그곳에서 우리는 만나리라.

그때까지 아빠는 너희를 기다리며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겠다.


세상은 참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아빠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재물이 아님을 오히려 감사한다.

사랑한다. 진심으로 너희를 사랑했다.

표현하지 못하고 떠남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사랑하거라.


아빠가



며칠 동안 일어난 일들이 갑자기 현실처럼 다가왔다. 정말 가신 걸까?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컴퓨터엔 아버지가 최근 작업한 흔적이 있었다. 폴더에서 최종작업 파일 하나를 쉽게 찾았다. 아버지는 어떤 일이 마무리되면 파일 앞에 최종이라는 단어를 넣어두신다. 60~70페이지 정도 10개의 장으로 나뉜 PDF 파일은 완벽하게 출판 준비가 끝나있었다. 책상 위에 자료 중 일부를 임시편집 하여 출력한 컬러 프린터 출력물이 눈에 뜨였다. 아버지만 할 수 있는 편집이다. 엄청난 공이 들어간 작업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최근에 책을 내겠다고 하시던가요?” 아버지는 지난 11월부터 어떤 기획사에 자료 사진을 찍어주다가 느닷없이 책을 한 권 만들어 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출장이 없을 땐 자주 이 회사를 드나들며 무언가 수상쩍은 일을 벌이곤 했지만 늘 그렇듯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고 하셨다. 최근 메일에서 사진 자료가 오간 ‘씨티 커뮤니티’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김대표

전화로 전해 들은 부음 소식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다음날 목소리가 아버지와 닮은 아들이 찾아왔다. 반듯한 청년을 대하면서 김 선생이 잘 못 살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편집한 파일에 대해 궁금해했다.


김 선생은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람을 편하게 하는 재주가 있어 쉽게 가까워졌다. 책을 기획하다 부족한 사진이 있을 때 몇 번 자료를 요청하곤 했다. 지난 11월 전주에 관한 책을 준비할 때도 미비한 사진 자료를 부탁했다. 그 후 기분 좋은 술자리를 함께했었다. 그 자리에서 블로그에 있는 자료를 그냥 두지 말고 책을 한번 내보라 권했었다. 김 선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에도 그런 제의를 받았지만, 민폐 같아 그만두었단다. 자비 출판에 쓸데없는 낭비는 하지 않을 거라 했다. 출판사 사정을 나만큼 잘 알고 있었다.


며칠 후, 뜬금없이 김 선생이 책을 몇 부만 만들 수도 있느냐고 물어 왔다. 편집한 파일만 있으면 컬러 프린트로 몇 권 정도는 쉽게 출력할 수 있다고 알려주자 편집을 부탁했다. 그간 지은 죄가 있어 응하긴 했지만, 예상과 달리 김 선생은 곳간에 쥐 드나들 듯 사무실을 오갔다. 직원은 편집할 양이 많아 일의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김 선생은 이 책을 ‘인생 60을 맞는 기념물’이라 했다. 자식에겐 재산 대신, 손자들에겐 할아버지를 알리는 방법이라고도 했다. 김 선생의 고집과 꼼꼼함이 직원을 더 힘들게 했다. 사진위치나 텍스트 크기까지 간섭하여 작업이 더 더뎠다. 나는 이 과정을 내심 즐기며 지켜보고 있었다. 어차피 프로젝트가 끝나 한가한 때였다.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어서 다른 일에 매달리다 편집이 끝났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하는 동안 나도 이 파일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영준

김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의 글을 그냥 사장하기엔 아깝다고 했다. 그렇다고 출판을 하기도 무리인 참 어중간한 상태라 한다. 판형 큰 책을 전면 칼라 인쇄하면 원가가 많이 들고 원고양도 문제라 했다. 두 권으로 나눌 만큼 인지도 있는 작가의 글도 아니다.


김 대표가 제의를 해왔다. 최소 출판 수량 500부에서 출판사가 200부를 책임지고 나머지 300부는 우리가 처분하는 조건이다. 추가로 찍는다면 인세 7%가 나오겠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우니 잊기로 했다.


어머니와 상의했다. 300부면 그동안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분들에게 기념될 것 같아 그 비용을 쓰기로 했다. 어차피 책을 낼 바엔 좀 더 쓰기로 합의했다. 두 권이 아니라 4권의 책으로 만들고 케이스에 담는 방법을 택했다.


책을 받아든 순간 잊었던 눈물이 또 쏟아졌다. 시신도 거두지 못한 아버지가 한 권의 책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책 무게만큼 만듦새도 훌륭하다. 김 대표가 최선을 다해 표지를 만들고 케이스를 디자인했다. 아버지와 인연이 닿은 분들에겐 이 책이 소중하게 기억될 것이다.


아버지는 참 대단하다. 떠나는 순간까지 아들에게 숙제를 주고 가셨다. 아버지의 컴퓨터 이 메일을 정리하고 주소록을 뒤져 책을 한 권씩 포장하여 발송했다.





메리베스

생각지 못한 소포가 도착했다. 제법 묵직한 책과 정중한 편지가 담겨있었다. 한국의 오랜 펜 벗 Mr. Kim의 아들이 보낸 편지다. 몇 달 전 인도양에서 일어난 에어 인디아 사고에 Kim이 탑승했다고 했다. 사고 전 만들어 둔 원고를 출판하여 지인들에게 보낸다는 글이었다. 가슴이 아련하게 저려 온다. 네 권으로 나뉜 책 내용을 이해할 수 없지만, 사진만으로도 Kim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일 기획실 Mrs. Son에게 이 책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안내를 부탁해 보기로 했다. Son은 금방 이해하리라 믿는다.


사흘 후 Son이 책을 들고 나타났다. 몇 부분만 패스하고 책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1권은 인터넷을 처음 접속한 Mr. Kim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기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20년간 변화하는 삶을 그대로 보여 주어 묘한 매력이 있단다. 전체적인 글들이 평범하지만 일관된 이야기 속에 긍정의 따뜻함이 함께 묻어있다고 했다. 2권은 배낭여행을 두려워하는 50~60대들에게 자신의 사례를 들어 준비하고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주도록 꾸며졌고. 3권은 독특한 여행지와 다른 문화와 관습에 대해 다루어졌고. 4권은 특별히 좋아하는 공연장 순례와 잡지에 연재된 본인의 글을 모아 두었다고 했다. 책 속엔 나와의 만남도 있다고 페이지에 표시를 해주었다.


Son이 다음 달 새로운 출판을 기획하는 자리에 이 책을 소개해도 좋을지 물어왔다.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도서 시장에 접근해 보고 싶다.” 했다. 혹시 원본 자료를 얻을 수 있다면 번역을 하여 팀원들에게 회의 때 보여주고 싶다는 부탁을 해왔다.


영준에게 메일을 보냈다. 뉴욕 출판사 마케팅팀 이사인 내 직함을 알리고 보내준 책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으며, 파일을 주면 미국에서 이 책을 출판해도 될지 검토해 보고 싶다고 했다. Kim의 아들에게 바로 답신이 왔다. PDF 파일이 첨부되어있었다. Mrs. Son에게 전달했다.


기획회의에서 Son의 기획안이 채택되었다. 한 남자가 20년간 꿈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그리고 기록의 중요성과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여행지 자료만 조금 수정하면 문제가 없겠다 했다. 적절히 쓰인 사진도, 한국의 책 만드는 방법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책을 가능한 변형 없이 출판하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이제 내 일만 남았다.





아빠는 정말 엉뚱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시 왔다. 미국에서 아빠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여러 나라에 책이 출판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우리나라도 책이 팔리기 시작했다. 올해 출판 시장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드림웍스에서 아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정말 꿈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메리베스의 초청으로 미국을 다녀오는 중이다. 오빠가 좋은 조건에 영화 판권 계약을 했다. 어떻게 아빠는 이런 각본을 꾸민 걸까? 이 모든 일을 예견하고 우리 곁을 떠난 것 같다. 좁고 불편한 자리가 아빠 생각을 더 나게 한다. 아빠는 언제나 이 자리에서 긴 여정을 시작하고 마무리했겠지? 가슴이 시리다.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많다. 후진국 아이들을 돕는 재단을 만들자. 그간의 인세와 영화 판권이면 작은 사업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재단 운영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명구 아저씨가 맡아 잘 보살피리라 본다.





스텔라

그 양반이 떠난 지 5주기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살아서도 떠난 후에도 그는 무언가를 꾸미고 일을 만드는 덴 명수다. 한 달 전부터 자꾸 부르는 것 같다. 털고 일어나 떠나 보려 한다. 그리고 이젠 끈을 놓으리라.


델리에서 갈아탄 콜롬보행 AI0275는 정시에 출발했다. 창 측 자리를 달라고 했다.

이 바다 아래 그가 잠들어 있다. 부르면 들릴까? 드넓은 바다가 무심하기만 하다.

곁에 앉은 털북숭이 덩치 큰 외국인이 자꾸 창밖을 보려 한다. 신경이 쓰인다.


"Excuse me, Where are you come from?"

"Sorry, I'm not good at English. I'm Korean."

“아 한국인이세요? 실례가 안 되면 자리를 좀 바꿔 앉을 수 있을까요?”

외국인이 유창한 한국말을 한다.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

“예…. 사실 제 아내가 5년 전 이 근처에서 실종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좀 더 보고 싶어서요.”

다리에 힘이 풀린다. 이런 우연이 또 어디 있을까?


이 외국인은 독일 사람이다. 이름은 마크 Marc. 나이 60. 고향은 뮌헨. 한국에 자동차 기술자로 파견되어 근무하다 아내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5년 전 한국파견 때 휴가에 맞추어 고향에 있는 부인과 스리랑카 여행을 계획했었다. 독일과 한국에서 각각 비행기를 타고 콜롬보에서 만나기로 하고 한쪽이 사고를 당한 것이다.


우리말이 서툴어도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가끔 말이 막힐 때 땀을 훔치며 난처해 하는 모습이 순박하고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긴장감이 풀리고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오갔다. 내 이야기를 했다. 듣고 있던 마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리 이야기를 책과 영화를 통해 알고 있었다. 부인 사고와 연관이 있어 더 관심 있게 보았다고 했다.


늦은 오후에 도착한 콜롬보는 숨 막힐 듯 더웠다. 타즈 사무드라 호텔에 마크도 예약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함께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마크가 물었다. “왜 그가 그때 에어 인디아에 타고 있었느냐?”고. 그 설명을 하려면 좀 황당하다.


그이가 여행 계획을 세우기 한 달 전 무렵 내가 끼고 있던 반지 알이 사라졌다. 그 반지는 원래 그 양반 반지였다. 신혼 초에 결혼반지를 잃어버리자 그는 반지를 새로 사주고 싶어 했다. 반지엔 작은 실론 사파이어가 가운데 박혀 있었다. 맘에 든 반지 값을 물어본 후 못내 아쉬워하며 자기 반지를 빼서 내 반지를 만들어 주었다. 푸른빛이 남달랐던 이 반지를 언젠가는 꼭 사줄 날이 오리라 말했었다. 여행 일정을 스리랑카로 잡은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떠나기 전날 알 빠진 반지를 찾아들고 갔기 때문에 안다. 그는 늘 이렇게 엉뚱한 짓을 했다.


마크는 지난달 정년퇴직을 했다. 아내를 잊기 위해 왔다고 했다. 콜롬보에서 어떤 계획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없다고 솔직히 대답했다. 발길 닫는 대로 움직일 계획이었다. 마크가 제안했다. 타즈 호텔에서 시행하는 투어 프로그램에 함께 참가하지 않겠냐고…. 기꺼이 승낙했다. 낯선 땅에서 우리말이 유창한 안내자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영준 아빠가 떠난 후 처음으로 그의 꿈을 꿨다. 장난기는 그제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한 웃음을 지으며 왔다. 뒤따라 마크가 왔다. 둘은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이 같았다. 겸연쩍어하는 마크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이놈 잘 잡아. 로또보다 진국이야!” 마크와 한바탕 몸 씨름을 하다 웃으며 갔다.


스리랑카 투어가 끝나던 날 마크가 공식적인 데이트를 신청했다. 머뭇거리며 작은 상자 하나를 내놓았다. 작지만 푸른 실론 사파이어 하나가 들어있었다. 청혼으로 받아들여도 좋고 아니어도 꼭 받아 달라고 했다. 그이가 사주고 싶어 했던 사파이어를 대신 전해주는 영광을 달라고 했다. 며칠 본 마크는 꽤나 괜찮은 구석이 많다. 담배를 피울 때면 그를 보는 것 같아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니 남자는 다 그런 걸까? 전혀 다른 그이와 닮은 구석을 가끔 발견하게 된다. 특히 능청을 떨거나 환하게 웃을 때 더 닮았다.





혜진

유진이가 아침에 일어나 때아닌 꿈 이야기를 했다. “엄마 어젯밤 할아버지가 입학 선물로 무얼 갖고 싶으냐고 물었어. 곰돌이 인형이라고 말했더니 곧 같게 될 거라고 하면서 커다란 열쇠를 하나 주셨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못 찾아서 섭섭해.” 호기심 덩어리 유진이가 아침 내내 꿈에 본 열쇠에 집착한다. “유진아. 열쇠는 할아버지가 너 가슴 속에 묻어 두었단다. 이제 우리 공항에 나가자. 늦겠다.”


어머니는 스리랑카를 다녀오신 후 마크의 끈질긴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하셨다. 근 일 년 간 마크는 뮌헨에서 전화와 편지를 보내왔다. 두 달 전엔 어머니가 뮌헨을 잠시 다녀오셨다. 그곳에 있는 마크의 아들과 딸이 어머니를 무척 반겼다고 한다. 다들 출가를 하여 뮌헨엔 자주 올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 집을 원주 고향에 새로 꾸며 드렸다. 두 분은 독일과 한국을 번갈아 반년씩 지내기로 약속하셨다고 한다. 새로 맞는 시아버님 호칭부터 바꿔야겠다.


유진이는 새 할아버지에 대해 궁금증이 많다. 왜 할아버지가 세 명이냐고 또 묻는다. 서울에 사는 할아버지는 엄마의 아빠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아빠의 아빠고, 마크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말해주었다. 물론 새 아버님이 우리도 사랑할 거라 확신한다.


입국장을 나오는 마크 시아버님을 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헐~~ 아버님….” 유진이 만한 곰을 안고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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